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결혼식
두 청춘은 양가에 인사하기도 전에 결혼식 박람회를 구경한다던 어느 날, 결혼식 날짜를 잡아 통보했다. 그저 고맙고 귀한 일이라 좋다고 했지만 사돈께도 여쭈어 보라고 했다.
자기들이 사귄 지 700일째 되는 날이라며, 사람들이 길일이라 칭하는 날이기도 해 꼭 마음에 든다는 25년 5월의 토요일이었다.
예식장도 다 알아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해놓고 나는 모르쇠로 속 편하게 있다가 2월 봄이 느껴질 무렵 양가 어머니들이 함께 한복집에서 만났다. 아이들이 물색한 곳으로 가서 고르기만 하고 편하게 안사돈과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살림살이 챙기며 신부가 고생 많았겠다고 전하니. 딸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인데 끙끙 앓으면서도 해내는 것을 보면 사랑의 힘인가 싶다고 하셨다.
아이들도 2부 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는다며 함께 골랐다. 그제야 아들의 결혼이 실감이 났다.
아들은 평소 의식은 중요하지 않다 하여 대충 준비하는 줄 알았는데, 액셀 프로그램으로 꽤나 꼼꼼하게 준비하는 눈치였다. 작년 가을 제주도 스냅 촬영도 해두었고 웨딩플래너 없이 둘이 잘 선택하고 진행하는 것 같았다. 신혼여행은 중요하다며 2주를 꽉 채워 이탈리아로 다녀온다 하고..
친구들이 요즘 혼주들은 아이들 말대로 오라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더니 정말 나는 결혼식이 닥쳐서도 아무것도 하는 게 없었다.
식 전날 아들이 유의사항, 준비물 등을 출력해서 클리어파일에 넣어 가지고 왔다. 축의금 담을 가방과 축의대 담당에게 줄 간식과 안내문까지 챙겨서 말이다.
이런 것까지 신경 안 써도 되는데 하며 말을 꺼내니 우리 부부 손수건 세트까지 전해 준다.(혹시 울지도 모르고 필요할 것 같아 양가에 다 챙겨 드린단다.)
엄마는 울 일 없다고 아들도 내일 축하해 주러 오시는 고마운 분들과 함께 파티한다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즐기면 된다고 응원을 해주었다.
당일은 11시 식이어서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혼주 메이크업 장소로 갔더니 마치 공장 같았다. 허겁지겁 돌아가는 느낌이 좋지는 않았지만 원래 잔치는 요란한 법이라 위안하고 신랑신부는 편히 단장하고 있기를 빌었다.
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사진도 찍고 동선도 확인하는데 친정 동생들이 일찍 와주었다. 조카들에게 축의대를 맡겨 그렇기도 했겠지만 역시 큰일엔 내 형제들이 최고다.
올해 구순이신 아버지는 혼주들이 신경 쓴다고 끝내 식장엔 오지 않으셨고, 엄마는 일찍 오셔서 눈에 띄지 않게 앉아 있겠다 하셨다. 다들 어른이라고 인사하게 또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된다고...
오랜만에 친척들과 지인, 친구들을 보니 나는 절로 웃음이 났고 남편과 함께 아들과 딸이 연신 손님들께 인사하는데 흐뭇하기만 했다.
식이 진행되는 내내 알콩달콩 사랑이 묻어나는 신랑신부의 모습도, 정성 들여 준비한 식순 하나하나도 다 감동적이어서 결혼식이 기쁜 경삿날이긴 하다고 새삼 느꼈다. 남의 결혼식 가서도 곧잘 울만큼 원래 눈물이 많아 걱정이었는데, 눈물은 전혀 나지 않아 참 다행이다 싶었다.
딸은, 친구가 여태 본 결혼식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이는 신랑이라고 했다고 전하며, 아름다운 사랑을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느끼게 한 오빠와 새언니가 존경스럽다고 했다.
나는 결혼식을 마치고 축하해 주신 분들께 인사하고 거듭 감사를 드렸고, 두 청춘이 신혼여행 떠나는 것을 보며 피곤한 몸으로 건강하게나 다녀오기를 간절히 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