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조
논문심사 발표문 2025년 6월 27일. (번역)
여러분이 읽으셨듯이, 이 논문은 이콘(성상)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본래 이콘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10년 전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마주친 어떤 독특한 시선에 대한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이었습니다. 아마도 제 논문의 8장에서 도스토옙스키가 크람스코이가 그린 그림 관조자를 통해 그 독특한 시선을 묘사하는 대목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화가 끄람스꼬이의 작품 중에는 <관조자>라는 제목의 뛰어난 그림이 있다. 그 그림 속에는 겨울 숲이 그려져있고, 그 숲 사이로 난 숲길에는 낡은 농부복에 짚신을 신은 지독하게 외로워 보이는, 깊디깊은 고독 속에서 길을 잃은 농부가 서 있는데 마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조하고>있는 것이다. 만일 그와 부딪힌다면 그는 깜짝 놀라서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넋이 빠진 채 당신을 바라볼 지도 모른다. 물론 곧 정신을 차리기야 하겠지만 거기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틀림없이 아무 기억도 해내지 못하고 자기가 관조하고 있는 동안 받은 인상만을 마음 속에 숨겨 놓을 것이다. 그 인상은 그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어서 마음 속에 그 인상들을 차곡차곡 쌓아 두기야 하겠지만 왜,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도스토옙스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의 묘사는, 관조하는 자의 관조가 사유의 영역에도, 시각의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요컨대, 그 시선은 후설이 설명한 지향성의 구조를 벗어나 있습니다: "모든 의식은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스토옙스키는 모든 지향성을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인상을 수수께끼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런 인상(impression)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인상에 관한 물음이야말로 제가 짊어져야 할 질문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이나 시선이 초래하는, 불가피하게 진리로부터의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게는 나의 진정성(sincérité)에 진정으로 닿을 수 있을 것이 이 인상(impression)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2년 전 이 논문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마리옹의 이콘 개념과, 도스토옙스키가 속해 있는 동방 기독교 전통, 다시 말해 이콘을 향하는 시선의 문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콘에 전념하고 있는 이 논문은, 어떤 면에서 도스토옙스키의 그 수수께끼 같은 대목을 이해하려는 저의 개인적인 노력의 산물입니다.첫 번째 이론적 시도에서는, 레비나스가 말하는 ‘쓸데없는 고통(달리말해 유용성의 준거를 초월한 현상학적 고통)’ 개념과, 이콘과 우상을 존재자의 하나의 범주가 아니라 존재 방식으로 사유하는 마리옹의 사유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레비나스를 참조한 것은, 그의 ‘쓸데없는 고통’이야말로 가장 수동적이고, 어떤 내용도 결여된 인상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식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것을 내용으로 삼는 인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의식의 지향적 내용을 거부하는 하나의 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레비나스가 이 현상학적 고통을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의 가능성으로, 나아가 자유로운 주체의 형성 안에 배치하는 방식이 대단히 아름답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주체의 탄생을 위해 ‘타자’(대문자 A로 쓰는 Autre)의 필연성을 전제하는 점이 인상에 고유한 ‘진정성(sincérité de l'impression)’의 문제로부터 상당히 멀어 보였습니다. 더 정확히 제가 탐구하고자 하는 진정성은 나에게 고유한, 나의 ‘자기-존재’의 진정성입니다. 외부로부터 시작하는 자기 자신의 진정성이라는 사유는 저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동방 기독교에서 이콘의 신학적 정당성의 핵심 토대를 이루는 ‘성육신’에 대한 사유는, 육체성의 인상이 지닌 비-매개적(immédiate) 차원을 탐구하려는 관심을 제 안에서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저는 메를로-퐁티의 철학에 접근했는데, 그의 사유는 지향성을 순수한 정신의 것이 아니라 ‘몸(corps)’의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제 사유 속에 또 다른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바로 인상의 기원을, 시선의 끝자락에서, 지향성의 한계에서, 세계와의 얽힘 속에서 솟아나는 것으로 사유해야 한다는 어려움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는 이 논문을 확신을 가지고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셸 앙리의 『육화(Incarnation)』라는 저작은 저의 의문들을 근본적인 방식으로 전복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레비나스가 ‘대타자’라고 부르고, 종교적 언어에서 ‘신’이라 부를 그 무엇은, 미셸 앙리에게 — 요한 복음을 따를 때 — ‘삶’이며, 근본적으로 내재적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초월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은 ‘살 속의 삶의 내재성’으로 다시 사유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초월적 신이 내재적 신으로 전복되어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은, 동방 기독교의 이콘에 관한 논의에서 단순히 신학적인 함의만 갖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틀을 넘어, 현상학적 관점에서 ‘삶의 이미지’와 그것의 재현의 진정성이라는 문제를 다룰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점이 제 연구에 본질적인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콘이 하나의 성스러운 이미지로서 삶을 표현하려 한다고 생각해 볼 때 — 삶은 ‘근본적 내재성으로서의 신’으로 이해됩니다 —, 그 외부적 나타남의 불가능성의 문제는, 아마도 제 해석의 한계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겠지만, 미셸 앙리가 사유한 것과 같은 ‘육화의 급진적 현현’만으로는 완전히 해결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히려 제게는 이런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육화는 결국 이미지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이 문제를 고찰하기 위해, 저는 후설과 메를로-퐁티가 다룬 지향성과 몸의 문제로 되돌아가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길은 저를 장-뤽 낭시의 책 <코르푸스(Corpus; 라틴어로 '몸')>와 <놀리 메 탄 게레 Noli me tangere(라틴어; 나를 만지지 마라)>로 이끌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몸을 깊이 사유합니다. 또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육화된 회화(Peinture incarnée)>와 <고통과 욕망의 안개(Brouillard de peines et de désirs)>에서도 저는 하나의 가능한 해답을 어렴풋이 발견했습니다.
낭시는 몸을 ‘본질의 부재의 현현’, 다시 말해 (이 부재를) ‘존재의 본질’로 사유합니다. 그리고 디디-위베르만은 의도성의 가능성을 단순히 의식의 파지(把持)로 환원하지 않고, 그 안에 놓아주기와 상실의 가능성을 도입하며, 이 몸짓을 ‘불가능한 것을 향해 뻗은 손’으로 사유합니다. “불가능한 것에 도달하기”에서 도달한다는 것은 붙잡기 위해 만지는 것이 아니라 ad-tangere, 즉 ‘~을 향해(ad-) 만지는 것(tangere)’을 뜻합니다. 이러한 개념은 미셸 앙리의 사유, 즉 삶은 세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생각과 대화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미셸 앙리는 후설의 내적 시간의식을 분석하면서, 시간의 의식을 부여하는 것은 ‘인상의 근원적 물러남’이며, 그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국면(phase)’로서만 나타날 수 있을 뿐, 결코 그 자체로서의 인상(impression)으로 나타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곧 ‘근원적 인상’, 즉 ‘삶의 도래’가 시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하나의 순간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오직 이 ‘물러남 그 자체의 현현’으로만 드러나며, 바로 이 물러남의 현현만이 내재적인 시간 의식을 가능하게 합니다.
동방 교회의 이콘적 재현의 중심에 자리한 직관은, 이 부재를 진실되게 표현하려 합니다. 그것을 붙잡거나 복속시키는 무엇으로서가 아니라, 떠나도록 내버려 두는 시선으로서 — 이러한 역설적인 표현이 바로 이 논문이 옹호하는 가설입니다. 그리고 사르트르 이래로 “이미지는 하나의 행위다”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단순히 어떤 것을 고정된 대상으로 멈추어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실재 — 즉 삶 — 의 떠남을 받아들이고, ‘내버려둠’을 재현의 형식 자체로서 허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동방 기독교의 이콘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삶의 부재’가 바로 세계성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논문에서는 이 점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앞서 인용한 관조자의 묘사 직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덧붙입니다 : «그 인상은 그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어서 마음 속에 그 인상들을 차곡차곡 쌓아 두기야 하겠지만 왜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여러해 동안 그 인상들을 쌓아 두던 그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만사를 내동댕이 치고 방랑과 구원의 길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떠날지도 모르며 어쩌면 갑자기 고향 마을에 불을 지를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스토옙스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이 글은 도스토옙스키가 관조자가 받은 인상들이 구원의 추구와 광기로의 충동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그것이 선악의 저편에서 오는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이 현현(삶의 부재로서의 현현)은 세계 안에 질서를 세우지 않고, 오히려 근원적인 부재로부터 가능성들을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미셸 앙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 « 나의 현상학은 위험한 사유이며, 미사여구로 치장된 감상적인 영성주의가 아니다. 그 안에는 비극성과 더 큰 기쁨, 더 큰 모험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 (…) 인간의 모험, 삶의 경제의 모험이 있다. 삶은 끔찍하게도 두렵다.» (미셀 앙리, 대담집, p. 73, 임의 번역)
우리 삶이 ‘그 부재로서’ 드러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내포하는 위험에 직면하여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응답하는가는, 세계의 구조 안에서 지향적 행위가 이 부재를 어떻게 진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와 동시에, 또 그 부재로 부터 어떻게 그 부재로부터 자신만의 방식을 구성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디디-위베르만의 『육화된 회화』에서 저자는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을 함께 논평하는데,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결정적인 전환의 순간에 종종 ‘부끄러움(pudeur; 혹은 수줍음)에 의한 얼굴의 붉어짐(érubésence)’이라는, 디디-위베르만에 따르면 삶의 증상으로서의 현상으로 묘사됩니다.
디디-위베르만은 발자크의 이런 문장도 인용합니다. “부끄러움은 아마도 일종의 의심일 것이다.” 부끄러음은 하나의 신체적 발현이자 삶의 증상으로서, 순수한 이성의 방법적 의심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감각적 의심의 형태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 부끄러음의 순간들 이후에, 발자크는 도스토옙스키의 관조자처럼, 갑작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행위를 취하는 인물들을 묘사합니다. 어떻게 해야 폭력으로 물들지 않으면서도, 부재의 시련과 물러남의 진정성에 충실한 어떤 행위의 형식, 어떤 행동 방식을 사유할 수 있을까요?
논문을 마친 뒤, 저는 안느 뒤푸르망텔의 『부드러움의 힘(La puissance de la douceur)』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제시하는 단 하나의 개념만으로도 제 사유의 방향을 이끌어 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뒤푸르망텔은 그 책에서 ‘부드러움’의 히브리어적 의미를 밝혀 줍니다. 부드러움은 “아나와(anäwah)”라고 하며, 모욕당하고 약한 이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 히브리어적 의미는 책 제목인 『부드러움의 힘』에 역설적인 힘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즉, ‘무력함의 힘’이라는 의미입니다.
아직 이 주제에 대해 분명한 연구의 방향을 정하진 않았지만, 저는 이 부드러움이 지향성의 두 극 사이에서 흔들리는 힘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이 극의 한편은 붙들고 붙잡는 손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놓아주는 손, 상실하는 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을 여는 것은, 지향적 행위를 ‘부드러움’으로 사유하는 가능성, 그리고 바로 그 행위의 한가운데서, ‘무력함의 힘’의 심장부에서 그것을 견디는 가능성입니다.
<원문>
Présentation de soutenance de mémoire – 27 juin 2025
Comme vous avez pu le lire, ce mémoire porte sur l’icône. Cependant, son point de départ n’était pas, à l’origine, un intérêt direct pour l’icône elle-même. Il s’agissait plutôt d’une attirance inexplicable envers un regard singulier rencontré il y a dix ans dans Les Frères Karamazov. Peut-être vous souvenez-vous d’avoir lu, dans le chapitre 8 de mon mémoire, le passage où Dostoïevski décrit ce regard singulier à travers le tableau Le Contemplateur de Kramskoï.
« C’est l’hiver, dans la forêt ; sur la route se tient un paysan en houppelande déchirée et en bottes de tille, qui paraît réfléchir ; en réalité il ne pense pas, il contemple quelque chose. Si on le heurtait, il tressaillirait et vous regarderait sans rien voir, tout en s’incorporant l’impression sous laquelle il se trouvait durant sa contemplation. Ces impressions lui sont chères et elles s’accumulent en lui, imperceptiblement, à son insu, sans qu’il sache à quelle fin. » (도스토옙스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La description de Dostoïevski montre clairement que la contemplation du contemplateur n’appartient ni au domaine de la pensée, ni à celui de la vision. En somme, ce regard échappe à la structure intentionnelle telle que la décrit Husserl. «Toute conscience est conscience de quelque chose» ; nous regardons 'quelque chose', nous pensons 'à' quelque chose.
Or, Dostoïevski évoque, de manière énigmatique, une impression qui semble échapper à toute intentionnalité. Mais comment une telle impression est-elle possible ? Je n’ai pas compris ce passage lors de ma première lecture, mais j’ai senti que cette question sur l’impression était celle que je devais porter. Car ce n’est pas l’éloignement inévitable de la vérité provoqué par la parole ou le regard, mais plutôt cette impression qui, me semble-t-il, pouvait toucher à ma propre sincérité.
Lorsque j’ai commencé à concevoir ce mémoire il y a deux ans, je m’intéressais à la notion d’icône chez Marion, ainsi qu’à la tradition du christianisme oriental dans laquelle s’inscrit Dostoïevski, c’est-à-dire à la question du regard porté sur l’icône. Ce mémoire, aujourd’hui consacré à l’icône, représente en quelque sorte mon effort personnel pour comprendre ce passage énigmatique de Dostoïevski. Dans une première tentative théorique, j’ai voulu aborder cette question à partir du concept de souffrance inutile chez Lévinas, et de la pensée de Marion qui conçoit l’icône et l’idole non pas comme une catégorie de l’étant, mais comme une manière d’être.
Si j’ai fait appel à Lévinas, c’est parce que sa souffrance inutile me semblait être l’impression la plus passive, dénuée de tout contenu, ou, selon son propre terme, ayant pour contenu ce qui advient malgré la conscience. Autrement dit, il s’agissait d’une impression comme rejet du contenu intentionnel de la conscience. Cependant, bien que la manière dont Lévinas articule cette souffrance phénoménologique en l’inscrivant dans la réponse à la douleur d’autrui – et donc dans la constitution d’un sujet libre – soit d’une grande beauté, il m’a semblé que cette nécessité de l’Autre (avec grand A) pour la naissance du sujet s’éloignait considérablement de la question de la sincérité propre à l’impression. En effet, la sincérité que je cherche à interroger est celle qui m’est propre, celle de mon être-même. La pensée d’une sincérité de soi qui commencerait par l’extérieur m’a toujours semblé difficilement compréhensible
Parallèlement, la réflexion sur l’incarnation, qui constitue le fondement central de la légitimité théologique de l’icône dans le christianisme oriental, a éveillé en moi un intérêt pour la recherche de la dimension immédiate de l’impression de la corporéité ; et c’est dans cette perspective que j’ai abordé la philosophie de Merleau-Ponty, dont la pensée conçoit l’intentionnalité non pas comme celle d’un pur esprit, mais comme celle du corps, ce qui a fait naître en moi également une difficulté : celle de concevoir l’origine de l’impression comme surgissant au terme du regard, à la limite de l’intentionnalité, dans l’entrelacs du monde. C’est en partie pour cette raison que je n’ai pas pu commencer ce mémoire avec assurance.
C’est alors que l’ouvrage Incarnation de Michel Henry est venu bouleverser mes doutes d’une manière tout à fait radicale. Autrement dit, ce que Lévinas nommait le grand Autre, ce que le langage religieux appellerait Dieu, est, pour Michel Henry — en suivant le texte de Jean — la vie, et donc quelque chose de fondamentalement immanent, ce qui implique que ce qui étant compris comme transcendance dans le christianisme est à reconsidérer comme immanence de la vie dans la chair.
Et le fait que ce Dieu transcendant devienne un Dieu immanent, n’a pas seulement une portée théologique dans le cadre des discours sur l’icône dans le christianisme oriental, mais permet aussi de dépasser le seul cadre théologique et d’aborder, en termes phénoménologique, la question de l’image de la vie et de la sincérité de sa mise en image, ce qui me semble fournir un appui théorique essentiel à mon travail.
Cependant, lorsqu’on considère que l’icône, en tant qu’image sacrée, cherche à exprimer la vie — Dieu compris comme immanence radicale —, la question de son impossibilité — peut-être liée à mes propres limites d’interprétation — ne semble pas pouvoir être pleinement résolue par la seule apparition radicale de l’incarnation telle que Michel Henry la conçoit. Au contraire, une interrogation s’est imposée à moi : l’incarnation ne serait-elle pas, en fin de compte, un refus de l’image plutôt que sa justification ?
Pour élucider cela, il m’a semblé légitime de revenir aux problèmes de l’intentionalité et du corps chez Husserl et Merleau-Ponty. Et cette voie m’a conduit aux œuvres de Jean-Luc Nancy, Corpus et Noli me tangere, dans lesquelles il interroge profondément le corps, ainsi qu’aux écrits de Georges Didi-Huberman, Peinture incarnée et Brouillard de peines et de désirs, où j’ai entrevu une possible réponse.
En effet, Nancy pense le corps comme une manifestation de l’absence de essence, autrement dit, l’essence de l’existance et Didi-Huberman ne réduit pas la possibilité intentionnelle à un simple saisir de la conscience, mais y introduit la possibilité de lâcher, de perdre, et pense ce geste comme une main tendue vers l’impossible, Atteindre à l’impossible, atteindre ne veut pas dire toucher pour saisir mais ad-tangere, toucher vers. Cette conception me semble pouvoir dialoguer avec l’idée, chez Michel Henry, que la vie ne se manifeste pas dans le monde.
En effet, Michel Henry, en analysant la conscience interne du temps chez Husserl, affirme que c’est le retrait originaire de l’impression qui donne la conscience du temps, et que celle-ci ne peut apparaître que comme phase dans le flux du temps, mais jamais comme impression elle-même. Cela implique que l’impression originaire, c’est-à-dire la venue de la vie, ne se manifeste pas comme un instant qui apparaît et disparaît dans le temps, mais uniquement comme l’apparaître de ce retrait lui-même, qui seul rend possible une conscience immanente du temps.
L’intuition présente au cœur de la représentation iconique dans l’Église d’Orient vise à exprimer avec sincérité cette absence, non comme quelque chose de saisi ou de soumis, mais comme un regard qui laisse partir — une expression paradoxale telle est l’hypothèse défendue dans ce mémoire. Et si l’on soutient que « l’image est un acte » depuis Sartre, alors il ne s’agit pas seulement de représenter quelque chose en l’arrêtant comme un objet fixe, mais aussi d’accueillir le départ de son réel, la vie, en laissant être l’abandon comme forme même de la représentation. C’est là une leçon que, peut-être, nous pouvons recevoir des icônes de l’Orient chrétien.
Cependant, il me semble qu’il convient également de prêter attention à la manière dont cette absence de vie peut apparaître au sein même de la structure de la mondanéité. Ce mémoire n’aborde pas directement ce point, mais Dostoïevski, juste après la description du contemplateur déjà citée, ajoute ces lignes : «Ces impressions lui sont chères et elles s’accumulent en lui, imperceptiblement, à son insu, sans qu’il sache à quelle fin. Un jour, peut-être, après les avoir emmagasinées durant des années, il quittera tout et s’en ira à Jérusalem, faire son salut, à moins qu’il ne mette le feu à son village natal ! Peut-être même fera-t-il l’un et l’autre. »
Ce texte montre que Dostoïevski reconnaît que les impressions reçues par le contemplateur peuvent engendrer à la fois une quête de salut ou un élan vers la folie, venant de ce qui est par-delà le bien et le mal. Car cette apparition n’instaure pas un ordre dans le monde, mais ouvre des possibles à partir d’une absence fondatrice. Michel Henry dit : «Ma phénoménologie est une pensée dangereuse, et non un spiritualisme à l’eau de rose. Elle porte en soi le tragique, la possibilité de plus grandes joies, de plus grandes aventures, (…) l’aventure humaine, l’aventure de l’économie. C’est terrifiant, la vie. » (Entretiens, p. 73)
La manifestation de notre vie en tant que son absence, ainsi que la réponse que nous lui apportons, face au danger qu’elle implique, posent la question de savoir comment, au sein de la structure du monde, l’acte intentionnel peut révéler authentiquement cette absence, et comment elle peut structurer son propre mode à partir de cette absence. Dans Peinture incarnée de Didi-Huberman, l’auteur commente également le texte de Balzac Le chef d’oeuvre inconnu, dans lequel les personnages sont souvent décrits, au moment d’un basculement décisif, par ce symptôme de la vie qu’est, selon Didi-Huberman, l’érubéscence liée à la pudeur.
Didi-Huberman cite aussi cette phrase de Balzac : « La pudeur est peut-être un doute. » La pudeur, en tant que manifestation corporelle, symptôme de la vie, diffère radicalement du doute méthodologique pur de la raison, et constitue une forme sensible de doute. Or, après ces événements de pudeur, Balzac décrit, comme le contemplateur chez Dostoïevski, des personnages qui se livrent à des gestes soudains et imprévisibles. Comment penser une forme d’action, une manière d’agir qui ne soit pas marquée par la violence, mais qui reste fidèle à l’épreuve de l’absence et à la sincérité du retrait ?
Après avoir terminé mon mémoire, j’ai commencé à lire La puissance de la douceur d’Anne Dufourmantelle, et déjà, le seul concept qu’elle propose semble orienter la direction même de ma pensée. Elle y éclaire le sens hébraïque de la douceur : La douceur se dit « anäwah » et désigne celui qui est humilié, faible. Ce sens hébraïque donne au titre même du livre, La puissance de la douceur, la portée d’une puissance paradoxale — celle d’une puissance de l’impuissance. Je n’ai pas encore défini une direction claire de recherche à ce sujet, mais je me demande si cette douceur ne révèle pas une puissance oscillant entre deux polarités de l’intentionnalité : celle de la main qui prend, et celle de la main qui laisse partir, qui perd. Donc ce à quoi je m’ouvre, c’est la possibilité de concevoir un acte intentionnel comme douceur, et celle d’endurer, au sein même de cet acte, au cœur de cette puissance de l’impuiss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