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 혹은 정성에 대하여
며칠 전, 회사에 수박을 싸가서 사무실 사람들과 나누어 먹은 적이 있어. 엄마가 일주일에 두세 번, 너에게 먹이기 위한 수박을 시장에서 사들고 온다는 걸 아는 친한 회사 동료가 말했지.
"그냥 걷기도 힘든 이 더위에 카트도 안 끌고 그 무거운 수박을 사 오는 게 마치, 순례자 같애."
같이 모여 앉아 수박을 먹던 사람들은 '순례자'라는 표현에 다 같이 웃었고, 다른 동료가 덧붙여 말했어.
"일부러 고행을 하는 거예요? 배달도 안 시켜 먹고 카트도 안 끌고 가고?"
엄마는 아니라면서, 내가 굳이 직접 시장에 가서 수박을 고르고 그걸 사들고 오는 이유들을 말했지만 사실 논리가 빈약하기는 했어.
너는 방학이고 엄마는 출근해야 했던 지난 일주일, 엄마는 네 점심을 챙겨주기 위해 매일 외출을 내고 점심시간에 집에 들러 밥을 직접 차려줬지.
너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이제 혼자서 배달음식을 받아 챙겨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왠지, 방학인 네가 하루 종일 엄마 없는 집에서 아침과 점심을 혼자서 먹어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어. 그래서 힘들지만 매일 점심때 집에 온 거야. 점심때 잠깐이라도 네 얼굴을 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네가 마음이 허하지 않을 거 같아서 말이야.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빠가 일 때문에 바빠 육아에 어떤 참여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직장에 다니며 너를 키우는 건 쉽지 않았어. 엄마는 원래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양이 적은 사람이라 너에게 쓸 에너지도 별로 없었지. 그래서 너를 살뜰히 챙기지 못한 거 같아서 항상 미안해.
안경이 부러지면서 너의 얼굴에 난 상처가 흉터가 된 것, 왼쪽 눈의 시력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진 것, 앉을 때 허리를 똑바로 펴지 않고 자주 구부정하게 있는 것까지 다 엄마의 책임인 것 같아. 조금만 더 세심하게 관찰했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관리를 해줬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들 같거든.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이 더위에 무거운 수박을 손으로 들고 오는 게, 매일 출근했다가 다시 집에 들러 너에게 점심을 차려주는 게 말이야. 네가 아기였을 때 너에게 쏟지 못한 에너지를 지금이라도, 이런 방식으로라도 쏟으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엄마는 좋은 뭔가를 얻으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엄마가 너에게 정성을 쏟아야지만 네가 잘될 거 같거든. 너는 이미 엄마가 너에게 해준 것보다 더 훌륭하게 크고 있지만, 네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노력, 정성, 흡사 순례와 같은 무언가가 필요할 거 같아.
그리고 너의 말들, 네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물론 '귀찮아, 집에 가고 싶어'이 두 가지지만, 출근했다가 집에 들러 점심을 차려줄 때 가끔 네가 해주는 말들,
이를 테면 반찬이 없어 치킨너겟과 김을 반찬으로 주고 밥 다 먹고 먹으라고 수박을 함께 놓아주었을 때 네가 한 '우와, 진수성찬이다'라고 한 말.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네가 먹고 싶다고 한 무언가를 사줬을 때 네가 '엄마가 엄마라서 너무 좋아'라고 한 말.
그 말들이 엄마를 멈추지 않게 하는 것 같아.
어제 너도 모레면 개학이네. 너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투덜대지만 엄마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