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로 야구를 보면 네모난 프레임에 공을 어디로 던졌는지 보여준다. 이런 결과를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해당 결과를 심판도 볼 수 있게 만들면 오류 가능성이 매우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선 한 번씩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 불완전한 심판의 결정을 따른다. 왜 스포츠는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AI를 도입한다고 해도 오심은 생기기 마련일 텐데, 우리는 AI가 만든 오심이 승패를 뒤바꾼다면 컴퓨터 오류도 스포츠의 일부야라고 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한국시리즈 결승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재경기 청원이나 AI심판 폐지 등의 요구가 빗발쳤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오심을 했다면 우리는 심판을 욕할지언정 경기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이런 차이는 인간의 권위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스포츠는 이 게임의 지배자는 심판이고, 틀려도 인정하겠다는 합의에서 시작한다. 심판을 경기의 일부로 인정한다는 합의가 전제되어 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권위에 의해 돌아가고, AI는 그런 권위를 갖지 못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일 내에 AI가 판사처럼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는 미래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판단과 결정을 하지 않는 영역이라면 결과가 엉성하더라도 손뼉 쳐준다. 예를 들어 작문, 사진, 영상 제작 같은 창작 활동은 인간보다 부족하더라도 조만간 인간을 뛰어넘을 수도 있겠다며 칭찬한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온다. 그래서 당분간 AI의 발전은 추천, 정보 제공, 창작의 영역에 국한될 것으로 본다. 이 말이 AI 판사가 영원히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은 언젠가 AI의 권위를 인정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스포츠에서 AI판정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이런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데에는 물체로써 존재하는 AI로봇의 등장이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는 멀리 있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것에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한다. 때문에 로봇의 등장은 수많은 로봇을 각각 하나의 객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인식의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