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하나씩 꺼내먹기

동생과 나의 복숭아 통조림

by 소요

아빠의 사촌 누나, 지금은 충주에 살지만 천안에 살았어서 천안고모라 불리던 고모가 엄마 문병을 오면서 복숭아 한 박스를 가지고 왔다. 딸이 충주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데, 언젠부턴가 충주 딸네 집에 와서 같이 산다는 얘기는 엄마한테 들었다. 과수원 집이 다 그렇듯 상품 복숭아들은 벌써 다 팔고, 흠집이 있어 상품이 되지 못한 복숭아 한 박스다.


영서야, 저거 통조림 만들어서 엄마 하나씩 꺼내줘라.


통조림? 먹어만 봤지 만들어보지 않았다. 냉장고에 복숭아 한 박스가 들어갈 자리도 없고 만들어보지도 않은 통조림을 공부해서 만들 기운도 없어서 일단 복숭아 박스를 베란다에 내다 두었다. 벌레를 싫어하는 동생이 와서 복숭아 박스에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걸 보고 기겁을 했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고 동생이 온 김에 빨리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동생에게 일단 복숭아를 씻고 흠집 난 부분을 도려내고 웻지모양으로 자르라고 하고 나는 담을 병을 찾아 열탕 소독을 했다. 동생과 앉아 서로의 폰으로 레시피 검색을 했다. 물 계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는데, 동생이 자기가 보는 레시피에는 물을 넣지 말라는데? 한다. 내가 보는 건 물을 넣으라고 하는데, 넌 도대체 뭘 보는 거야? 하고 동생 폰을 봤더니 복숭아잼 레시피를 보고 있다.


야, 이놈아, 복숭아 통조림 만든다고. 복숭아 통조림 몰라? 아플 때 먹던 거?


복숭아 통조림은 많이 아플 때만 먹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먹거리였다. 동생이 집에서 농구를 하다가 유리창 문에 걸려 넘어졌는데 팔이 유리에 걸려 신경줄(정확한 명칭은 기억이 안 난다)이 끊어졌다. 수술하고 일주일 정도 입원을 했는데, 생업으로 바빴던 부모님 대신 내가 간병했다. 누가 사다준 건지는 기억 안 나지만 냉장고에 복숭아 통조림이 몇 개 들어 있었고, 매일 밤 하나씩 따먹던 생각이 났다. 지금은 캔에 손잡이가 있어 따기가 쉽지만 그때는 캔따개로 힘들게 돌려가며 캔을 따야 했다.


너 입원했을 때 내가 간병했던 거 생각나? 나 병원에서 자고 학교 갔고 그랬는데.

응, 생각나.

그때 밤마다 복숭아 통조림 같이 먹었잖아. 기억 나? 그 캔에 복숭아 반쪽짜리 2개 들어있어서 하나씩 나눠 먹었는데. 뭐 간병보다는 그거 먹으러 갔었지.


나는 기억이 생생한데 동생은 어렸을 때라 그런지 복숭아 통조림은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둘 다 복숭아 통조림은 처음 하는 거고 같은 레시피를 봐도 이해하는 게 달라서 물 양이 너무 많네, 설탕이 적네, 설탕을 더 넣자, 그냥 덜 달게 먹자, 얼마나 삶아야 하지, 10분 정도랬는데, 복숭아 가장자리가 투명해지면 건지라는데, 이 정도면 투명해진 건가, 마지막에 레몬즙을 넣어야 되는데, 그냥 식초를 넣자, 하면서 통조림을 완성했다.


뭐든지 처음은 어렵지만 막상 하면 별 거 아니고, 할 때는 번거로워도 해놓고 나면 뿌듯하다. 생각지도 못하게 나는 변한 빛에 감동을 받았다. 분명 백도였는데 껍질에 감춰져 있었는지 핑크빛이 우러나 과육으로 스며들면서 색깔이 오묘하게 예쁘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나 꺼내 먹었다. 일요일인데 급한 일이 있어 출근한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야, 복숭아 진짜 맛있어.

오, 그래? 다행이다.

엄마 주라고 했는데 내가 다 먹게 생겼다.

다 먹어.


복숭아 통조림 한 통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니 왠지 든든하다. 힘들 때, 아플 때 하나씩 꺼내 먹으면 위로가 될 것 같다. 이런 음식 집에 하나씩 있으면 좋을 거 같다. 근데 너무 많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주에 동생이 오면 동생도 맛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