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

버스에서의 거울치료

by 소요

고향에 돌아와 지낸지 반 년이 넘어가지만 버스 노선을 완전히 이해 못(안) 하고 있는 나는 버스기사에게 꼭 물어보고 확인한 다음 버스를 탄다.


도서관 가나요?

뭐요???

시립도서관이요?

아, 가요. 가!


나는 웃은 낯으로 예의바르게 물어 봤는데 성난 얼굴에 잔뜩 짜증이 난 대답이 돌아왔다.


거, 버스 탈 때 음료 들고 타면 안 돼요!!!


내 손에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산 커피가 들려 있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움직이는 버스에서 음료를 들고 있다가 쏟을 수 있으니까 맞는 소리긴한데 그렇게 호통칠 것까지 있나. 버스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우회전을 하면서 버스기사가 갑자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누군가 잘못된 운전을 했나 보다. (아닐 수도 있다) 그 화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한참을 지난 후에도 계속 욕이 흘러나왔고, 꽤 많은 C를 들었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정보와 상황에 비해 과도한 짜증과 불평, 불만이 가득한 버스기사였다. 나를 포함,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은 그의 감정 분출을 피할 수가 없다. 앉아서 오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그는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 했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그럴 용기는 없고, 신고할 에너지도 없고, 그저 내리고 싶다, 그냥 내려서 걸어갈까, 그런생각을 하고 있는데 불현듯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부끄러움이었다. 버스 기사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본 것이다.


최근에 나는 늘 짜증이 나 있었다. 최근 허리와 발목을 삐끗해서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었는데 갑자기 고모들이 문병이라는 이름으로 집안에 나타났다. 나에겐 갑자기 끼어든 차처럼 느껴졌다. 그게 너무 싫어서, 싫은데 거부할 수가 없어서 고모들의 방문 전후로 나는 아빠에게 짜증을 부리고 화풀이를 했다. 욕만 안 했을 뿐이지 막말을 퍼부었다.


아빠 누나들은 왜 자기들만 생각하냐, 누나들 좀 어떻게 해봐라, 누구를 위한 문병이냐, 이런 문병은 필요 없다, 잘해주고 싶으면 건강할 때 잘해주지 왜 지금 난리냐, 문병 와서 그게 할 소리냐, 아무리 노인들이라 해도 아무 말하고 가면 되는 거냐, 왜 그렇게 사람 마음을 모르고 가슴을 후벼 파냐, 이제는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할 거다, 다시 온다고 하면 엄마 데리고 숨어버릴 거다.


역시 버스 안의 나처럼 피할 곳 없는 아빠는 아무 소리 못 하고 나의 감정을 뒤집어썼다. 갑자기 부끄럽고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도서관까지 한 정거장이 남았지만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버스에서 내릴 수 있지만 내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있는 아픈 엄마와 아빠는 내릴 수가 없다. 좋은 기사까지는 몰라도 나쁜 기사, 부끄러운 기사는 되고 싶지 않다. 운전하는 게 너무 힘들면 화내고 짜증 내지 말고 도와달라고 하자. 응? 서툴고 부족할지언정 나쁜 운전은 하지 말자. 버스에서 내리면서 다짐했다. 새로운 마음의 기사가 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