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을 정중하게 사절합니다
엄마를 보고 싶다던 고모들이 왔다. 뭐 엄청난 말을 한 건 아니다. 그냥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듣던 말이고, 예사로 듣고 흘려보내던 말인데 오늘은 내 가슴을 제대로 후벼파고 갔다.
딸이 엄마 옆에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집에 가서 자기 애 키우고 자기 살림을 해야 되는데, 여기 와서 부모 살림을 살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이러다 신랑한테 쫓겨나면 어떻게 하나. 신랑이 착하다. 신랑이 허락해주니까 저렇게 와 있지, 저러고 와 있으면 누가 좋아하나.
엄마, 아빠를 나쁜 사람 만들고, 우리 가족의 심장을 쪼아 대고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다. 어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내 마음은 오죽할까. 그런 나를 보고 있는 아빠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엄마도 눈 뜨고 듣고 있었다. 안 그래도 지옥일지 모르는 엄마 마음은 딱 죽고 싶을 것이다.
사람을 이렇게 멍하니 가만 놔두면 안 된다. 밥도 떠 먹이지 말고 다 흘리더라도 직접 먹게 해라. 사람을 가만히 두지 말고, 말도 시키고, 손뼉이라도 치고, 운동을 시켜라. 다른 병원에도 데려가 봐라. 요즘 의학이 얼마나 좋은데 사람을 이렇게 놔두나.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봤을 거라고 생각하는 발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엄마는 나태해서 안 하고, 우리는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나.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우리는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밥도 혼자 못 먹어? 화장실도 혼자 못 가? 걷지도 못해?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저렇게 죽으면 안 돼.곱게 죽어야지. 우리는 자다가 곱게 죽읍시다. 저렇게 자식 고생시키다 죽으면 안 돼.
자다가 죽는 거, 모든 사람의 소원 아닌가. 곱게 죽지 않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나. 자식 고생시키다 죽고 싶은 부모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까.죽는 게 마음대로 된다고 생각하는 무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 무지함을 아파서 누워있는 환자 앞에서 말하는 무례함은 또 어디에서 오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문병인가.
엄마 자는 시간이 한참 지난 때 와서 한참을 머물다 갔다. 준비는 다 했지만 밥상 안 차렸다. 제발 빨리 가셨으면 해서. 문병이 환자에게 또는 돌보는 가족에게 꼭 필요한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면 꼭 안 와도 된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문병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래도 꼭 봐야겠다면 와서 짧게 보고 일어서는 게 서로에게 좋다. 오래 있어봤자 좋은 말 안 나오고 안 해도 되는 엉뚱한 말 튀어나오고 그 말은 안 그래도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후벼팔 뿐이다.
문병이라는 걸 오면 간병하는 가족에게는 고생 많지,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환자에게는 손 꼭 잡아주며 힘들지, 그래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좋다. 두 마디면 충분하다. 제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몰라서 안 하는 거, 일부러 안 하는 거 아니다.
아무 때나 와서 아무 말이나 하고 갈 거면 오지 마시라. 내 욕심에, 의무감에 오는 거면 안 와도 된다. 고모 아니고 고모 할아비라도 반갑지 않다. 그래도 옛정이 있으니까 예의있게 다시 말씀드리겠다. 앞으로 여러분의 문병을 정중히 사절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