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학교를 지나다

명퇴를 앞두고 쓴 시(23년 10월)

by 벗님

만 나이 스물둘

첫 부임하며

부푼 꿈에 위풍당당

내 작은 행동도 말 하나도

모든 아이들과 환하게 뒤섞였지

엽서 가득 편지를 쓰고

선물을 고르며 축하의 말을 전했지

생일 선물을 처음 받아본다는 아이들이 있었지.



4년의 경력에도

베테랑이란 자신감,

결혼을 시작으로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면서도

줄탁동시-좋은 교사 되기

어려운 줄도 몰랐지.

내가 부르면 응답하는,

우리 반 한 명 한 명

이름 부르며 시를 쓰는

맑았던 순간이 있었지.



여학교는 처음이라

카리스마 장난 아닌 눈빛과 말투를

애써 부드럽게 해야 하나 걱정하다

우리집까지 탐방하는

단발머리 소녀들과

하하 호호 웃고

목련꽃 그늘 아래 마주서기도 했지.

내가 밀어주면

저만치 앞서가는 모습이 빛나서 흐뭇하기만 했지.



남녀공학 그 열기를 꺾느라

제일 무섭고 별난 선생이 되어

그래도 믿어주니 이쁘고 기특해서

2학기 중간고사 무렵부터는

헤어질 생각에 눈물이 흐르고

졸업 여행 울며 다니고

졸업식날은

집에도 안 가고

가만히 교실에 앉아 있기도 했지



꺾일 줄 모르는 독선으로

모든 게 가능한 선생이 되어

같은 날 같은 시각, 한 경험으로도

한 뼘 크는 아이들과

한줌으로 부서지는 아이들 틈에서

눈돌려 숨쉬며 살고 싶었지.


교문 밖에서는 위태로워 보이는,

알바와 잠에 잠식된 학생들과

목청껏 싸우느라

기진맥진 하다가도

늘 옆을 지켜주는 인연들

함께라서 즐겁기도 했지.



야자에 보충에

생기부에 자소서

그런 게 힘든 건 아니었는데

어른들의 판박이로

르친다는 것이

대학가기 경쟁에 스펙 쌓기라

연극이나 하겠다고

부산으로 도망을 갔지.



동기 중 잘난 이는

교장으로 교육청 높은 분으로

교육의 미래를 책임지고 걱정하고

또 누구는 대학 교수로

그 누구는 시인으로

또 누구는 발령 받고 곧장

사표 쓰고 시집가서

아이를 잘 키웠다지

나도 없는 게 없다는

농담을 들으며

은행나무 노오란 반짝임 따라

멈출 수 있는 힘과

새롭게 시작하는 설렘에

감사하다 크게 외치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