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새 차 타고 드라이브 갈 수 있을까?
아니, 차 닦는 수건이 어디 있지?
그게 뭔데?
차 닦는 큰 수건. 엄마가 알 텐데…
아빠는 차 닦는 수건을 찾느라 온 집안을 쑤시고 다니고 있고, 그걸 보다 못한 나도 옷장을 다 뒤집는다. 하지만 차 닦는 수건은 찾지 못했다.
여기서 차는 작년에 뽑은 아빠의 새 차를 말한다. 나름 인기 모델이라 1년을 기다려서 겨우 받았다고 했다.
아빠가 평생 새 차를 타본 적이 없잖아. 그래서 내가 뽑아줬어.
평생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한 아빠는 늘 트럭을 몰고 다녔다. 트럭도 새 차로 사본 적이 없고 늘 중고차로 샀다. 새 차를 사도 어차피 공사판에 다니다 보면 금방 헌 차 된다고 했다. 아빠의 트럭은 일하기 위한 것이어서 가족끼리 트럭을 타고 어디 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명절에 외갓집을 갔었는데 좌석이 달랑 3개밖에 없어서 우리 삼 남매 중 한 명만 데리고 갔었다.
난 아빠의 트럭이 싫었다.
엄마랑 아빠랑 일하다 말고 그 트럭을 타고 학교에 우산 갖다 주러 왔을 때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부끄러워서 숨은 적이 있다. 엄마, 아빠만 정체를 드러내서 내 출신이 탄로 나지 않으면 다들 나를 부잣집 딸로 보았다. 아니 우리 집이 부잣집까지는 아니어도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닌데 번듯한 승용차도 없는 게 정말 싫었다. 그래서 나는 또래보다 일찍 과외로 목돈을 좀 벌었을 때 차부터 샀다.
그렇게 평생을 지지리 궁상을 떨더니 늘그막에 새 차를 샀다고 하니 뭔 일인가 싶었다.
나는 궁금했다. 벌써 칠십 중반이 된 아빠가 새 차를 얼마나 타게 될지 말이다. 요즘 노인들 면허 반납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암튼 노인네 둘이 새 차를 뽑아서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깜짝 놀랐다. 무슨 차인 지는 알고 있었지만 색깔까지는 몰랐다. 새 하얀 차였다. 새하얀 차는 막노동을 하여 검게 그을린 부모님과도, 공사판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새하얀 차를 뽑았다는 건 앞으로 막노동은 줄이고, 둘이서 놀러 다니고 기껏해야 텃밭 농사 정도 짓겠다는 장래 계획을 보여주는 거였다. 엄마한테 전화하면 꽤 자주 아빠랑 드라이브 간다면서 자랑을 했었다. 어디 대단한 데 가는 것도 아닌데 둘은 그렇게 좋아했었다.
그런데 1년도 못 가, 아빠의 새 차는 멈추었다.
엄마가 저렇게 병들어 아파서 누워 있고 아빠는 간병에 매달려 있으니 아빠의 새 차도 주차장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빠는 일도, 놀러 다니는 것도 모두 중단했다. 병원에 갈 때도 아빠의 새 차는 높아서 엄마를 태우지를 못한다. 가끔 아빠는 차 시동 걸러 갔다 온다. 차가 계속 서 있으니 멈춰버릴까 봐 가끔 시동을 걸어주고 온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손 세차를 하려는 거 같은데 세차 수건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빠는 찾다 찾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여보, 차 닦는 수건 어디 있지?
신발장에 있지.
이렇게 말을 하는 것 자체로 놀라웠다. 엄마는 지금 인지력, 기억력 모두 중증 치매 수준으로 바닥이고, 최근에는 실어증이 와서 말도 거의 못 한다. 그런데도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고, 아빠도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신발장을 열어보았을 것이다. 아빠가 뭔가를 만지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데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말이 없다.
아빠 있어?
응, 진짜 있네.
진짜야?
응, 있어.
이걸 어떻게 알지? 이걸 어떻게 기억하지? 가끔 내가 뭘 물어봐도 묵묵부답이어서 요즘엔 뭘 잘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우리가 애타게 찾는 차 닦는 수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아빠도 나도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엄마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선택적으로 기억이 살아나는 걸까? 아니면 얻어걸린 걸까?
아빠가 차 닦는 수건을 들고 손세차하러 나갔다. 세차하고 나면 아빠도 새 차 운전하고 싶겠지? 아니 아빠는 엄마를 태워서 달리고 싶을 것이다. 엄마도 아빠랑 드라이브 가고 싶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