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멸과 기억
산에 올라갔다가 버려진 우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곳은 이전에 마을이 있었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마을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부서진 판자들이 널브러진 채로 수풀이 가득 자란 우물만이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나는 거기서 우물 가까이 다가가서는 우물 안을 살폈다. 우물 안은 어둠만 보였지만 무언가 물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유심히 들여다보는데 그만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우물에 빠진 것이다. 처음에 나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것이나 손이 가는 데로 잡았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부리를 잡고 다리를 돌담에 간신히 걸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심장이 망치질을 하듯이 거센 고동을 치는 것을 느꼈다. 다리에 쓸린 상처가 난 것이 분명했지만 긴장감으로 인해서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순간, 우물 밑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알 수 없는 소리로 인해서 나는 바닥을 내려다보는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돌부리를 잡는 힘이 약해져 그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굴러 떨어지면서 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부딪쳤다. 그렇게 정신을 잃어버렸다.
눈을 가까스로 떴을 때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주변은 어둠으로 가득했고 콧등에 무언가가 흐르는 기분이 들어 손을 올리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늘은 환했지만 밤이었다. 달빛과 반짝이는 별들이 열쇠구멍처럼 작은 우물 구멍을 통해서 새어들고 있었다.
나는 울고 싶은 마음에 몸을 덜덜 떨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금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깡 깡, 좀 더 선명해지고 커진 이 소리는 마치 곡괭이로 암석을 내려치는 소리 같았다. 소리가 점차 커졌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서 그는 공포감을 느꼈다. 괴물이 달려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한참이나 가만히 있어도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고 야생동물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소리만이 커졌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했고 이따금씩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갑자기 눈 부신 빛이 자신을 쪼아대며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 빛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하얀색 빛이 눈앞에 보였다. 고개를 돌린 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빛이 눈앞에까지 당도했음을 느끼자 나는 어렵게 눈을 떴다. 그러자 아주 작은 체구의 사람이 자기만 한 곡괭이를 들고 서 있었다. 광부처럼 보였다. 광부는 내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전등을 껐다. 다시 보니 더욱 작았다. 어린아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키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비해 몸집이 비대하게 장대하고 두툼해 보여서 기묘한 인상을 주었다.
“당신은 어쩌다가 이곳에 이러고 있습니까?”
광부가 생각지도 못한 정중하고 차분한 어투로 물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아서 괴로워하던 찰나에 나는 문득 구사일생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하면서 ‘아 이곳 주변에서는 갱부가 있구나. 그래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지하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어.’
“저는 산에 온 사람인데 실수로 넘어져서 이곳에 떨어졌습니다.”
광부는 나의 망가지고 흉한 두 다리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그렇군요. 불행한 일이 있었군요. 무척이나 불행한 일이.”
“그래요. 저를 좀 도와줄 수 있나요?”
“도와줄 수 있냐고요? 괜찮겠습니까?” 광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하죠.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제발.”
광부는 곡괭이를 어깨에 메고는 무너진 건물처럼 쓰러져 있는 나를 다른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했다. 엄청난 힘에 놀란 나는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힘이 엄청 세군요.”
“저희는 전부 힘이 셉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를 건설할 수 없죠.”
“도시?”
“예. 저희가 사는 우룹스에서는 도시 건설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 도시들이 건설되었고 머지않아 수십 개의 도시들이 건설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도시들이 건설된다고요? 하지만 이 주위에는 그럴만한 땅이 없을 텐데요?” 나는 광부에게 물었다.
광부는 나를 힐끔 보더니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기분이 나빠졌나 싶어서 나는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기분전환을 위해서 꾸민 음성으로 그를 칭찬했고 광부는 걸음을 재촉했다. 점차 빨라지는 것 같았다. 바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광부는 다시 말을 꺼냈다.
“도시가 전부 건설되면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전쟁이요? 어째서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극심한 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광부는 씁쓸하게 말했다.
“자원이 부족한데 도시를 짓나요?”
“도시를 짓지 않으면 우리는 그쪽한테 질 겁니다. 그쪽도 자원이 부족해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죽이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슬퍼졌다. 오한이 들어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잠결에 실눈을 뜨고 주변을 보면 흐릿하게 수많은 광부들이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고 여러 독특하개 생긴 탑들이 여기저기 솟아나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내가 오른 산 주변에 갱부 따위는 없어.’
잠에서 깼을 때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좁은 방이었고 벽에는 이상한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창문이 하나뿐이었는데 굳게 다쳐 있어서 밖을 확인한 수는 없었고 알 수 없는 장치가 기계음을 내면서 수증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나를 데려다준 광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두 손을 들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였다. 잘 움직였다. 두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잘 움직였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몸이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지자 이곳에서 빠져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바닥이 열리더니 광부와 금빛 담요를 여려 겹으로 두른 것 같은 작은 소녀가 나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이국적인 용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광부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사람과 다르게 무척이나 작았다. 그녀는 기계를 어루만지더니 수증기를 확인했다.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뼈가 부러졌었습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움직여도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인가요? 무슨 병원이죠?”
“이곳은 5번째 도시의 34번째 탑의 2번째 방입니다. 치료를 하는 곳이죠.”
“당신들은 누구인가요? 저랑 같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저희들은 당신과 같은 종족은 아닙니다. 저희는 노움입니다.”
노움. 생각보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들어왔기에 여기서 놀랄 이유도 별로 없었다. 오히려 호들갑을 떨면서 놀라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렇군요. 그런데 치료가 이렇게 빨리 되나요? 뼈가 부러졌는데 말입니다.”
“그게 바로 자원의 효능입니다. 자원을 곱게 갈아서 수증기로 만들어 주입하면 자연스럽게 치유가 됩니다. 어떤 외상이든 병이든 말이죠. 하지만 자원은 이제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치유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소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광부에게 이미 이들의 사정을 어느 정도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자원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도시를 짓기 위해서 자원이 낭비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별 다를 바가 없군.’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은 정말 친절하군요.”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래요. 우리들도 알고 보면 꽤 선량한 면모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들은 잊히고 있죠.” 소녀는 적막해진 좁은 병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나는 이만 돌아가야겠습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을까요? 치료 비용 같은 것을 말입니다. 제가 돌아가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불행한 일에 일일이 대가를 지불할 필요는 없습니다.” 광부가 거친 음성으로 말했다. “그냥 운이 좋았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래도 도움을 주셨는데요?” 나는 걱정에 물었다.
“괜찮아요. 당신들의 것들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 돌아가도록 합시다. 제가 바래다 드리지요.”
‘내가 잘못 생각했어. 이자들은 인간과는 확연히 달라. 이들은 인간과 다르게 선량하고 탐욕스럽지 않아.’
돌아가는 길은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나에게 마차는 조금 좁았지만 탈 수는 있었다. 돌아가면서 나는 창밖을 보았다. 잠결에 비몽사몽 하게 보았던 도시의 전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고딕 양식을 떠오르게 만드는 수백 개의 탑들이 잔뜩 솟아나 있고 그 사이를 무수한 다리들이 연결하고 있었다. 나도 그 다리들 중 하나를 건너가고 있었는데 그 밑에는 안개가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탑들이 멋지군요.” 나는 곡괭이를 옆에 두고 있는 광부에게 말했다.
“탑은 전쟁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들처럼 선량하고 탐욕적이지도 않은 종족이 전쟁을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 말에 광부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처럼 밖을 쳐다보았다. 한동안의 침묵.
“우리도 탐욕스러울 때가 있고 선량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운이 좋은 겁니다. 나는 적어도 탐욕스럽지는 않으니까요.”
“전쟁이 나면 당신은 어떻게 됩니까?”
“나도 전쟁에 동원되겠지요.” 광부가 말했다.
이윽고 마차가 안갯속으로 들어갔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저 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움직일 뿐이었다.
안개가 걷히고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동굴이 나왔다. 거기서 나는 광부와 함께 마차에서 내려 광수레로 갈아타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광부와 같은 여러 노움들이 곡괭이질을 열심히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 광경을 지나서 어떤 구멍으로 들어가더니 철로가 없는 부분이 나와서 우리는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꽤 걸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멍은 길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적막을 깨기 위해서 그리고 여전히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 말했다.
“그래요.” 광부는 전과는 다르게 쌀쌀맞게 말했다.
멀리서 빛이 보였다. 그곳으로 가니 또 다른 우물이었고 처음 우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우물이었다.
“우물이 한 개 더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이 산에는 우물이 많습니다.” 광부가 말했다.
“제가 당신들을 한번 더 볼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우리는 전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와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니요. 아까도 말했지만 당신들의 것들은 우리에게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먼 옛날에는 나름 교류를 했다고도 합니다만 이제는 아닙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요. 그러기에는 우리와 당신들, 모두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습니다. 늙어 버렸습니다.” 광부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슬펐다. 이대로 인연을 끝내버리고 싶지 않아 미련이 자꾸만 생겼다.
“나는 당신과의 만남이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꿈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꿈이 아니게 됩니다.”
“고마웠습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들 전부를요.” 나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서 편지가 왔다. 광부가 보낸 편지였다. 나는 잊혔던 기억을 되찾은 듯이 놀라서 방으로 들어와 편지를 뜯었다. 잊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음에도 흩어져버린 기억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며 편지를 읽었다.
-편지를 쓸 줄은 몰랐는데 결국 쓰고 말았습니다. 나는 편지 같은 것은 잘 쓰지 못하고 쓴 적도 없어서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썼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벌써 여러 탑들이 무너지고 수많은 노움들이 죽었습니다. 저도 곧 참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마 저는 얼마 안 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대방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 둘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우리는 멸망해 버리고 말 것이고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렇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운이 좋아서 구제를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운이 좋아서 구원을 받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는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그들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들을 기다리기 위해서 우물에 숨고 싶었다. 우물에 숨어 있다 보면 그가 다시 나를 발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