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생일’에 대해 이야기하다 문뜩 이야깃거리가 생각났다.
매년 돌아오고 항상 축하받는 생일이지만, 작년 32살의 생일은 여느 때완 다르게 좀 특별한 날이었다.
23년 09월에 엄마는 병원에서 퇴원을 하셨고, 나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인간 사시나무가 된 엄마의 회복을 위해 몇 달간 휴직을 했었다.
엄마와 함께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엄마의 끼니를 아침, 점심, 저녁에 맞춰 준비하는 것이었다.
올빼미족 생활을 하던 나에겐 여간 곤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엄마를 살 찌우기 위해, 고칠 수도 고쳐지지도 않았던 나의 수면 패턴을 엄마의 식사 시간에 맞춰 바꾼 기적 같은 일도 벌어졌다.
자취할 땐 내가 배고프면 먹고, 입맛이 없으면 먹지 않으며 지내왔던 터라 각각 정해진 시간에 맞춰 식사를 차리는 것은 매일매일 미션과도 같았다.
요리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다들 ‘어느 정도 먹을만하다.’라는 평을 종종 들었던지라, 유튜브를 보며 엄마의 식욕을 돋울만한 요리를 찾아서 그대로 만들어주곤 했다.
좀 웃기지만 영양사에 빙의해 일주일치 식단도 매일매일 삼시세끼 다르게 짜놓기도 했었다.
설명을 다소 장황하게 한 것은, 한마디로 나는 어느 시점까지 항상 엄마의 식사를 차려왔다는 것. 엄마는 일절 요리에서 손을 떼고 내가 차려내는 밥만 드셨다는 것.
23년 12월 18일. 나의 32번째 생일.
그날은 이상하게도 미리 맞춰둔 4개의 알람소리도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자버렸다.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시간은 이미 엄마가 점심 먹어야 할 시간을 훌쩍 넘긴 뒤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집에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난다.
얼른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엄마가 주방에서 나와 나를 반겨준다.
‘딸, 푹 잤어?’
‘응, 푹 잤어. 미안해 엄마. 아침이랑 점심 못 먹었지? 내가 얼른 밥 차려줄게. 근데 뭐 하고 있었어? 참기름 냄새가 나네?’
‘오늘 딸 생일이잖아. 엄마가 미역국 끓였어.’
엄마가 미역국을 끓이셨단다.
퇴원하고도 거의 2개월 좀 넘도록 요리기구엔 손도 안 댔던 엄마가 내 생일이라고 손수 미역국을 끓이셨단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딸, 엄마가 나가서 케이크도 사 왔어. 우리 딸이 좋아하는 분홍색 케이크야. 배고프지? 얼른 밥 먹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주방 한편에 놓여있던 파란색 케이크 상자가 있었다.
케이크를 보며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매년 돌아오는 생일인데 딸 생일이 뭐라고?
체중도 건강했을 때보다 많이 빠져서 추위도 남들이 느끼는 것보다 몇 배로 더 탔을 텐데.
하필 한파 주의보가 떨어진 이 추운 날에 아침부터 케이크를 사러 갔을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케이크만 샀으랴? 다 먹고 집엔 없던 미역과 고기도 사 와서 끓인, 정말이지 애정과 정성이 들어간 엄마표 미역국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성인이 된 이후엔 거의 항상 생일날인 연차가 나오면 남자친구 혹은 남자친구가 없을 땐 친구들과 아니면 비행을 갔었지 집에서 보낸 일은 거의 없었다.
‘딸, 왜 울어 울지 마. 오늘 생일이잖아.’
엄마의 말에 눈물을 그쳤다.
한동안 엄마는 슬픈 것을 봐도 눈물 흘리지 않았고, 재밌고 웃긴 것을 봐도 로보트 마냥 감정선의 변화가 없어 보였던 탓에 나는 답답하게 속만 타들어가던 상태였다.
그랬던 엄마가 딸의 생일이라고 무언가 액션을 취한 모습에 나는 감격스러워 울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케이크하나, 미역국에 밑반찬이라곤 김치뿐이었지만 살면서 먹어본 미역국 중에 최고로 맛있었다.
또한 살면서 엄마와 단 둘이 보내는 조촐한 생일날이었지만 앞으로 매년 돌아올 생일이라도, 2023년 12월 18일 그날의 기억을 넘어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