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되어간다
아빠와 엄마가 가던 벌초를 동생과 남편이 대신 가게 됐다. 벌초를 갔다 온 남편이 비닐봉지 하나를 나에게 안겼다.
이게 뭐야?
산초였다. 후각은 시각보다 강렬하고 오래간다. 모양만 보고는 몰랐을 수도 있지만 강렬한 향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봉지를 열면서 내가 산초를 따 오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이 처음 집에 인사를 왔을 때가 이맘때였나 보다. 우리집에 같이 살면서 나를 금지옥엽 키워주신 할머니에게 남편될 사람을 인사시킨다는 의미를 급조하여 남편과 함께 벌초를 따라갔다.
엄마는 할머니 산소 옆에 있던 산초 열매를 따면서 내 코에다 들이대면서 향이 얼마나 좋은지 맡아보라고 했고 나는 이게 뭐야, 하면서 고개를 돌리며 물러났었다. 엄마와 아빠는 산초를 너무 좋아한다. 지난번 냉장고 고장나서 냉장고 정리하다가 먹다 남은 산초 기름 반병을 발견했다. 벌초한 날 저녁 엄마는 산초열매를 곁들여 두부를 구워냈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그땐 산초를 좋아하기에는 너무 어렸나보다. 대신 산초 향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뇌에 깊이 각인되었고, 나도 모르게 산초를 따 오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산초를 따오라고는 했지만 어떻게 먹는지 모른다. 그래도 향을 좋아할 만큼 나이를 먹었는지, 나이가 먹으면서 취향이 바뀐 건지 산초 향이 좋아 봉지에 코를 박고 한참을 킁킁거렸다.
가끔 엄마에게 빙의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이 들면서 어깨 너머로 배운 게 무섭다고 어째 엄마랑 비슷해지는 부분이 하나둘 늘고 있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아프고 엄마 집에 와서 지내면서 엄마 빙의는 가속화되었다. 엄마처럼 생각하고 엄마처럼 말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따라하며 점점 엄마처럼 살고 있다. 특히 엄마는 철따라 자연이 주는 선물을 최고로 치고 먹고 그 선물을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걸 인생의 재미로 알고 살아왔다. 그런 엄마의 세계 속에서 나도 혜택을 받았는데 단순히 먹기만 한 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엄마의 삶의 방식과 마음도 나에게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나도 점점 엄마가 되어간다.
산초 기름을 짜기에는 양이 너무 적고, 산초장아찌를 담갔다. 돼지고기랑 먹으면 아주 별미라고 한다. 산초장아찌 핑계로 삼겹살 구울 생각에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엄마도 좋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