공간, 장소, 풍경에 대하여
어딜 가면 도서관을 가장 먼저 찾는다. 책을 좋아해서? 그보다는 세속적인 이유가 있다. 난 공짜를 좋아한다. 공짜라면 양잿물을 마시는 정도는 아니지만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공공재는 많이 누리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공공도서관, 공원, 자연풍경 같은 것들.
엄마 집에 와서도 도서관 좌표부터 확인했다. 엄마가 많이 아플수록 도서관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제껏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시기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 그리고 애 낳고 육아하던 때, 그리고 지금 엄마가 늙고 병들고 아파서 간병하는 지금이 아닐까 싶다. 공통점은 모두 생애전환기라는 점이다. 현실적인 필요와 새로운 욕구가 일치하지 불일치하면서 대충돌이 불가피하다. 변화가 소용돌이치고, 삶의 전환이 일어나면서 존재가 흔들리고, 현재의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불안정해지고, 미래가 더욱 불확실해진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다못해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는 것 같다.
책이라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도 나에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된다. 간병인으로 살고 있는 지금 도서관은 현재 내가 일하고 머무는 공간인 엄마 집에서 나를 격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엄마 집의 가구와 공간 배치가 내 취향에 많이 어긋남으로 인해 숨 막히고 답답할 때가 많은데 그 아쉬움을 도서관에 일부 해소해 준다. 엄마 집 가까이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없었다면, 난 미쳐버렸을 수도 있다.
도서관에 갔다가 격주에 한 번씩 시민강좌가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제나 강사진을 보니 꽤 마음에 든다. 물론 책을 읽어도 되고 요즘엔 유튜브로도 좋은 강의는 들을 수 있지만 오랜만에 사람과 대면하고 귀로 듣고 싶었다. 지금까지 겸재 정선, 주역에 대해서 들었고, 이번엔 ‘풍경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이다. 제목부터가 호기심이 생겼다. 풍경을 감상하는 안목을 기르게 될 줄 알고.
결론만 말하면 그런 거 아니었다. 풍경에 대한 정의가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강의 끝에 나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무슨 청승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픈 엄마, 엄마 집에 묶여 있는 처지에서 뭔가의 인풋이 있으면 격렬한 반응이 일어난다. 강의는 풍경 감상이 아닌 경험하는 풍경에 대한 것이었다. 풍경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놀라운 경치가 아니고, 한 장소에서 어떤 힘이 요동칠 때 터져 나오는 떨림이라는 것이다. 결국 풍경의 중심은 외부가 아닌 나란 얘기다.
지금 나는 유년시절 내가 자라던 집과 내가 뛰어놀던 동네에서 살고 있다. 당연히 유년시절의 나와 현재 엄마 간병인이 되어 돌아온 내가 격렬하게 충돌한다. 남편과 딸 내가 만든 가족보다는 나를 만든 가족, 엄마, 아빠, 동생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란스럽다. 엄마가 쓰러지자마자 일상의 파괴가 있었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고, 아직 확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시공간의 창조가 진행 중이다. 나에게 새로운 풍경이 오고 있다. 이것이 내가 도서관에서 마주하게 된 나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