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엄마 아빠 나 남편, 넷이 일요일 저녁 식사로 콩국수를 먹기 위해 나선다.
주차장(터미널) 상가에 국숫집이 있다고 해서 일단 찾아가 본다. 친정 집에서 멀지 않아 걸어간다. 8월 6일이라 덥다. 가는 길이 좁다. 차도가 인도이고 인도가 차도가 되는 길. 인도는 따로 없다. 각자 알아서 요리조리 피해 갈 뿐이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아빠와 주변 차들의 움직임에 눈을 떼지 않고 뒤쫓는다.
아빠의 눈빛은 우리 집 새끼 고양이 수키가 겁먹은 모습과 유사하다. 아빠의 몸이 이상하게 움직인다. 엇박자다. 제 타이밍에 나가지를 않는다. 반응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아빠는 이제 노인이 됐다.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느려요 “ 발레원장님의 말이 스친다. 내 생각에 난 이미 피케 턴(회전)을 적당한 속도로 세 번 했고, 음악은 맞아야 하는데 여유 없이 음악에 쫓기다 어정쩡한 자세로 끝난다. 나도 이제 느려질 일만 남았다.
우리 네 사람에게서 ’ 식당으로 향하는 여정‘이라는 제목의 4인 군무 팀이 그려진다. 맨 앞 아빠, 다음 나, 내 뒤 엄마, 맨 뒤에 남편.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좌로 갔다. 우로 갔다. 모였다 흩어졌다 빠르게 걷다 천천히 걷는다. 두 분이 외식한다면 펼쳐질 2 인무를 상상하게 된다. 편한 표정과 동작의 파드되(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는 아닐 것 같다.]
식당 간판에 팥칼국수, 수제비, 잔치국수 메뉴가 크게 보였고 콩국수는 안 보여서 그냥 지나칠 뻔했다. 식당에 들어갔다. 주말은 6시까지, 평일은 3시까지 영업을 한다며 6:15분인 지금은 식사가 안된다고 했다. 우리 네 사람은 바로 발을 떼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사장님이 제안을 했다.
“아직 식사 중인 손님도 두 분이 계시고 하니까 시간을 조금 연장해서 해드릴 수는 있는데요. 메뉴가 되는 게 콩국수 하나라서요.” 우리는 모두 콩국수를 먹으러 왔다고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빠는 주문하면서 “맛도 없게 해 주세요” 하고 덧붙인다. 아빠는 닭띠(1945) 팔순이시다. 나는 쉰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빠라고 부른다. 아무래도 계속 그렇게 부를 거 같다.
아빠는 콩국수에 들깻가루를 넣으면 맛이 있고 땅콩 가루를 넣으면 더 고소하겠다며 당신은 어느 식당에 가든 항시 “맛도 없게 얄궂이 해주소”라고 주문한다고 해맑게 웃으며 특유의 화법을 공유하신다. 아빠는 농담을 즐긴다. 말을 재밌게 하고 그걸 받아주는 상대를 만나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 분이다. 그런데 평생을 함께한 엄마는 덤덤하다. 경상도 장인의 언어를 반의 반도 못 알아듣는 전라도 사위도 무반응. 어색한 식당 공기가 살짝 불편한 딸. 그 딸이 나다. 현재 아빠의 주요한 타깃은 식당 사장님 내외인데 그들은 타지 출신으로 유머 코드가 다르다.
아빠의 유머가 빵빵 터지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때가 아빠의 전성시대인가 싶다.
3년 전 뇌경색으로 급성기 치료를 받았다. 그 후로 꾸준히 관리해서 지금은 거의 다 돌아왔지만,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얼마 전 통화 중에 휴대전화 충전기 문제로 두 분이 다투셨다고 들었는데, 엄마도 아빠도 내막을 속 시원히 얘기를 안 하신다. 아빠는 한 번씩 급발진한다. 타고난 성정과 뇌 속에서 일어나는 어쩌지 못하는 영역의 만남으로 연출되는, 충돌과 충동일 테지.
아빠는 엄마와의 생활이 답답함을 토로한다. 나는 한 번씩 웃으며 두 분께 말한다. 아직도 이혼을 안 했냐고. 가끔 보면 누구보다 끔찍하게 서로를 챙기고 또 많은 시간 서로가 참 끔찍? 하다.
계절 메뉴인 콩국수는 훌륭했다. 양도 푸짐하고 겉절이와 단무지도 맛있었다. ”손님들이 읍내에서는 젤 맛있는 집이라고 해요 “ 사장님이 자랑한 이유를 알겠다. 나는 국수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갈증이 나서 국물만 두 사발, 남편 것까지 쭉 들이켰다. 하얀 면만 남았다. 사장님 부부가 다음에 오면 주전자 국수를 꼭 먹어보라고 권한다.
엄마 아빠가 SOS를 치기 전에, 아빠를 모시고 그 국숫집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다음 달이 추석이니…
월요일 늦은 저녁, 남편이 뜬금없이 어제 내가 식당에 남기고 온 콩국수 면이 떠오른다고 한다. 거의 한 그릇을 다 남기고 왔다. 나도 자꾸 떠오른다.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오고 간 시답잖은 얘기들, 표정들, 갈 때마다 점점 아이 같아져서 짠하게 느껴지는 내 부모가.
얼마 전 이종사촌 오빠가 이모와 함께 들렀을 때, 안된다는 걸 집요하리만큼 물고 늘어져 준 오빠 덕에 에어컨 가스 교체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집 노인네들은 안 된다고 하면 수리 기사가 올 때까지 땀 흘리며 기다렸을 거다.
내 아이가 성인이 되면 나는 더 적극적으로 내 부모의 보호자가 될 수 있을까?
살얼음 콩국수와 뜨끈한 주전자 국수. 냉전과 열전 사이 잔잔하고 평화로운 상태는 어떤 국수일지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