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끝나야 완성될? 스크립트

도슨트 입문기 1. 2

by 도삽J

1. 전시가 끝나야 완성될? 스크립트

우리는 큐레이터의 전시 기획 의도를 이해하고 스크립트를 쓰기 위해 카페에 앉아 전시 리플릿을 보던 중이다. 병치의 미학, 인류세, 자본세, 비가시영역, 파시즘 등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 잔뜩 모여 문장을 이룬다. 선배 언니도 쉬운 문장들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했다.

주로

[해체하고


균열을 내고

경계를 넘거나 허물고

거부하고 고발하고 꼬집고

확장하고 들춰내고 풍자하고 ]

하는 내용이다.

내가 전시 해설 봉사를 할


첫 전시는 현대미술이다.

‘진격하는 B급들‘

참여 작가 24팀,

로비와 5개의 전시실에 총 72점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와 작품에 관한 500장가량의 자료를 읽고 정리해야 한다. 내가 편하게 쓸 단어와 입말로 바꿔야 한다.

동선을 정하고 시간은 50분을 넘기지 않아야 하는데…막막하다.

- 관람객 앞에서 얼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 어버버 하다가 뒤죽박죽 돼 버릴까 봐 불안해!


전시 오픈 하루 전에 도슨트 라운딩이 있었다. 큐레이터가 전시관을 돌며 설명해 주는 시간이다. 처음 보는 작품들이다. 기획, 섭외, 연출이 매끄럽다. 마음 편히 관람객으로 즐기면 될 것인데… 왜 나는 사서 고생.

전시 오픈 열흘 전, 전시 해설 일정표가 나왔고 내 순서는 2주와 4주 차에 있다. ’ 라운딩이 끝났으니, 이제부터 해설 준비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실습 때 본 얼굴 둘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선생님, 저희 차 한잔 하면서 얘기 나눠요 “

- 아! 네~ 좋아요. -

“다른 기수들은 모여서 스터디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 진짜요? 저희는 처음이라 동기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

“ 작가와의 만남 오시죠? 그날 일찍 만나서 전시관 같이 둘러볼까요? “

- 네. 이왕이면 도슨트 시간 맞춰서 전시해설도 들어보면 좋을 거 같아요.-



이렇게 만남이 결성되었고,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오전에 동기 한 분과 선배 도슨트의 해설을 들었다.

1. 해설이 담백했다.


작가, 기획자, 관람객,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해설이다. 그리고 함께한 동기 샘의 해박함에 놀랐다. 두 분만 대화가 통하는 지점이 많았다. 나까지 셋 다 비전공자이지만 두 분은 그림을 자주 보러 다니고 좋아하는 분들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내가 이메일 문제로 자료를 못 받아서 몰랐던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나와는 견줄 수 없는 깊이가 있다. 괜히 한다고 했나? 사실 나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타입이라 그때까지도 도슨트 라운딩이나 작가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에 더 부풀어있었다.


날짜는 다가오고 준비는 미흡하고, 전시 영상들도 다시 볼 겸 미술관으로 갔다. 전시해설을 듣기로 한다.


2. 안면 있는 동기 샘이 당번이다.


본인도 첫날이라 불편할 수 있는데 흔쾌히 맞아준다. 초반에는 긴장한 게 보였는데 차츰 차분한 본인의 페이스를 찾는다. 막힘없이 척척, 얼마나 준비했을지 가늠이 된다. 끝나고 잘하라는 응원과 요약한 자료도 아낌없이 내줬다.

3. 해설하기 하루 전인데도 모르겠다. 스크립트가 잘 안 나온다. 오전 일정을 취소하고 미술관으로 갔다. 해설을 기다리는 사람이 나 혼자여서 선배 도슨트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나와 둘이서 전시실을 도는 중에 두 사람이 합류했다. 선배는 전시 주제를 잘 연결했고, 예외적으로 긴 시간을 할애해 자세히 설명해 줬다.

3인 3색 다 다른 해설이다. 내일 나의 해설을 해야 한다. 오전에 애써준 선배에게 카톡을 했다.


- 처음이라 막막하고 끝나면 뭘 감각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

“그 심정 잘 알죠. 전시가 끝날 때 스크립트가 완성되는 느낌이랍니다. “

나만 모르고 미완인 게 아니구나. 내일을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2. 처음이 아닌 것처럼


실습을 마치고 정식으로 도슨트에 선발됐다. 전시 해설이란 걸 정말로 하게 됐다.


전시해설을 하는 첫날.

8월. 평일. 오전.

30분 일찍 도착했다.

보관함에 가방을 넣고 수십 개의 명찰을 뒤졌다.

내 이름… 어디 있지? 있다! 자원봉사자 00정

희한하게 명찰을 목에 걸자 ’ 공(식)적인 ‘ 임무를 수행하는 모드로 바뀌는 느낌이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출근부에 서명하라고 알려준다.

5분 후에 로비 만남의 기둥에서 전시 해설이 있을 거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15분 전부터 나는 만남의 기둥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신참인 줄 눈치채지 못하게 첫날을 넘기고 싶은데 이렇게 초조하다.

배운 내용 적용하기

1. 든든한 지원군 만들기 - 미리 도착해서 대기하는 분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어 두라.

그러면 해설하다가 머리가 하얗게 되거나 말이 꼬이거나 할 때, 그들이 눈도 맞추고 고개도 끄덕이며 호의적인 반응을 하는 지원군이 되어줄 확률이 높다.

5분 전이 되자 40대로 보이는 남녀가 기둥 옆으로 온다. 그들이 두리번거린다. 내가 다가간다.

- 두 분 제가 사진 찍어드릴까요?

- 네, 감사합니다.

- 이쪽에 서 보시겠어요. 사진 잘 나오는 포토존이에요.

2. 관람객에게 정보 얻기

선배 도슨트가 했던 미술관 자주 오세요?’라는 질문이 적당하다고 느꼈다.

부담 주지 않고 가볍게 던질 수 있으며 유용한 개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미술관 자주 오세요?

- 가끔요, 여기는 처음이에요.

다른 지역에서 오셨다고 덧붙인다.

3. 50분에 맞추려면 40분에 끝낸다고 생각하고 해야 45분에 마무리하게 된다.

되도록 45분을 넘기지 말라! 선배이자 지인 언니의 조언이다.


첫 해설 마무리 인사까지 하고 시간을 보니 45분이다.

위의 세 가지 내용은 실제로 적용해 보니 꽤 유용하다.

이번 전시를 처음이 아닌 것처럼 하는 게 목표였는데, 다행히 첫날 전시해설은 무리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두 번째 하는 날, 시간에 대한 감각이 몸에 익지 않아 30분(10:30- 11:20) 시작인데 정각이라고 (10:00- 11:00) 착각했다.

2 전시실까지 잘 왔는데 시간을 보니 10:45이다. 속으로 ‘15분 안에 끝내야 해!‘

재빠르게 3 전시실부터 5 전시실까지 해설을 해갔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다시 미흡했던 4 전시실로 갔다. 그야말로 우왕좌왕했다. 그날은 가족과 지인들이 와주어 12명 정도의 인원이 움직였다.

정각에 시작하고 60분 기준으로 일해온 세월의 익숙함, 새로운 것의 미숙함이 불러온 혼란이다. 직접 해봐야 알게 된 문제다.


매번 화살기도를 하고 시작한다. ‘오늘 만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이끄소서~’ 전시 해설이 끝나면, 엉성했던 내 스크립트 틈 사이가 살짝 조여지고 이전보다 탄탄해진다. 관람객을 만나야 비로소 메워지고 엮어지는 것을.



‘처음이 아닌 것처럼’ 이 목표도 처음이니까 세운 거다.

베테랑이라면 ‘처음처럼‘을 되새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