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무거운 짐에 피곤한 몸으로 꼬박 2주를 채워 신혼여행을 갔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토요일 저녁 도착 시간에 맞춰 내 차를 몰고 가 신혼집 앞에 내려주었다.
제일 즐거운 시간이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종교도 없는데) 자다가도 기도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여행 내내 걱정도 되었다. 아들이 렌트차를 직접 운전하며 자유 여행을 한다 해서 다 알아서 하겠지 하고 믿었지만 마음이 쓰였다.
며느리를 보니 결혼 준비부터 그간 얼마나 마음 쓰고 고생했을까 싶어 저절로 어깨를 다독여주게 되었다. 고맙다, 장하다란 말을 건네며... 며느리에게 무엇이 제일 힘들었냐 물으니 너무 오래 이탈리아식 음식만 먹게 되어 식사가 제일 불편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아들은 짐이 많아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바로 다음날 생각도 못했는데 우리 집으로 온다고 했다. 푹 쉬어도 모자랄 판에 온다는 것이 반갑지도 않다고 해도...
요리 솜씨도 없는데 한국 음식이 그리웠다는 말을 떠올리고 된장찌개에 소고기를 굽고 허둥지둥 준비해 아이들을 기다렸다.
알람도 듣지 못할 정도로 피곤했다면서도 꽃으로 장식된 근사한 과일 상자와 간단한 선물을 챙겨 왔다.
여행 가서 선물 사느라 고생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더니 내 뜻을 알아주어 다행이었다.
이제 너희가 우리 집에 올 일도, 우리가 너희 집에 갈 일도 거의 없다 생각하고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고 했다.
그 이후 아들은 며느리가 약속이 있거나 초과 근무를 하는 날이면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간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인데 이것이 딱 좋다. 며느리도 시할아버지 생신 모임에 함께하며 어른들께도 자연스레 인사를 또 드렸다.
명절이나 가족들 생일일 때 시간 되면 밖에서 밥이나 먹는 것으로 하고 바쁘거나 일정이 있으면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시부모뿐만 아니라 조부모님들도 네 분이 다 살아계시니 아이들이 챙기자면 힘이 들 것이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니 그나마 다니기가 편하겠지만 그렇게만 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보게 되니까 말이다.
이제 아들은 잘 떠나보냈다 생각하고 나는 나대로 일상을 잘 살아야겠다. 우리는 자녀를 존중하고 아이들은 우리를 어른으로 동반자로 여길 수 있으면 퍽 감사한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