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005년에 강남 아파트를 샀다면….

by 보건소

신랑이 컴퓨터를 잘 다룬다.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하니, 프린트 하나를 하더라도 낑낑거리는 나보다는 그는 분명 전문가이다. 그런 신랑의 실력으로 인테리어 디자인 도면을 직접 만들었다. 디자인 프로그램을 보며 몇 날 며칠 연구하더니,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도면을 만들어 낸다. 2차원적인 도면은 물론이며, 3차원적인 도면 디자인까지, 정말 신랑의 재능이 이런 데서 빛을 바랄 줄은 몰랐다.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며 여러 자료를 꼼꼼히 수집한 신랑은 특히 유튜브의 인테리어 쇼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인테리어 쇼에서는 호텔식의 최신의 고급 인테리어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하는 것으로, 최근 대세인 인테리어 재료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인테리어 쇼를 진행하는 디자이너에게 장문의 편지까지 써서, 집의 인테리어를 맡기려 했으나, 그분이 워낙 바쁜 관계로 시원하게 거절당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신랑이 총대를 멘다. 최근 가장 유행하는 히든 도어(문이 어디 있는지 표시가 나지 않게 하는 기법)와, 라인 조명(천정에 길을 내어 한 번에 이어지는 조명), 싱크 상부장에 올록볼록 나오지 않게 하는 써라운드 없애기를 중점으로 차근차근 디자인을 정립해 갔다. 인테리어 과정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인테리어의 절대적인 목푯값은 없고 각 집마다 상대적인 목푯값만 있을 뿐이다. 욕심을 부리면 한도 끝도 없고, 몇억 단위로 올라간다. 어느 선까지 기능적인 면을 살리고, 어느 가격까지 재료를 결정하고, 어느 면까지 미적인 부분을 살리느냐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답이 없는 고차원적인 문제였다.


사실 재건축 아파트 인테리어는 난관이 많다. 집이 워낙 오래되어, 라인 조명, 파티션, 숨은 조명등 새로운 최신의 기법을 시도한 경우가 드물었다. 게다가 벽과 천장이 휘어서, 라인 조명과 히든 도어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신랑은 본인이 원하는 티브이장과 상부장을 무몰딩으로 디자인하여 따로 주문했다. 그리고 밑에 간접조명을 주문해 전선을 연결하고, 상부장 밑에 직접 달았다. 제법 실력이 있다. 시아버지가 생전에 시골에서 집 짓고 싶다 하시더니, 그 피를 물려받았나 보다.

'아무래도 새로운 적성을 찾은 것 같아.'

그렇게 몸은 힘들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인테리어는 천천히 느리게 진행된다.

부엌의 싱크대가 원래 하나밖에 없는 것을 ‘ㄷ자’ 주방으로 만들고, 그 밑에 식기 세척기를 넣었다. 부엌과 거실을 분리하고 조리공간을 충분히 만들기 위함이다. 덕분에 기존보다 신랑 덕분에 3배 넓은 깨끗한 주방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신랑은 강남으로의 이사를 탐탁지 않아 했다. 그는 우리 네 식구 생활할 깨끗한 40평대의 아파트를 처음부터 원했고, 10 원한 장 대출을 지극히 싫어하는 대한민국 평범한 직장 남성이다. 이사한 집이 좁고, 낡고 게다가 대출은 산더미처럼 쌓여서 처음에 입이 삐죽삐죽 나오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인테리어를 진행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회사일이 끝나 밤 10시가 넘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강남 집에 간다. 그리고 핸드폰 불을 켜고 집안 곳곳을 살피고, 사진을 찍으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머물다 왔다. 다행히 배관공사를 해서 춥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춥기까지라도 했다면 가지 말라고 말렸을 일이었다.

‘피곤한데 또 갔어?’

‘우리 집이잖아, 진짜 공사판 개판, 귀신 나올 것 같은데. 막상 가면 마음이 편해.’

그렇게 신랑은 허름한 우리 집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그와 나의 겨울 점퍼는 그해 내내 공사판을 돌며 해져갔다. 인테리어 기간에 신랑이 한 일은 아직도 참 고마운 일이다. 가전 가구 모두 신랑의 하나하나 최상의 제품을 최저가로 구매 예약했다. 어느 것 하나 신랑의 손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한 달가량의 인테리어 기간 동안 나는 오전에 점검하고 신랑은 밤 10시에 점검을 했다. 수도배관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가전과 가구를 포함한 전반적인 도면을 비교하며 체크했다. 누구한테 물어볼 데도, 물어볼 수도 없다.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꼼꼼하게 한다고 하지만 어디 일이 사람 계획대로 되는가. 코로나는 멈출 줄 모르고 신랑은 덜컥 자가 격리되었다. 인테리어를 주도하던 신랑이 갑자기 감금되니,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아침밥을 챙겨주고, 신랑 밥을 차려서 방으로 넣어주고, 새벽마다 인테리어 현장으로 갔다. 벽지가 다 벗겨진 벽은 반백년 동안의 흔적이 남아있는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 있었다. 고풍스러운 벽지가 5겹이 겹쳐있었다. 100개는 넘는 못 자국에 벽은 휘었으며, 부엌은 지박령 바퀴벌레의 보금자리.

경악을 금치 못하는 그 장면으로 바퀴벌레를 방어하기 위해 모든 틈을 막아야 하기로 미적인 부분보다 기능적인 면에 더 치중한다. 우리 할 수 있는 부분은 건축용 석고인 퍼티를 사서 직접 갈라진 틈에 발랐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인테리어 사장님께 부탁하여 틈을 우리가 발견한 틈을 꼼꼼히 메꿨다. 1kg이었던 건축용 퍼티를 다 써버리고 다시 5kg을 주문하여 그마저도 다 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밤에 혼자 무섭지도 않았나 보다. 다음 인테리어 작업 전, 즉 벽지 바르기 전에 집안의 모든 틈을 막아야 했으므로 무서운지 피곤한지 그때는 가늠할 수도 없었다.

나 혼자 현장을 살피고 사진과 영상을 찍어 신랑과 함께 의논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갔다. 이사 날짜를 잡아놓고 자가 격리자가 있으니 눈물을 머금고, 급하게 이삿짐 차가 오는 날짜를 옮겼다. 하지만 처음에 이사하기 딱 좋은 날짜로 받아놓은 길일이니, 그날 나 혼자 이사를 시작한다. 시어머니와 친정 식구들에게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다. 나 혼자 이사한다고…. 모두 응원해 준다.

밥통을 꼭 옮겨야 이사가 성립되는데 이런 우리 집엔 밥통이 하나밖에 없다. 이 밥통을 옮겨버리면 당장 우리가 밥을 해 먹을 수가 없어 낭패다. 급하게 너무 든든한 시어머니에게 전화한다. 우리 일이라면 어느 것 하나 망설이지 않는 마음이 넓은 우아한 시어머니….

할머니가 살아생전 사용하셨던 빨간 10인용 밥통을 기꺼이 내주신다. 그렇게 빨간 밥통과 내가 가장 아끼는 나무의자, 남편과 아이들이 가장 많이 입는 옷가지를 챙겼다. 그리고 쌀도 챙겼는데 나중에 빨간 밥통을 열어보니 거기에 쌀이 한가득 있더라. 혹시 잊어버릴세라 시어머니가 챙겨주신 배려였다. 어쩐지 밥통이 매우 무겁더라. 옛날 밥통이라 엄청 무겁다고 생각만 하고 열어볼 생각도 못 했는데. 나중에 보니 시어머니의 사랑이 그득 담겨있었다. 아침에 차 옆자리 꾸역꾸역 싣고, 안전띠를 단단히 채운다. 그렇게 나 혼자 강남 집의 이사를 시작한다.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해 모든 이삿짐이 옮겨지는 이삿짐센터 날짜는 조율되었지만, 우리 집의 공식적인 이사 날짜는, 나 혼자 이사한 그 길일, 그날이다. 가전이며 세간이며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 집의 공식적인 이사 날이다.

‘나 혼자 이자만 오늘은 이사하는 날이다.’

싱크대와 주문한 가구가 오는 날이 정해진다. 이삿짐센터가 움직이는 이사 이틀 전에 시공하려 하였으나 또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진다. 정말 강남은 흥미진진한 곳이다. 풋내기들의 입성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터지고 신랑은 자가 격리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사 날짜를 옮겼는데 또 무슨 사고가 우리를 반기고 있는 것인가. 엘리베이터에 급작스레 공고가 붙은 것을 발견하였다.

'수능 기간 전 일주일 동안 단지 내 모든 인테리어를 전면 중단하시오.'

강남은 수능 기간 인테리어 전면 금지이다. 이 동네의 공공연한 룰이다. 인테리어 사장님은 이 동네 규칙이라며 당연해한다. 타협 따윈 없다. 그리고 우리도 그 사실에 적응한다. 약속한 날짜에 들어오기로 한 가구는 이 강남 규칙 때문에 또 미뤄진다.

'소리 크게 나는 작업 아닌데 그래도 진행이 어려울까요?'

라고 묻는 우리에게 가구 업체 사장님은 질색팔색을 하며 고래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렇게 사건 사고는 우리의 친구처럼 끝까지 곁에 머물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인테리어를 드디어 마무리한다. 만감이 교차한다. 무사히 마쳤다는데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시간에 쫓겨 겨우겨우 할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먼저 거쳐 간 이들의 조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무턱대고 맨땅에 헤딩하다간 나의 시행착오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번에 이사 올 인테리어를 새로 하게 될 모든 사람이 낭패를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서….

이번 인테리어가 끝이 아니리라. 결국, 새집으로 언젠가 가게 될 것인데 그때를 위해 지금의 이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인테리어에서 아쉬웠던 것. 전체적인 디자인적인 부분, 너무 낡은 아파트여서 해보지 못했던 것 (라인조명 못한 것은 신랑의 한이다. 조명에 대해서는 진심이다.) 이번 인테리어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다음 새 집에서는 훨훨 날아보리라. 이렇게 헌 집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담담히 기록해 나갔다.

'이번 인테리어에서 우리는 이런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당신들은 우리를 반면교사 삼아 그렇게 하지 말아라.'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닌 나에게 되뇌는 말이었다. 그렇게 뒷사람이 따라오도록 발자국을 남기고 우리는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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