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하던 그거 같이 해먹을래?

우리 가족 새로운 전통을 생각하다

by 소요

큰집에서 연락이 왔다. 올 추석 차례는 안 지내기로 했다고.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을 때 제사를 안 지낸다는 얘기를 언제 어디서 주워듣긴 들었다. 그 아픈 사람, 제사를 멈춘 사람 우리 엄마다.


그런 논리라면 지난 설에도 안 지냈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따져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장손이자 제주인 큰집 큰오빠가 결정하는 문제이고, 큰오빠가 차례를 지낸다고 해도 우리는 안 갈 거니까. 차례 안 지내고 성묘 갔다가 점심에 고기 구워 먹을 건데 올 거냐고 묻길래 안 간다고 했다. 엄마 아파 누워있는데 가서 고기 구워 먹는 건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일이니까.


우리가 전통이라며 떠받들고 있는 것들은 어찌 보면 참 편의적이다. 제사 안 지내면 큰일 날 것처럼 원칙적으로 엄격하게 지켜오다가 어느 계기로 변형되거나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졸린 눈 비비면서 기다렸다 자정에 제사를 지냈지만 이제는 초저녁에 지내고, 고조까지 3대 제사를 지내다가 언제부턴가 증조부모까지만 지내고, 코로나를 계기로 전격적으로 부부의 제사를 한 날로 합쳐 지내는 나름 창의적인 방식의 제사까지 왔다. 결국 정하기 나름이다. 엄마는 이 집안 실패한 개혁가이자 시골에서 보기 드문 실용주의자다. 코로나 때 작은집 며느리일 뿐인 엄마가 기제사 모두 없애고 설과 추석에만 지내자고 주장했다가 까였고 작년에 벌초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던 파묘도 까였다. 이 모든 것을 주장한 엄마의 속내는 제사도, 벌초도 애들에게 물려주기 싫다, 애들 귀찮게 하기 싫다는 것이다.


그런 엄마 아래서 자란 나와 동생은 10년 전쯤에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는 길에 부모님의 사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큰집과 공유하는 조부모까지는 우리 마음대로 못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우리 뜻대로 하자며 선산에 묘를 쓰지 말고, 형식적인 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까지는 합의했다. 돌아가시고 제사상 차릴 생각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맛있는 밥 한 끼라도 같이 더 먹자는 것이 우리 생각이었고 부모님도 동의했다. 지금 엄마가 아프고 나니 아쉬운 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다. 부모님이 건강할 때는 사후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막상 엄마가 와상환자가 되고 나니까 말 꺼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막상 닥쳐서 허둥지둥하기 싫어서 올 추석에 동생과 조용히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기일에 특정 형식의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것은 분명하고, 부모님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거야 어느 날 문득, 다양한 이유로 촉발된 어느 순간순간이 될 것이지만, 우리 남매가 함께 부모님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어떤 것이 좋을까? 우리 남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여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걸 생각해 보면 요리가 아닐까 싶다. 계절이 주는 것에 감사하고, 자연이 주는 먹거리에 진심이던 부모님에게 자라 그런지 우리 남매는 음식 취향이 확고하고 미각이 좀 예민한 편이다. 입맛이 까다로워 외식보다는 집에서 해 먹는 걸 선호한다. 그런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살려서 부모님이 좋아하던 계절음식을 함께 해 먹으면 어떨까? 봄이라면 봄쑥으로 쑥버무리를, 여름이라면 콩 갈아서 콩국수를, 가을에는 김치를 담그고, 겨울이라면 도토리묵이나 쟁여둔 묵나물을 해 먹는 식이다. 어렵게만 느꼈던 이 음식들이 엄마를 간병하면서 엄마 해먹이려고 하나둘 시도하다 보니 서서히 손에 익어가는 중이다. 나중에 동생과 내가 시간이 맞고 마음이 맞을 때 이거 해 먹을까? 저거 해 먹을까? 상의하여 만나서 함께 해 먹으면 그날이 그냥 제사가 되는 거다. 어차피 전통이라는 것도 생각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 이왕이면 우리 남매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부모님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다는 게 근본 없는 집안의 실패한 개혁가 엄마의 못 배운 자식들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