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동아리 운영자 연수에 다녀왔다. 사실 독서동아리는 올해 초에 본 시험이 붙을 줄 알고, 시험이 붙어 파견을 가게 되면 조금은 여유로운 일 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신청한 것이었다. 불행히도 시험은 똑 떨어져 여유로운 일 년은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이미 신청해 놓은 독서동아리는 그래도 잘 꾸려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연수를 열심히 듣고 왔다.
어제 연수에서 강사님이 강조하신 것 중 하나는, 생각을 언어화하는 경험에 관한 것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책에 대한 감상 또는 생각을 두루뭉술하게 머릿속에 그냥 두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언어화해서 말해보거나 글을 써보면 더 깊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3, 4학년부터 주로 시작하는 한우리나 대교 등의 독서논술 학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그 책에 대해 학생들끼리 토론, 또는 토의하게 한 후 마지막으로 글을 쓰도록 한다. 책을 읽은 후의 생각을 말로 먼저 말해보고,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들으며 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 후 글로 자신의 생각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아이에게 독후 언어화 활동을 시켜야 하는 것일까? 설마 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아이와 책에 대해 대화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책을 읽을 때마다 독서감상문을 쓰라고 해야 하는 건가?
물론 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아이와 함께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독서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내가 재미있는 책을 읽을 시간도 없는데 아이 책까지 함께 읽어줄 만큼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이에게 독서감상문을 쓰게 하는 것, 그것도 참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있다. 아이가 독서감상문을 쓰기 싫어 책을 안 읽으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건 글을 읽는 것보다 더 머리가 아픈 일이다. 재미있게 책만 읽고 싶은데 책을 읽은 후 글을 쓰라고 하면 아이는 오히려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책을 읽고 어떻게 그 내용을 언어화시킨다는 말인가? 결국 학원이 답인가? 학원에 보내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책에 대해 말하고 글을 쓰는 경험을 갖게 해야 하는 것일까?
학원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도 내년엔, 아이가 5학년이 되면 한우리 독서논술 같은 학원에 일 년쯤 다녀보게 할까 생각한다.
근데 그럼, 그 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순간이 존재한다.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읽다가, 자기가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순간, 혹여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림으로 책에 나오는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은 순간, 그런 순간에 글을 쓸 기회를 제공해 준다.
쿠팡이나 네이버 스토어에 보면, 'DIY 나만의 책 만들기'가 있다. 하드커버로 되어있고 내지가 열 장쯤 있는, 어린이용 책 쓰기 키트 같은 것이다. 나는 그 키트를 많이 사줬다. 아이는 그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여섯 살 때부터 저 키트를 사주기 시작한 것 같은데 처음에는 그냥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 옆 말풍선 안에 짧은 감탄사 같은 것들, '아요, 뿅, 쿵, 우와'이런 단어들만 썼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축구 이야기를 쓰고 보물 찾는 이야기를 쓰고 세계 대전 이야기를 썼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에게 처음부터 많은 걸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그림만으로 종이를 다 채워도, 말이 안 되는 글을 써서 책을 만들었다고 가져와도 아주, 온몸을 다해 칭찬해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차차, '줄글로 써볼까, 조금 더 여백을 글씨로 채워볼까'와 같이 약간의 조언들만 해주면 아이는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부모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쓰도록 하면 얻을 수 있는 부가적인 이득은, 아이가 글을 쓰면서 혼자 논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 부모는 조금, 쉴 수 있다. 그 근처에서 부모도 함께 책을 읽는다면 금상첨화겠으나, 그게 힘들다면 그 근처 어딘가에 누워 책 읽는 척만 해도 좋다.
아이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런 것들이 있다.
"엄마, 책 좀 읽고 자자.", "나 책 쓰다가 조금 늦게 자도 되지?"
와 같은 것들. 아이의 2차 성징이 너무 빨리 오는 것 같아 성장호르몬이 나오는 밤 10시쯤에는 무조건 재우고 싶은데 아이는 꼭 그때 책을 읽고 또 쓰고 싶어 한다. 안된다고 빨리 들어가 자라고 말하면서도, 책을 읽겠다는 것을, 또 책을 쓰겠다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게 아쉽기도 하다.
무엇이든 쓰게 한다. 그게 무엇이든. 쓰는 행동은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이다. 게다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상상력과 논리력, 표현력이 필요하다. 상상력과 논리력, 표현력을 활용하여 글을 쓰다 보면 또 그런 능력들이 더 신장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아이가 쓰고 싶어 하는 기미가 보일 때, 그런 기미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잘 포착하여 쓰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 주길.
책을 읽고 그걸 글로 쓰는 작업, 만화든 동화든으로 만들어 자신의 생각을 언어화하는 작업, 이는 분명 아이의 생각이 자라나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