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에서 향이 안 나는 이유
추석 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더덕이다. 명절을 큰집에서 같이 지내다 보니 우리 집만의 명절 음식이 따로 있는 건 아닌데, 엄마는 명절 때마다 우리에게 싸서 보낼 음식을 따로 준비했다.
그렇게 엄마가 보따리에 싸서 보내는 음식 중에 제 일은 더덕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기계적으로는 대체로 평등했던 엄마도 더덕 앞에서는 아들과 딸을 차별했다. 아들에게 주는 더덕 보따리가 곱절 이상으로 컸고, 중간중간 택배로 보내주기도 했다. 워낙에 입이 짧고 입맛이 까다로운 동생은 엄마가 싸준 보따리를 다 가져간 법이 없는데, 더덕만큼은 엄마가 챙겨주는 대로, 보내주는 대로 잘 먹었다. 더덕은 나도 좋아해서(더덕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동생에게 더 많이 주면 살짝 샘이 날 때도 있었지만, 동생을 먹이려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서운한 마음은 잠시 스쳐갈 뿐이었다.
추석이라고 장이 서서 나가보니 마침 더덕이 눈에 띄었다. 더덕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아저씨 앞으로 손님들이 돌진하고 있었고, 아저씨는 정신없이 더덕을 봉지에 담아 저울에 재고 돈을 받아 챙겨 넣고 있었다. 엄마 생각, 동생 생각이 나서 나도 그 무리에 가담하여 더덕 3만 원어치를 사 왔다.
역시 늘 얻어먹기만 해서 더덕을 사본 것도 처음이고 더덕을 요리하는 것도 처음이다. 더덕 요리법을 검색했다. 더덕은 일단 까는 것부터가 고난도다. 내가 채택한 방법은 깨끗하게 씻어서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다음, 반으로 쪼개서 껍질을 돌돌돌 돌려 까는 방식이다. 엄마는 이 모든 것을 혼자 조용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서 손질하기에는 양이 제법 되는 것 같고, 동생에게 너 먹이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과시도 하고 싶어서 자는 동생을 불러 껍질을 까 달라고 하고, 나는 더덕을 방망이로 두드렸다.
이쯤 하면 더덕 향이 집안에 퍼져야 하는데 아무리 두드려도 더덕 향이 거의 나지 않았다. 더덕을 하나 엄마 입에 넣어줬더니 엄마의 표정이 이게 더덕인가, 도라지인가, 감흥이 전혀 없는 표정이었다. 너무 박박 씻었나, 너무 데쳤나, 잘못 샀나, 하고 아빠에게 물어봤더니 재배한 더덕은 더덕 향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늘 산에 약초를 캐러 다니는 심마니를 수소문하거나 알음알음 소개로 산더덕을 구했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산더덕의 가격도 꽤 비싼 편이었다. 엄마가 다 해놓으면 홀랑 가져가서 먹기만 하고, 가끔은 친구도 퍼주고, 더러는 먹을 때를 놓쳐 상해서 버리기도 했던 더덕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다니! 엄마는 자기에게 쓸 돈을 아끼고 아껴서 자식 먹이는데 몰빵했다.
내가 엄마집에 와서 엄마가 하던 음식을 따라해 보면서 엄마가 우리를 먹이려는 노력과 정성은 급이 달랐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어쩌나, 이젠 엄마의 더덕은 없다. 아쉬운 대로 오늘 저녁은 향이 없는 더덕구이를 해먹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