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지기싫어병

그건 음식만은 아니다

by 소요

능이백숙집에서 저녁 약속이 있다며 나간 아빠가 예상보다 일찍 들어왔다.


벌써 끝났어?

아니, 이거 먼저 갖다 주래서.


우리가 먹을 능이백숙을 식탁에 올려놓고 아빠는 다시 나갔다. 엄마 먼저 갖다주라고 아빠 친구가 포장해서 보낸 것이다. 매일 삼시세끼를 차리다 보니 매일 뭘 먹을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도 정말 큰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 알아서 메뉴도 정하고, 배달까지 해주면 정말 고맙다.


오늘 아침엔 또 누구의 전화를 받고 나간 아빠가 아이스박스를 들고 왔다.


희선이 엄마가 엄마 고등어 좋아한다고 구워주라네.


엄마는 자식 포함 누구에게 자신의 기호나 취향을 말하는 것조차 조심하던 사람이다. 누군가 엄마 취향을 알고 있다면 엄마를 정말 세심하게 잘 관찰했다는 얘기다. 그 많은 음식 중에 고등어를 먹을 때 엄마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얼마나 자주 고등어에 젓가락을 가져다 대는지, 고등어를 먹을 때 어떤 말을 하는지를 보면서 좋아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한 고등어가 아니라, 엄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가끔 누가 엄마가 좋아한다고 보내줘서 나는 몰랐던 엄마 취향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흑염소탕이 그것.


추석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먹는 것이 많이 들어온다. 처음 엄마집에 왔을 때 여기저기서 보내주는 걸 받으면서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이제 없다. 당장 갚아야 된다는 생각도 버렸다. 아니 현실적으로 그런 여력이 없다. 그러니까 그냥 여기저기서 보내주는 것을 그냥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뻔뻔해져서 그 사람이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라는 생각(딸에게 배운 것), 또 그동안 그만큼 베풀며 살았을 거라는 생각(방문간호사님에게 배운 것)을 하니 한결 편한 마음으로 받는다.


그동안 나는 신세 지는 것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고, 절대 남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병적인 결벽증 같은 걸 가지고 살아왔다. 주는 건 좋은데 받는 건 편하지가 않았다. 주는 건 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받은 건 부채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빚지는 건 싫어하니까 뭘 받으면 곧장 갚으려고 애썼다. 친한 친구에게서 그냥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받아야 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아주 예외적으로 받는 것이 월등하게 많은 매우 불균형적인 관계도 몇 있긴 하지만 굉장히 드물다.


그런데 이 ‘신세지기싫어’ 병이 엄마가 아프고 엄마집에 오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상부상조, 상호지원 시스템이 가동되는 공동체에 들어와 살면서 강제로 고쳐짐을 당한 것이다. 엄마는 아프고, 나는 힘드니 그저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살아온 관성이 강렬하게 작용할 때, 그나마 에너지가 있었을 땐 저항도 해보고 했지만 지금은 그냥 무장해제되어버렸다. 로마에 오니 로마법대로 살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막상 그 시스템에 들어와 보니 어려울 때 빛을 발하는 필요성뿐만 아니라 실용적이고 재미도 있다. 물론 세상에 좋기만 한 일은 없다.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에 편입되면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도 (많이) 생긴다. 당연히 꿀만 빨 수는 없을 거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있고, 그게 세상 이치고 음양의 조화이겠거니 하고 살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