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도 그랬다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드르륵, 끽, 철퍼덕, 신경질적이고 둔탁한 소리를 듣고 뒤돌아 섰을 때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풍채가 있는 엄마가 빈틈없이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할 휠체어가 텅 비어 있었다.
악, 엄마!
엄마는 휠체어가 아닌 바닥에 이상한 모양으로 쓰러져 있었다. 아빠! 아빠를 불렀다. 화장실에 있던 아빠가 뛰어나와 119를 불렀다. 119가 우리 쪽으로 오면서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그러게, 어떻게 사지를 못 움직이는 엄마가 휠체어에서 떨어졌을까? 딸이 태어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침대에 눕혀 두었다가 잠시 한눈 판 사이 딸이 시야에서 사라져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린 오래전 그 장면이 떠올랐다. 아직 뒤집을 시기가 아니었던 아기가 침대에서 떨어졌던 것처럼 이번엔 엄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바닥에 고꾸라진 엄마의 모습을 봤을 때, 그리고 그 옆에 흥건한 피를 봤을 때 엄마가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눈동자가, 엄마의 몸이 내가 잘 모르는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엄마, 안 돼! 정신 차려봐. 응?
엄마가 죽음을 향한 여정에 오른 지 꽤 되었지만, 지금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 간병이 장기화되자 우리는 평생 살았던 집을 떠나 새 아파트로 이사 온 지 겨우 하루가 지났다. 새집에서 살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가버린다고? 엄마와 아빠 둘이나 있었는데 엄마가 휠체어에서 떨어져 죽는다면 당장 새 아파트를 얻어 준 동생부터 볼 낯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엄마가 죽는다면 지금 나를 괴롭히는 많은 고통의 나날이 끝나는 것이기도 하다. 빨리 끝내고 딸과 남편이 있는 집에 가서 내 침대, 내 이불에서 편히 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119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마음과 엄마가 이렇게 떠날 수도 있다는 마음이 수시로 오갔다. 엄마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는 마음은 딱히 없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신발 신고 들어가겠습니다.
나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혼란스러운 생각을 짓밟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래요. 이런 못된 생각은 제대로 밟아주세요. 오렌지색 대원들이 신발을 신고 쇳소리가 나는 들것을 들고 저벅저벅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아빠와 나는 대충 옷을 걸쳐 입고 따라나섰다. 공교롭게도 이사 와서 아직 인사도 못한 옆집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지나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조심스럽게 기웃거리고 있었다. 오렌지 옷을 입은 여성이 누가 구급차에 탈 것인지 물었다. 당연히 내가 탔다. 엄마가 쓰러지고 엄마를 간병하는 나는 우리 집안의 독재자가 되어 있다. 모든 건 다 내 마음대로 내가 정한다. 아무도 찍 소리를 못한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지금 엄마에게 할 말이 있었다. 아니 말이 아니라 노래. 내가 매일 아침 간병을 시작하는 기도처럼 엄마에게 불러주던 노래-나를 살게 하는 사람, 이란 노래를 오늘 아침에는 못 불렀다. 죽을지도 모르는 엄마에게 불러주고 싶었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엄마를 불러본다.
엄마? 응. 엄마가 대답을 한다. 엄마, 아파? 응, 조금 아파. 어디 아파? 코가 좀 아파. 코가 빨개진 것으로 보아 코가 부러진 듯했다. 근데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말할 수 있다니, 이런 대화를 나눠본 마지막이 언제더라. 최근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데,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말을 한다. 엄마 많이 놀랐지? 응, 근데 괜찮아. 엄마, 내가 보고 있었어야 했는데,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엄마 괜찮아. 엄마가 쓰러지고 와상환자가 되어가는 지난 1년 중 가장 괜찮은 대화가 오갔다. 꿈인가 생시인가. 뇌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오히려 말문이 트인 건가. 아니면 엄마가 죽기 전 마지막 선물 같은 건가. 엄마가 말을 하니 엄마를 절대 보내고 싶지 않았다. 간병이 힘든 나머지 잠시 엄마가 죽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엄마를 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바닥에 흘린 피는 입술이 찢어져 난 거였다. 코는 부었지만 부러지지는 않았다. CT를 찍으러 갔다. 거기서 저녁에 먹었던 육개장을 모두 토했다. 구토는 뇌출혈이나 뇌종양 등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알고 있어서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 힘을 내봐. 제발 우리 곁에 있어줘. 엄마, 정신 차려봐. 내가 잘해야 되는데 못 되게 굴어서 미안해. 아직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해.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대기하는 동안 엄마와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 여기는 부서동 병원이야. 부서동 알지? 큰집 근처. 알지. 엄마 큰엄마 이름 알지? 알지. 김순진. 이럴 수도 있나? 이렇게 정신이 말짱해진다고? 죽을 줄만 알았던 말을 한다고?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떨어져서 오히려 말문이 트인다고? 텔레비전 고장 났을 때 한 대 쾅 때려주면 다시 나오는 것처럼 그런 원리인 건가?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난 건가?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엄마가 말만 할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응급실에 실려왔는데 최근 몇 달 동안 가장 기분이 좋아서 실실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엄마와의 대화가 그리웠다. 엄마가 말만 할 수 있다면, 나와 대화할 수 있다면 몸 따위는 못 움직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뇌의 출혈이나 골절은 없다고 했다.
엄마, 역시 영양남씨 뼈대 있는 집안은 달라. 괜찮대.
엄마는 킥킥 웃었다. 퇴원해도 된다고 했지만, 혹시 모른다며 입원하자는 아빠의 말에 입원을 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전과 같은 병원, 같은 병실 간병인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기적 따윈 없었다. 엄마의 말문은 다시 막혔고 엄마가 휠체어에서 떨어지기 전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후폭풍이 거세게 일어났다. 엄마만 죽었다 산 게 아니었다. 내 마음도 그랬다. 엄마를 지금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마음과 엄마를 보내고 편히 쉬고 싶다는 마음이 내 마음을 휘저었고 그렇게 탁해지고 흩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마음을 모아 책상에 앉아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