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무한책임인가

엄마의 아픈 손가락

by 소요

엄마 휴대폰을 보면 내가 압도적으로 전화를 많이 했고, 그다음이 큰엄마, 이모 순이었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던 내가 엄마집에 가던 엄마랑 같이 있다 보면 항상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이모 전화를 늘 힘들어했다. 술에 취해 전화하는 일이 많았고, 이모부의 사업 실패와 불화로 인해 살림이 너무 어렵다는 말로 시작해서 항상 돈 얘기로 끝나곤 했다. 엄마는 이모 걱정으로 두통에 시달렸고, 밤잠을 못 잘 때도 많았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잘 사는데 왜 이모만 남편 복도 없고 평생 저렇게 고생을 하냐면서, 이모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육 남매 중 돌아가신 큰외삼촌 외에 나머지 현제들이 모두 이모를 도와주다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고 엄마만 남았다. 엄마는 자기 형편이 썩 좋은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여 이모에게 돈을 부쳤다. 엄마는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은행업무를 할 수가 없어서 아빠에게 송금을 부탁해야 했는데 아빠는 늘 흔쾌하게 해주었다고 엄마는 평생 아빠에게 늘 고마워했다.


엄마가 쓰러지기 얼마 전 엄마는 최후의 결심 같은 걸 하고 그 결정을 나에게 통보했다. 고향에 있는 엄마 명의의 논을 이모에게 증여하겠다고 했다. 아빠도 동의했다고 했다. 엄마가 시집올 무렵 친정이 너무 어려워서 엄마는 돈이 좀 생기면 친정에 논 사주고 소 사주면서 살림을 보탰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논 얼마를 엄마 명의로 해주셨다고 한다. 엄마의 최초이자 마지막 부동산인 그 논을 엄마 고향에 있는 사촌동생이 농사를 짓고, 해마다 쌀 몇 가마니를 보내준다. 우리도 그 쌀로 반년을 먹는다.


엄마가 그 논을 이모에게 준다고 했을 때 나는 좀 서운했다. 내 논도 아닌데, 은연중에 내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랬다. 당장 거기서 나오는 쌀도 아쉽고, 무엇보다 엄마가 평생 부동산이라고 가진 게 그 논인데, 그거까지 뺏어가는 이모가 싫었다. 그런데 그

결심 직후 아빠가 다쳤고, 이어 엄마가 쓰러지면서 이행이 어려워졌다. 엄마는 쓰러진 이후에도 이모 전화를 받았다. 옆에서 듣던 나는 이모도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당장 가기 어렵게 됐으니 그만큼의 돈을 이모에게 부쳐줬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이렇게 되면서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던 이모의 연락이 뚝 끊겼다.


가끔 속으로 생각한다. 가족이란 뭔가. 적어도 엄마가 생각하는 가족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자식들에게도 그랬고 이모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에게 가족이란 뭔가 생각해 본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좋을 때 가족은 좋을 것이고 나쁠 때가 문제다. 엄마 간병하면서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엄마를, 아빠를, 동생을, 그리고 딸과 남편을 어느 정도 책임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엄마처럼 살 자신은 없다. 평생 나를 뒷바라지하던 부모를 간병하는 것도 휘청거리는데 동생까지 무한책임질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 없다. 엄마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모든 가족들에게 자신의 뼈와 살을 갈아 넣었고 아프고 나서야 겨우 해방되었다. 엄마가 병을 얻으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애써 생각할 수 있는 건, 엄마가 가족이라는 무한책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