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Jul 04. 2024

도착은 했지만 아직 시작은 아니야


 나는 참 대책 없는 사람이다.


 보통 해외를 나가면 유심을 챙겨가거나 현지에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승무원으로서 잦은 해외 체류를 하며 핸드폰의 인터넷이 안되면 안 되는 대로 와이파이가 가능한 곳에서만 주로 사용하는 게 습관이 되어 파리에서의 연락 수단 준비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다행히 XX역, XX시간에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해놓아서 망정이지!


 수녀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파리에서도 만남의 광장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오페라 극장’ 앞. 공항에서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이라 다행이었다. 어쩌면 파리 좀 몇 번 와봤다고 걱정이 안 됐었던걸 지도.


 공항버스를 타고 익숙하고도 자연스럽게 오페라 역에서 내렸다. 그 근처에 한국사람들에게 인기 많고 아주 유명한 스타벅스로 이동해 커피 한잔 시켜놓고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수녀님에게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와있었다.


 시간은 흘러 다시 정해 진 시간에 오페라 앞으로 갔다.

수많은 이방인들 속에 몇 없는 동양인, 그리고 수녀복.

이 정도면 인터넷이 안 됐었어도 큰 문제없었을 것이야!




 수녀님과의 모종의 거래(?)는 빠르게 진행됐다.

큰 캐리어엔 내가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파리에서 홀로 패션 쇼하며 필요한 것들이 들어있었고, 다른 하나의 작은 캐리어엔 몽땅 수녀님의 학용품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두 개의 캐리어를 그 작은 몸으로 끌고는 저녁 미사 참석을 서둘러야 하신다며 총총총 자리를 떠나셨다. 파리에 돌아오면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을 메아리처럼 남기신 채!




 나는 다시 오페라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갔다. 왜냐면 내일 오전 비아리츠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공항 근처에 호텔을 예약해 놓았기 때문이다.


 호텔을 고르며 일부러 공항 <->호텔 간 셔틀버스가 제공되는 곳 위주로 선정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호텔 셔틀버스 정류장을 여기저기 물어가며 찾아갔다. 역시 해외에 나가면 영어가 모국어로 변하는 미라클.


 이 과정에도 우여곡절이 꽤 있었는데. 'Bus'만 알아듣고 시내로 나가는 아예 다른 버스 정류장까지 갔다가 사진으로 캡처해 놓은 곳과 달라 이동, 또 이동했다. 그때의 내 모습은 약간 공항 떠돌이 유령 같았다고나 할까.


 슬슬 지쳐가고 어느덧 호텔 셔틀버스 정류장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 지 거의 1시간이 다되어갈 때쯤. 어느 고마운 공항 직원의 도움을 받아 사진 속 그 장소에 도착했다. 다른 호텔들의 셔틀버스가 오가는 것을 보며 ‘휴, 시간은 꽤 걸렸지만 잘 찾아왔네. 역시 기특해 나.’


 하지만 아까 봤던 다른 호텔의 버스가 두 번, 세 번 오는 중에도 내가 예약한 호텔의 버스는 오지 않았다. 이런… 배도 고프고 공항 와이파이도 잘 안되고 파리에 와서 내내 매고 다녔던 배낭이 바위처럼 무겁게 느껴져 초반의 당당하고도 자신감 넘치던 기세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셔틀버스 정류장에 앉아 2-30분가량 하염없이 기다렸을까. 참 재밌게도 계속 앉아서 기다린 나를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그건 바로 다른 호텔 셔틀버스의 운전사. 그는 자신의 일인 셔틀 운전을 하며 이미 두세 번 공항과 호텔을 오가며 계속 한자리에 있던 나를 보다 못해 말을 걸어준 것이었다.


‘안녕, 너 셔틀 타야 돼? 아까부터 계속 기다리는 거 봤어. 어디 호텔이야?’


‘응 안녕! 나는 힐튼 호텔로 가야 해. 근데 버스가 안 와.‘


‘힐튼? 거기 지금 코로나 때문에 잠시 호텔 셔틀 서비스 중단했어. 몰랐어?’


이런 젠장…


‘응, 전혀 몰랐어.‘


‘그래? 우리 호텔도 그 근처야. 내가 태워줄까?’


 알고 있었다. 이비스 호텔이 힐튼 호텔 근처라는 걸. 셔틀이 있다는 이유로 예약 리스트를 작성할 때 북마크 처리를 해놓아서 기억하고 있었다. 단지 호텔 방 스타일이 내 맘에 안 들어서 힐튼으로 골랐던 것뿐.


 이미 잔뜩 지칠 때로 지친 나는 돈을 얼마나 부르든 간에 상관없이 빨리 호텔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일단 버스에 올라탔다. 운 좋게도 손님은 나 한 명뿐이었다.


‘태워줘서 고마워. 근데 돈은 얼마나 주면 될까?’


‘별거 아니야 어차피 가는 길인데 뭐. 10유로만 줘.’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날강도!!!!!’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순간엔 ‘10유로! 싸게 먹혔다! 생각보다 적정한 금액이야!!’라고 속으로 외치며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도움의 손길을 낸 그 친구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고, 고마운 마음이 더 컸더랬다.




 호텔에 오기까지 험난한 시간을 보내며 시작하기도 전에 진 빠져버리는 게 아닌지 잔뜩 걱정되었다.

체크인을 하면서


‘나 여기 호텔 셔틀 중단 된 줄도 모르고 한참 기다렸잖아… 피곤해 죽겠어. 한국에서 오는데 12시간도 넘게 걸렸거든’


‘그래? 몰랐다고? 일단 미안해. 네가 예약한 방보다 한 단계 위로 업그레이드 해줄게. 편하게 쉬어!‘


 순간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나 홀로 탄 엘리베이터에서 엉덩이 춤을 춰대며 뜻밖의 행운을 축하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밀려온 것은 피곤함이 아닌 바로 배고픔이었다. 배낭을 뒤져서 찾아낸 비행기에서 혹시나 깨면 챙겨 먹을 요량으로 한국에서 사 온 바나나킥 과자 한 봉지와 하리보 젤리 미니 사이즈 한 봉지. 그리고 냄비가 없으면 끓여 먹을 수 없는 봉지라면을 대충 부수고 수프를 뿌려 앉은자리에서 다 해치워버렸다.


‘슬슬 내일 어떻게 해야 될지 좀 찾아봐야겠다.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뭐였더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아까 체크인할 때 받은 와이파이 액세스 코드가 적힌 종이를 보며 와이파이에 연결했다.


띠.로..리…


 신호는 잡히는데 인터넷이 안된다. 아니야, 안 되는 건 아닌데 이건 느려도 너무 느렸다. 혹은 잘되다가 갑자기 끊기거나.


 내일 비아리츠로 마음 편히 순조롭게 이동하기 위에 서는, 어쩐지 유심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자꾸 죽었다 살았다 나를 애태우는 핸드폰만 잡고 간신히 정보를 찾아냈다.


< 보통 프랑스에선 오렌지(통신사) 유심 사서 끼시면 유럽 웬만한 곳에선 다 사용 가능해요. 편의점에도 팔아요. 구하기 쉬움. >


 오렌지!!!! 오렌지 잘 알지!!!!! 파리에 올 때마다 오렌지유심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아 왜 오렌지를 생각 못했을까 나는?


 오렌지 유심을 사러 편의점에 가기로 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 빠르게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