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여러분의 사랑과 효도는 저를 힘들게 하네요

하지만 어떡해요. 생전장례식으로 생각할게요.

by 소요

빈틈없이 메워지는 내 삶의 공간들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내 인생의 조건들


더위가 가셔서 이제 좀 살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이제 사람들이 올 차례인가 보다. 나이 많은 고모들이 아픈 엄마를 보러 오겠다고 한다. 한 분은 내일, 또 한 분은 토요일, 두 고모가 같은 지역에 사는데 서로 사이가 안 좋아서 따로따로 오신다고 하고, 저 멀리 사촌 고모들까지 오겠다고 연락이 온다.


오신다는 소식에 머리가 지끈 아팠다. 아빠가 나이 차가 많은 막내니까 고모들의 나이는 아흔 안팎일 거다. 두 분 다 노환으로 요양원에 계신다. 차로 3시간 거리, 노인들이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해 오는 것도 걱정이다. 진짜 걱정은 엄마의 컨디션이다. 안 좋을 땐 눈을 못 뜨는 날도 많고,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말 한마디, 반응을 못하는 날도 많아서 보여주는 입장이 되는 나는 매우 신경이 쓰인다.


고모를 모시고 온다는 고종사촌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의 상태를 말해주었더니 오빠가 운다. 외숙모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라 어떤 사정이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젊은 날 일자리를 구하던 오빠는 우리 집에서 몇 년 동안 같이 살았다. 엄마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오지 말라고 하니 돈도 몇 번 보내줬다. 엄마가 손위 시누이들인 고모들에게 시부모 모시듯 잘했다는 것도 안다. 그런 엄마는 고모들에게 자신의 지금 모습을 보여주기 싫을 것 같고, 나도 싫다.


대안을 제시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고모들이 가장 보고 싶은 건 하나뿐인 남동생, 그러니까 우리 아빠일 것이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고모에게 몇 번을 갔다 왔을 텐데 오지 않으니 궁금하고 보고 싶을 것이다. 추석 전후로 동생에게 부탁하여 아빠를 고모에게 보낼 테니 먼 길 오시지 말라고 했다. 솔직히 나도 요즘 에너지가 소진되어 손님 대접할 여력이 없다는 말은 안 했다. 먼 길 오시면 따뜻한 밥이라도 해드려야 하는데 솔직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내 상태를 알리 없는 고모는 직접 와서 엄마를 봐야겠다고 하고, 이제 많이 사셔야 몇 년일 고모의 소원 성취를 위해 오빠는 아들 된 도리로서 모시고 오려는 것 같다. 이해한다. 이해한다고 해도 나는 힘들다. 고모가 오시면 뭐라고 말할 지도 안다. 영서애미야, 말 좀 해보라고, 왜 이렇게 됐냐고, 불쌍해서 어쩌냐고 하겠지. 벌써부터 눈물바다속에 푹 잠긴 기분이다. 이제 더 말릴 수도 없고, 그럴 기운도 없다. 언제든 한 번은 치러야 할 일, 누가 먼저든 곧 있을 이별을 준비하는 생전장례식으로 생각하고 고모들을 맞이하려고 한다.


아픈 것도, 죽는 것도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살아온 것이 아니기에 아픈 것도 죽는 것도 혼자 조용히 할 수 없다. 결국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온 자, 끝까지 사람들 속에 부대끼면서 가야 하는 건가.


오늘 오신 방문간호사님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너무 잘 살아서 그런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게, 너무 잘 살아서,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너무 잘했던 엄마를 사람들은 가만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옆에 나는 무슨 죄인가. 그렇게 잘 살아오지 않은 나는 잘 살아온 엄마 옆에서 유탄과 파편을 맞고 있다. 어디 조용한 곳으로 숨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