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와 동사와의 거리
엄마, 존 스튜어트 밀씨 말이야. 옳은 말씀을 하시긴 하는데, 말하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어. 말을 왜 그렇게 해?
그렇게, 가 뭐야?
이런 거야. 예를 들어 '가을바람이 분다' 이 말을 ‘일조량이 떨어져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 나뭇잎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떨어지기를 실행하고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고기압과 저기압의 차이로 발생한 공기가 오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비유가 너무 웃겨서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오늘 아내와 함께 탕수육을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 토론을 했고 아내는 부먹이 옳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 줄 알았으나 들어보니 역시나 부먹을 지지하지 않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아내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생각이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그런가? 엄마는 오래전에 읽어서(그때 또 제대로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
내가 읽어줄게. 들어봐.
"인간의 정신적인 능력들 중에서, 어떤 문제에서 진리인 부분과 오류인 부분을 가려내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극히 드물고, 각 사람은 진리의 오직 한 부분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에, 진리의 각각의 부분을 담고 있는 다양한 의견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진리의 각각의 부분들을 경청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이게 한 문장이라고. 뒤로 가다 보면 앞에 뭐였지 까먹게 된다고. 존 스튜어트 밀씨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 개인이 진리의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를 말하고 싶은 거 같은데...
그러게. 그건 그 시대의 언어 문화와 영어라는 언어의 특성 때문에 그럴 거 같네. 영어는 나는 그거 싫어, 이렇게 말하기보다 나는 그거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런 언어 특성을 감안하고 읽어야겠네.
그래서 앞으로 자유론 읽는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어. 영어는 주어와 동사가 가깝기 때문에 뒤에 관계대명사로 수식하는 말을 길게, 여러 번 붙여도 괜찮아. 하지만 우리말은 동사가 뒤에 나오기 때문에 문장이 길어지면 주어가 뭐였지, 하고 까먹게 되고, 동사가 뒤에 나오기 때문에 읽다 보면 그래서 뭘 말하려는 거지 헤매게 된단 말이야. 그래서 내 해법은 빨리 읽는 거야. 빨리 읽어서 주어와 동사의 거리를 최대한 가깝게 붙여 놓으면 중간에 수식하는 말을 좀 놓치더라도 헤매지 않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음, 일리가 있네. 그럼 그렇게 한번 읽어보고 또 이야기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