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움에 대하여
어제 오후, 아빠로 인해 발생한 무서운 연락을 받고 엄마는 심장이 쿵, 떨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너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쳐주면서도, 너에게 저녁을 차려주면서도 엄마의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지.
어떡하지? 어떻게 하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너에게 말은 안 했지만 아빠는 많이 아프대. 아빠가 지금 벌어진 일을 해결하기는, 혹은 일의 해결 시한을 뒤로 미뤄두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어.
아빠가 만든 문제를 엄마가 해결해야 할 것 같았어. 결국은 엄마가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았어.
엄마는 심장이 빠르게 뛰어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엄마가 운동하고 온다고 하고 잠시 나갔었잖아? 엄마가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후두둑 쏟아지더라.
굵은 빗방울이 엄마의 모자 위로, 티셔츠 위로, 운동화 위로 떨어져 엄마가 조금씩 젖어가는데,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 조금은 시원한 느낌이 들었어. 이대로, 그냥 다, 흠뻑 젖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집에 들어가고 비는 금방 그쳤어. 한 바퀴 걷고 들어와서 그런지 기분이 조금 나아졌고, 그러니까 배가 고프더라구. 맥주를 한 캔 마시고 싶었어. 그때 너한테 말했지.
"엄마 맥주 사러 갈 건데, 니가 좋아하는 빵 사러 같이 갈래?"
너는 귀찮다고 했지만 결국은 같이 나갔지. GS 편의점에서만 파는 너가 좋아하는 유튜버들이 제작한 굿즈빵을 헌팅(?)하러 말이야. 우리는 두 군데의 GS 편의점에 들러 두 종류의 굿즈빵을 사고 맥주 한 캔과 부숴먹을 신라면을 사들고 들어왔지.
그리고 우리는 함께 글쓰기 시간을 가졌어.
한 시간 넘게 말이야. 엄마는 식탁에서, 너는 소파 앞에 펴놓은 밥상에서 글을 썼어. 엄마는 노트북으로 소설을 썼고 너는 손글씨로 동화를 썼지. 너는 게임이야기가 좋을지 모험이야기가 좋을지, 주인공 이름을 뭐로 하는 게 좋을지 물었어.
우리가, 신라면을 부숴서 대접에 담아 퍼 먹으면서, 엄마는 맥주를 마시고 너는 사이다를 마시면서 함께 글을 쓰는 시간이 엄마는 참, 좋았어. 행복, 그래 행복했어. 네 덕분에 말이야.
우리 집의 유구한 전통처럼 아빠는 엄마에게 절망을 주고 너는 엄마에게 희망을 줘. 아빠는 엄마를 두렵게 만들고 너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만들어. 아빠는 엄마를 죽고 싶게 하고 너는 엄마를 살고 싶게 해.
너는, 이렇게 불안정한 가정에서 너는, 너무나 귀하게 자라고 있어.
어제 엘리베이터 안에서 네가 말했지?
"엄마, 내가 물리학교수이자 프로게이머이자 유튜버이자 작가가 돼서 일 년에 십억씩 벌어서 엄마 빚 다 갚아주고 엄마 쌰넬 가방 사줄게."
"왜 샤넬을 쌰넬이라고 해?"
"몰라. 다 쌰넬이라고 말하던데?"
샤넬이 뭔지도 모르면서, 십억이 얼마나 큰돈인지도 모르면서, 빚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네가 하는 이런 말들이 엄마의 숨통을 트이게 해.
아빠는, 다른 건 다 망했어도 아빠는, 엄마에게 정자는 성공적으로 준 것 같아. 이게 아빠가 엄마에게 유일하게 준 행운이라고 생각해.
너와 함께 갖는 책 읽는 시간, 글 쓰는 시간이 엄마는 참 좋아.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줘서, 엄마에게 평화로운 시간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아들아.
너의 꿈들이, 엄마로 인해, 또한 너가 처한 환경으로 인해 꺾이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게. 다혈질에 참을성 없는 단순한 엄마가, 제대로 된 엄마가 되도록 해볼게.
너는 잘, 성공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