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휴대가 용이한 악기
이왕이면 동양의 악기
국악원에서 배울 수 있는 악기
이십 대에는 자유여행을 하면서 전 세계를 둘러보고 싶었다. 그때 악기를 하나 동반한다면 해금이 좋겠다 싶었다.
악기를 따로 배운 건 초등학교 기악부에서 친 큰북과 피아노교습소에서 배운 어린이 바이엘이 전부다. 리듬감은 있는 편이고 음감은 없는 편이다.
삼십 대가 되었고 해금연주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국악원에 갔다.
해금은 명주실을 꼬아 만든 두 개의 줄 사이에
활의 말총 부분을 끼우고 문지르며 진동시켜 소리를 낸다.
오른손이 활을 잡고 팽팽하게 당겨야 한다면 왼손은 악력으로 줄을 눌러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데, 정해진 손의 위치가 있는 게 아니다. 알아서 짚어야 한다.
해금 교실에는 해금이 비치되어 있다. 악기를 한 개씩 골라서 들고 바닥에 1인용 매트를 깔고 앉는다. 첫 주는 기본적인 소개와 설명이다. 수강생 모두 똑같이 시작했고, 집에 악기가 있어서 따로 연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셋째 주가 되니 악보를 보고 소리를 낸다. 제각각 요란하다.
후달달… 양손의 긴장감은 물론, 절대음감이 필요하다. 정확하고 깔끔한 소리를 내는 한둘을 빼고는 다들 엇비슷하니 괜찮다. 교실 안은 여전히 튜닝 중이다.
한 달이 지나자 그럴싸하게 일정한 음을 낸다. 나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다. 신기하다. 조율은 끝났다.
두 달째가 되자 개인차가 생겼다. 나만 몇 주째 제자리에서 끽끽 대고 있다. 의문이 생긴다.
‘집에 해금이 있어서 연습이라도 하고 오는 것일까?’
해금 강사는 회원들에게 3개월까지는 해보고 사라며 성급한 악기구매를 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렸다. 나처럼 웬만하면 사고 보는 사람에게는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잘 다듬어지는 수강생들의 소리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나의 왼손 손가락은 갈 길을 잃고 더듬더듬 헤매고 오른손은 확신 없이 왔다갔다 활을 문지른다. 이런 내가 싫다. 불협화음. 난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
그 무렵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서른이 넘어서 현악기를 새로 시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물론 다른 악기를 이미 잘 다루거나 음감이 있는 사람은 예외일 것이다. 절대적으로 음감이 없는 나를 인정하자!
해금을 시작하고 두 달 정도 지난 후에 더 배우기를 포기했다. 자의로 등록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둔 유일한 수업으로 기억한다.
수박 겉핥기식 배움에서는 수박을 들어보고
무게를 가늠한 후에 살며시 내려 둔 경우에 속한다.
수박은 무거워야 하고 해금은 가벼워야 했다. 해금은 내가 들기에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