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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산책가 Oct 25. 2023

카페 진정성 종점

비움의 공간

저는 하루에 여러 번 세탁기를 돌릴 때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가는 세탁기는 평소보다 섬유찌꺼기와 세제찌꺼기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문득 세탁기를 돌리며 내 삶을 비추어봅니다. 삶이 벅찰 때가 있습니다. 매일 쌓인 감정과 생각의 찌꺼기들을 정리하지 못한 채 어제의 일들과 오늘의 새날이 뒤엉켜 무감각하게 또 다른 찌꺼기를 만들며 지내고 있는 건 아닌지 세탁기를 돌리며 생각해 보게 됩니다.


카페 진정성 종점을 만나다

하루를 정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일기나 기도로 오늘을 정리하는 것은 내일 다시 살아낼 힘을 비축하는 것입니다. 바삐 돌아가는 현대의 삶은 비워내고 정리하지 않으면 어느새 갈 방향을 잃어버리거나 원치 않는 정보들로 가득 차 버릴 때가 있습니다. 저는 때로 삶이 꽉 찬 느낌이 들 때면 노트북이나 책을 들고 글쓰기 좋은 카페공간을 찾아갑니다. 조용한 카페 공간에서 온전히 나만 의식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카페 진정성 종점은 나를 만나고, 나를 비워내는 조용한 힘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가로로 긴 수평의 입면공간과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 지평선이 하나가 된 듯 고요하면서 웅장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묵직한 콘크리트 처마와 스케일이 웅장한 스틸문, 그리고 나를 투명하게 비추는 유리벽까지 변화로운 재료들이 마치 하나처럼 어울립니다. 


공간을 거닐며 생각을 비우다

잠시 나를 바라봅니다. 나라는 사람도 하나의 정체성만 있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 처음엔 어려웠지만, 이제는 균형을 맞춰가는 중년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카페 바깥공간을 거닐며 불필요했던 나의 여러 생각들을 하나하나 비워냅니다. 나의 다짐과 걸어갈 방향은 겸손할수록 바르게 됩니다. 나의 생각을 버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나의 자세를 겸손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거룩한 공간은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듭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이는 피사체들이 흑과 백, 깊음과 얕음, 거침과 매끈함으로 확연히 구별됩니다. 하나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정체성이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도 내가 몸담고 있는 그룹도 모두 다른 정체성이 모여 하나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를 비우고 생각을 비우니 나를 이해하게 됩니다. 특별한 공간이 주는 시간 속 성찰의 시간은 향긋한 커피를 즐기는 시간이 더 깊어집니다. 온몸을 휘감는 공간의 깊이만큼이나 커피맛도 깊어지고 사유의 시간도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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