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큐레이션의 어려움)
모베러웍스가 영화관을 만들었다
성수동에, 30석 규모로
모티비에서 영화관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꺼낸게 2022년 5월 12일,
https://youtu.be/ZnKJhzcvUBY?feature=shared&t=193
그리고 첫 상영이 2024년 2월 29일
거의 2년 만에 완성된 영화관
그 과정에서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고 결국 완성하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질기다
(나 같았으면 진작에 질려서 때려쳤거나 업종 변경했을 거 같다)
(매몰비용이 커져서 포기를 못했나)
아직 가보진 않았다
그렇게 사이버 염탐을 하며 갈까말까 각을 재던 중 무비랜드 라디오에서 ~
https://youtu.be/KsXCgw4TXb0?feature=shared&t=1169
(문상훈이 일을 가능한 오래 하는 게 꿈이라는 말에)
소호 : 최근에 저희의 꿈이랑 비슷하네요. 저희도 극장 오래하는 게 가장 큰 꿈입니다.
모춘 : 저 이거는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하겠지만 극장을 오픈하고 사람들이 너무 관심을 가져주니까 힘들어요 마음이. 너무 기쁘긴 하지만.
?????
(궁예짤)
맘대로 해석해 보자면, 좋게 봐주고 칭찬 - 그 마음이 거짓은 아니지만 - 해주는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였을 때의 가려움 같은 거 아닐까
(적어도 난 그렇게 느낌)
모두가 좋아할 수 없는데
좋게좋게 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갇힌 기분. 칭찬감옥
영화관에 오면 물어라도 보는데
오지도 않아서 왜 오지 않는지 물어볼 수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의 의견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주제넘는 판단
긁어줄 사람
.
.
.
.
(은 핑계고)
그냥 내가 왜 자꾸 가는 걸 망설일까 생각해 봤다
(이런 의견도 도움이 되는진 모르겠다. 그냥 나라면 땡큐일 거 같음)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봤는데 어떤 특정 영화관을 간다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거기서 트는 영화, 다른 하나는 그 영화관 (입지나 공간, 분위기 포함해서)
이번 글에서는 영화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더 정확히는 영화 큐레이션.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비랜드(가 트는 영화)는 애매하다 (내 기준)
여기서부터 얘기하고 싶은데,
먼저, 무비랜드 라디오의 오프닝 고정 멘트이다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성수동의 작은 극장, 이야기 추종자들의 모임 무비랜드"
"오래된 영화"
현재 상영작이 아닌 영화를 틀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쓰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는 사람들, 흔히 씨네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무비랜드의 상영작은 오래되지 않았다.
(지나간 영화정도...?)
지금까지 상영작 작품 중 시기 상 제일 오래된 작품은 호금전의 <대취협(1966)>일 텐데, 이 경우가 예외적인 편인 것 같다. 모춘이 일찍이 무협영화에 관해 설파한 게 있기 때문에.
오래됐다고 하려면 여유롭게 잡아 50년대 이전 영화거나 더 나아가 무성영화 시대를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영화 극보수주의자같다
중요한 점은 오래된 영화라는 워딩에 발작 버튼이 눌렸다는 게 아니라(맞음), 애초에 무비랜드는 씨네필을 핵심 타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씨네필을 위한 극장은 이미 여럿 존재한다.
그렇다고 무비랜드가 소규모 독립영화를 상영하거나 아트 무비를 상영하는 극장과도 같지 않다.
무비랜드는 또 다른 영화관을 제안하려고 한다
때문에, 큐레이션은 더더욱 중요하다
큐레이션이 차별화의 핵심인 것은 어떤 영화를 어떻게 트는지가 그 영화관의 관객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문제가 드러나는데, 그럼 누구를 위한 영화관인가 하는 문제이다. 프리워커스?
현재의 큐레이션 방식을 조금 살펴보면,
3월은 모춘이, 4월은 빠더너스의 문상훈이 그 달의 큐레이터를 맡아 자신에게 영향을 준 영화를 골라 상영한다.
첫 달은 영화관 런칭이고 팬들도 올 테니 모춘이 앞서서 어떤 영화를 내세우는 건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다음에 문상훈을 선정했을 때는 의아했다.
문상훈이라는 사람에 대한 의아함이 아니라, 큐레이션의 지향점을 모르겠기 때문이다.
내가 무비랜드라는 극장에 가고 싶은데, 문상훈이라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고, 그렇기에 영화가 흥미롭지 않으면 가기가 어렵다.
큐레이터에 따라 관객수가 차이 난다면, 이건 결국 팬덤 장사다.
생일 카페
(사업적인 관점에서)
극장을 오래하고 싶고, 사람들이 계속 다시 오는 곳을 만들고 싶다면, 관객이 믿고 볼 수 있는 큐레이션을 일관되게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무비랜드는 츠타야 서점이랑 같은 큐레이션 원리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은 여러모로 닮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서점과 영화관 사업 모두 사양 산업이고
대형 체인이 존재하고, 독립 서점(혹은 극장) 문화가 존재하고
그 가운데서 차별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래오래할 수 있어야 함)
오는 고객이 자연스럽게 어떤 취향을 발견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맥락을 짜는 걸 츠타야 서점 자체에서 이뤄내지 않고 다른 큐레이터를 선정해서 한다고 하면 나중 가선 어떤 인물을 선정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들쭉날쭉한 건 당연하고 그 서점의 이미지가 산만해질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을 선정하고 그 사람에게서 어떤 영화를 이끌어내는지가 큐레이션의 핵심이라고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제안하는 일이 무비랜드에서 하고 싶은 큐레이션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무비랜드의 경쟁자는 유퀴즈이다.
(그리고 유퀴즈가 압도적으로 이긴다)
어떤 사람의 어떤 이야기. 유퀴즈가 다룰 수 있는 사람의 수도 많고 범위도 넓고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더 능하다.
또한, 추천한 영화를 다 본다고 그 사람이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어떻게 연관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문상훈이 추천한 영화를 본다고 해서 빠더너스의 어떤 콘텐츠에서 그 영화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웃는 일이 얼마나 될까. 그 사람을 얼마나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와서, 츠타야 서점 얘기를 좀 더 하면
츠타야 서점에서 사는 것은 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어떤 제안들이다. 때문에 꼭 책뿐만 아니라 음악과 영화, 드라마, 심지어는 음식까지 같이 소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점이라는 이름의 라이프 스타일 편집샵이니까.
(이런 방식은 책발전소 같은 국내 책방들에서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현실조언 시리즈에서 김소영 아나운서가 츠타야 서점에서 영향받은 책발전소 얘기도 볼 수 있다)
똑같이 적용해서 무비랜드는 영화를 파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어떤 제안을 관객에게 하는 것이다. 일하는 스타일에 관한 걸 수도 있고, 그냥 삶의 방식이나 태도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사소한 고민이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워크 스타일 편집샵?)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내 삶과 연결 지어 어떤 발견을 하고 깨달음을 얻고 변화되길 더 바란다.
인물이 결정적인 순간에 내린 선택일 수도 있고, 지나가듯 나온 주인공 집의 어떤 소품일 수도 있다.
사실 누가 나한테 무비랜드의 큐레이션에 관해 일을 준다면
영화를 2시간 동안의 (아이) 쇼핑이라고 정의할 것 같다
성수동에 가는 이유가 보통 그런 거니까
영화 안에 담긴 무드를 팔고, 이미지 레퍼런스를 팔고, 샘플링 소스를 팔 거 같다.
이런 것들이 모베러웍스의 디자인으로 굿즈화하면 살 거 같다
영화를 보면서 영향받은 것에 대한 기념으로
왜 영화 보고 나오면 한동안 그 영화에 영향받아서 인물의 옷을 따라 산다거나 머리 스타일을 바꾼다거나 인테리어 소품 같은 걸 구한다거나 한 적 있지 않나.
그니까 무비랜드에서 파는 영화는 디자인 무비 아닐까. (혹은 스타일 무비)
꼭 시각적인 면에 한정해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그때 무드에 맞는 영화들을 보는 것.
비 오는 날에 비 오는 영화
더운 날에 더운 영화
추운 날에 추운 영화
장마철에 보는 <세븐(1995)>의 그 축축한 느낌
겨울에 보는 <설국열차(2013)>의 더 추운 느낌
크리스마스 시즌에 보는 크리스마스 무비
혹은 심야 영화로 <아메리칸 셰프(2014)>보면서 쿠바 샌드위치(와 베녜) 먹기
(내가 하고 싶은 거)
홍상수 영화 보고 술 마시기
뭐 그런 거?
오히려 이야기는 핵심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모베러웍스와 분리되는 무비랜드만의 지점이 아닐까.
(아무튼 이건 내 생각이고)
무비랜드를 사업적으로 운용한다면 핵심 타깃이 누구인지, 무비랜드스러운 큐레이션이 뭘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특히나 성수 상권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무비랜드픽이면 주저 없이 모르는 영화든, 재미없는 영화든 보러 가서 무비랜드가 픽한 포인트를 찾고 굿즈를 사서 나올 수 있게끔
아 이 영화의 이 한 장면을 소개하기 위해서 골랐구나, 그걸 이런 식으로 굿즈로 풀었구나, 재밌다, 이러면서
그리고 한 가지 더
무비랜드 라디오를 듣거나 모티비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모베러웍스의 구성원들이 영화를 잘 알고 많이 보는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
때론 선정작도 선정돼서 보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 추종자라면서요
큐레이션이라는 게 제안이라는 측면에서 관객보다는 많이 알고 자세히 알아야 어떤 맥락에서 어떤 기획으로 소개할지 정해질 텐데 잘 모른다는 인상을 계속 주니까 이게 구독자나 관객에게 감점이 되는 것 같다.
(그냥 나한테 감점)
영화에 관해 깊이 분석하고 쇼트가 어떻고, 미장센이 어떻고, 플롯이 어떻고 이런 걸 알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일단 많이 알아야 더 적합한 영화를 고를 수 있을 텐데, (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물론 모베러웍스 주변에 영화를 잘 아는 사람도 있을 거고, 왓챠랑도 일하고 있고, 영화관 준비하면서 만난 사람도 있을 테니 금방 해결될 문제인 것 같긴 하다)
+
이 글을 쓰면서 무비랜드를 만들기까지 과정을 담은 모티비를 정주행 했는데,
그 안에 어떤 공간을 만들겠다는 얘기는 많은데, 어떤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겠다는 얘기가 없었다
(그땐 왜 몰랐지)
영화 큐레이션 작업도 한 파트로 분리해서 수많은 영화를 무비랜드 기준에 맞춰서 재분류하고 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