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눈이 지나간 다음 날, 해 질 녘. 퇴근하고 아파트 지하에 주차했다. 집으로 올라가지 않고 1층에서 내렸다.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다. 이 시간에 급한 전화는 없을 거야. 산책만 하고 한 시간 안에 집에 들어갈 거니까!
저수지 쪽으로 들어서자 기막힌 석양이 펼쳐져 있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 그런지 온도는 평소보다 5도 정도 내려가 덥지 않다. 물 냄새도 끈적임도 없다. 여름치고는 이례적으로 쾌적하고 맑다. 사진을 찍으려고 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다 되었다. 저건 무조건 찍어서 남겨야 하는 그림인데 어떻게 하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 폰을 빌린 후 그 폰으로 사진을 찍어 나에게 전송하는 방법이 있다. 일전에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산책하는 여자분과 아이의 모습이 내 사진에 찍힌 적이 있다. 지우려다 문득 나라면 소장하고 싶은 사진이다 싶어서 앞으로 다가가 사진을 보여주고 동의를 얻은 후 그 자리에서 전송해 주었다.
10분 정도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저수지 산책로다. 일몰을 마주하고 걷는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른쪽 하늘을 주시하는 동시에 왼쪽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흘깃거린다. 대상 물색 중이다. 가끔은 아는 이도 마주치는 동네 산책이다. 이 길 초입부터 시작된 탐색과 고민은 길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어떻게 글로도 그림으로도 표현할 재주가 없는 나다. 유일한 방법이 사진인데 그마저 여의치 않은 현 상황과 내 무력함에 화가 날 지경이다. 그만큼 담고 싶은 하늘을 맞닥뜨렸다. 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계속 달라진다. 지금이 아니면 결코 다시 만날 수 없다. 꺼진 폰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고개를 들어 주변 사람들을 살핀다. 빌릴 용기는 있다. 하지만 내 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다. 더구나 타인의 산책을 멈추게 할 권리가 나에게 있냐는 물음이 스친다. 그냥 이 주변 흐름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이 순간을 상당히 신성하게 여기고 있는 나를 본다.
평소 산책길엔 사진을 찍는 사람을 한두 명은 꼭 본다. 오늘은 안 보인다. 이 멋진 장면을 눈여겨보거나 찍는 이도 없다. 네 눈에나 그토록 놓치고 싶지 않은 장관이지,라고 말하듯이 다들 걷기에 여념이 없다.
근처에 있을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이 광경을 담아두라고 하고 싶다. 무심코 폰을 꺼낸다. 전화기가 꺼졌으니, 사진도 전화도 안 되는 건 마찬가지 하하하!
눈으로 담자. 꾹꾹 눌러 담자. 박혀라! 뇌리에.
묘사한다면 어떤 단어로, 칠한다면 무슨 색을 사용하면 될지 생각해 본다. 살굿빛, 쪽빛, 은빛… 역시 무리다. 화가와 작가가 더없이 부럽다.
걷는 도중에 큰 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는 쪽을 지난다. 이제 나무들 속에서 지저귀는 여러 종의 새소리까지 더해진다. 합창이다. 특히 한 종류는 무슨 새의 울음인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평소처럼 새소리를 녹음하려고 폰을 꺼내다 아차 한다. 해 질 녘의 황홀한 하늘과 생기 가득한 새소리, 오늘 이런 완벽한 산책길을 만나게 될 줄 알았더라면 난 요로코롬 무방비로 길을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100퍼센트 충전된 폰에 사진과 영상 저장을 위한 공간 확보까지 하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오늘을 특별하게 만든 건 폰이 죽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폰이 살아있었다면 사진을 찍고 녹음하고 그걸로 만족한 산책으로 마무리되었을 거다. 폰이 죽어서, 나는 어떻게든 이 우연한 황홀을 기억해보려고 갖은 애를 쓰는 거니까. 죽은 폰을 들고 배시시 웃는다.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