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슈퍼우먼.
하나뿐인 내편 할머니와 뽀글이
나의 결혼은 마치 한파도가 휩쓸어가듯 요란했다.
고교시절 우리 엄마는 나를 아마 " 뺀질 "이라고 했을 것이다.
첫째 장녀라고 온갖 일들을 하며 고운 두 손과 두 다리로 일생을 살아왔을 그들을 생각하면 엄마가 되고 뒤늦게 깨달아버렸다.
지금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유명한 뺀질이가 어울리는 유명한 소녀였다.
어릴 때 제일 기억에서 남는 건,
처음으로 태어난 손녀를 아주 사랑스럽게 안아주셨던 우리 할머니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인 난 어쩜 아들반 딸 반이었을까?
그때는 온 동네를 사고 치고 돌아다니는 유명한 꼬맹이였다.
동네 오빠, 동생, 나, 친구들이 모이면 동네사람들은 어떤 사고를 칠까? 두려움반, 즐거움 반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은 시작되었다.
제일 친했던 오빠의 등.
내가 왜 그랬을까? 쥐도 새도 모르게 물어버렸다.
그것도 아주 쏴아~악!
그러자, 오빠의 엄마가 나와버려서 난 동네가 떠나가버릴 정도로 목청이 터져라 울어버렸다.
놀란 우리 할머니와 오빠네 할아버지가 손자손녀 소리에 놀라 우다다닥 달려와버렸다.
난 아직도 기억한다. 무서운 호랑이 할아버지가 날 야단치는 소리를......
"아이고, 우리 손자 등을 이 꼬맹이가 사정없이 깨물어버렸구먼...... 어쩔 거냐!"
그러자, 난 더 크게 울어버렸다.
등에서 자국만 났어도 난 기억이 그렇게 박히질 않았을 텐데.. 얼마나 악을 쓰고 물었을까?
우리 할머니는 오히려 나의 편을 들었다.
"이유가 있으니 물지, 이놈의 할아버지야.
안 그래도 놀란 우리 손녀, 호탕 치는 소리에 놀라 자빠지겠다!!,
이게 무슨 일이야...... 얼른 들어가자.
그리고 명수엄마, 내가 며느리 오면 얘기해서 약사 줄 테니
아이들 데리고 일단 들어갑시다.
할아버지요. 미안하오~근데 일단 들어갑시다. 아가들 달래고 다시 봅시다~"
난 사실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더 크게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오빠네 아빠와 할아버지는 나에겐 만화 속에 나오는 무서운 캐릭터를 닮았었나 보다.
세월이 지나, 난 이 기 억이 떠오를 때마다, 우리 엄마한테 얘기하곤 한다.
근데 그 자리에는 우리 엄마와 아빠는 없었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학창 시절에 한 번씩 말하곤 했었다.
나는 지금 생각하면 잊지 못할 제일 큰 사건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의 집이 생겨 이사 갈 때,
그 동네분들은 하나같이 눈물로 잘살라는 인사를 건네며, 헤어졌다.
지금은 그 친구들 오빠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사 온 곳에서 역시 난 여전히 사고뭉치였다.
아파트관리실에서 틈만 나면 내 이름이 시계 알람처럼 울려 퍼졌다.
우리 엄마는 아이가 안 들어온다며 온 아파트를 휘젓고 찾아다녔다. 거기서 만난 새댁이모는 날 너무 반갑게 보호해 주었고 우리 엄마는 그 틈에 또 숨을 돌린다.
아직도 그분은 잊히지가 않는다. 그 애기는 얼마나 컸을까? 복도층 아파트에서 위에서 보이는 아줌마얼굴을 보고
"놀러 가도 돼요?" 겁 없이 말하던 꼬맹이를.
보호해 주는 이모는 날 기억하고 있을까?
그 당시 그 이모 앞에 매달려있는 아기는 꼭 원숭이 같다고 말했던 것 같다.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동해 번쩍, 서해 번쩍인 내가.
우리 엄마는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나의 보물, 우리 엄마♡
나 하나가 아니라, 여동생까지 보는 우리 엄마는 내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아련한 주부였다.
우리 엄마는 두딸을 낳았다는 타이틀을 무릅쓰고 위대하고 장했다.
그때 당시엔 아들이 없으면 시어머니에게 구박당하는 시절이 지나가기 전이다.
우리 엄마는 참 씩씩했다.
그런 시집살이를 하면서 참고 산 세월을 나는 왜 이렇게 애태웠을까.
학창 시절도 곱게 지나가진 않았지만, 우리 엄마에게 제일 다행인 것이 막둥이 동생이 아들인 것이다.
나와 나이차이는 꽤 난다.
TV속에서 나오는 드라마 얘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이다.
고3일 때 우리 엄마가 뱃속에 귀하게 품고 있던 아이.
아들이 귀한 집에 선, 우리 집안의 큰 경사인셈이다.
내가 첫 직장을 가졌을 때, 태어난 보물덩어리다.
7년 만의 백년가약
그렇게 고생하며 살던 우리 엄마는 어느덧 세월이 야속하게도 익어가고 있었다.
내가 결혼하던 그때,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친정엄마인 것 같았다. 속만 섞이며 개구쟁이꼬맹이가 어느덧 시집간다며 눈물을 훔치던 그 모습.
주름이 곱던 얼굴에 많아진 우리 할머니, 호랑이 같던 우리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신랑에게 건네주며 뒷모습을 보일 때.
난 그 순간이 무엇보다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사연이 참 많지만 7년 만의 결혼식이라, 아주 뜻깊은 행사였다.
내가 드레스를 고른다며 아이들 셋 앞에서 보여줬을 때,
아이들은 말했다.
"백설공주 같아 엄마. 이젠 내려와."
이 말은 잊을 수가 없다.
결국 우린 무사히 결혼식을 올렸고, 그 모습을 본 우리 가족들은 눈물을 훔쳤지만,
해맑은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즐거웠다.
그때 결혼식 사진을 보면,
우리 아빠의 모습이 더 슬퍼 보였다.
아이를 셋 놓고 키우며, 우열곡절 결혼생활을 하며 살던
우리 부부에겐 또 한 번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아버지의 뒷모습은 후련하면서도 딸을 보내는 그 손이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나와 아빠는 다른 친구들 모습에서 보이는 그런 부녀사이를 찾아볼 순 없었다.
하지만 말을 아끼며 날 많이 챙겼다. 그건 학창 시절, 어느 부잣집 딸 부럽지 않게 등하원을 해주는 나의 든든한 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난 왜 철부지인 딸이 되었을까.
인생은 쓰고 고비가 많지만, 이기면 달다.
나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다른 이들과 많이 달랐다.
나의 철부지 20대 시절,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내 세상이었다.
딸을 위해 등하원을 시켜주던 우리 아버지는 내가 일을 할 때도 남들 부러워할 정도로 날 태워주시곤 했다.
근데 그 칼이 부러졌다.
사랑에 빠져버린 내가, 남자친구(현재신랑)를 택해버렸다.
교제 후, 정식으로 인사드린 후 우린 양쪽집안 손 벌리지 않고 결혼식 올리겠다고 선포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벼락같은 우리 집안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버렸고, 한순간도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았다.
서운함과 아쉬움이 곁들린 집안에 마침, 우린 그걸 7년 만에 잠재워버렸다. 정말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장면들일까.
근데 나의 인생은 파란만 치한 현실이다.
우연히 첫째 아이를 재우는데, TV속 드라마에 나오는,
"장밋빛 연인들"이 마치 우리 부부의 얘기를 들여다 놓는 듯했다.
아이를 낳고 우리는 갈라서진 않았지만, 그 앞부분의 친정엄마 아빠 속을 무너뜨려버린 주인공은 나와 너무도 비슷했다. 눈물이 폭풍처럼 흘렀지만, 여전히 느끼지 못했다.
그때 그걸 보며 부모님의 속을 알았더라면.. 아주 쪼금 알아버린 듯하다.
난 네 명 아이의 슈퍼우먼.
결혼식 후 난 다시 일을 하였다.
그런데, 첫째 둘째 셋째도 키우는 마당에 또 한 명의 귀한 생명이 찾아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셋째 이후, 5년 만에 찾아온 나의 소중한 축복.
정말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 겁이 났다.
주위의 시선.
그건 정말 지금생각해도 너무 따갑다.
분말실 간호사들에게도 넷째의 산모인 나는 힘들어 보였던 것 같다.
그런데 키워보니 아이들 모두 축복이지만.
넷째는 우리 부부에게 잊지 못할 복을 가져다준 아이다.
주위에선 "어떻게 키울래?"가 먼저였지만, 우린 그 말보단 사랑으로 키우자였다.
자식이 많으면 집안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끊어질듯한 집안에 소중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로 인해
행복한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우리의 친정집처럼.
우리의 막냇동생이 있어 지금도 행복해 보이는 친정부모님처럼.
난 딸만 넷 엄마다. 어딜 가면, 시선은 여전하다.
"아이고, 딸만 넷인교?"묻는 아줌마,
"아이들 모두 이 집 아이들이에요" 또는
"딸들 많아서 비행기 여러 번 타겠다. 아들 필요 없다, 딸이 최고야, 아빠는 외롭겠다. 아들 하나 더 낳아요~"
하는 정겨운 할머니.
음.. 난 근데 솔직히 그 말들이 차갑게 들릴 때가 더 많다 여전히..
예전에는 그 말이 싫고 했었는지, 난 두 명씩 데리고 나갈 때가 더 많았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어딜 가나 여전히 시선집중일 땐, 씩씩하게 "맞아요 제딸들 이예요~"하며 볼일 보고 온다.
이 아이들의 슈퍼우먼이자, 아이들로 인해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기에......
또 파워풀하고 막강한 엄마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인생 역전
나의 화려한 인생은 몇 번의 고비가 끊임없이 찾아온다.
넷째 놓고, 우연히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고, 우린 진짜 우리 집을 사버렸다. 우리 부모님의 얼굴에는 드디어 웃음꽃이 피었고, 특히 우리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더 바랄 게 없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와 신랑의 사이는 더 돈독해져 버렸다, 마치 아들과 엄마처럼.
우리 부부는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니, 복을 몰고 오는 것만 같아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것이 인생의 선배들이 말하는,
인생의 굴곡이라 했던가.
그걸로 인해 예전의 우리에겐 빨리 이겨내는 법을 알아버린 것 같다.
우리의 명의로 된 집을 몇 번을 들여다보고,
네 명의 아이들이 시끌벅적해 쫓기듯 이사를 다닌 그 애달픔.
아이들이 이사 온 후, 해방됐다!라는 표현하듯 2층 계단을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우린 너무 행복했다.
나의 집.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공간.
우리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싶었던 주택.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2층의 테라스.
특히,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
물놀이만큼 아이들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 땐,
부모인 우리도 너무 행복했으니......
슈퍼우먼 엄마의 도전장은 꿈이 이루어진다.
5년의 끝으로, 한 직장에서 난 사직서를 쓰고 나와버렸다.
그 사연은 덮어두고 싶다. 난 또 다른 꿈을 이룰 테니,
우연히 만난 작가님과의 만남이 나를,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게 꿈을 키워주셨다.
난 설렘반 두려움반이다.
왜냐면 18년을 한 직업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슈퍼우먼인 엄마는 힘을 얻는다.
아이들과 신랑의 응원으로......
도전장을 펼쳤다.
제일 먼저, 수첩에 내가 하고 싶은 걸 적어보았다.
이걸 다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냥 해보자!
난 제일 먼저, 글쓰기 강좌에 등록해 버렸다.
내 인생에 글쓰기란, 친근함이 없는 도전장이었다.
근데, 엄마의 힘일까? 속도가 조금씩 붙는다.
내가 힘들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땐, 글로써 나의 위로를 찾는 듯하다.
과거의 생각을 위로하며 깨닫게 해주는 글.
나는 이 좋은 기회를 여기서 다시 얻는다고 생각한다.
하나씩 쌓여가는 나의 새로운 도전장들.
언젠가는 그 목표가 이루어져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는 슈퍼우먼이 맞는구나. "
하는 마침표가 찍히길 빌어본다.
세상 그 누구보다 목표를 위해 몇 번의 고비 끝에 일어서는 사람들과 가정 위해 사는 부부들에게 응원한다.
위대한 슈퍼우먼, 당신을 응원합니다.
그 꿈이 이루어져 예쁜 아이들에게 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