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둡고 무섭지만 언젠가는 끝이 있는 터널을. 어떻게든 이 시간만 버티면, 이 시간만 견뎌내면 파란 하늘이 맞이하는 탁 트인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가치들을 하나씩 포기하게 되면서 차츰 느끼게 되었다. 이건 터널이 아닐 수도 있겠다. 이건 어쩌면, 끝이 막혀있는 동굴일 수도 있겠다. 나는 영영 이 어둡고 무서운 곳에서 나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와 같은 것들을.
그와 결혼한 지 십 년이 되어간다. 결혼 생활은 내내 외로웠다. 가족이 함께 있어야 하는 자리에 그는 자주 있지 못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변호하거나 두둔해야 했다. 함께 오고 싶었으나 바쁜 일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고. 나는 항상 바쁜 일에 밀렸다. 언제나 가족보다 일이 먼저인 그를 오래도록 탓했으나, 나의 말은 그에게 크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는 나의 어떤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일이 먼저였다.
화창한 주말에 나는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그 오랜 시간에 아이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답답해하는 아이를 위해 배드민턴 채를 가지고, 혹은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챙겨 놀이터에 나가기는 했지만 신나게 놀지는 못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놀러 나온 친구들을 부럽게 바라봤고, 나는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를 바라보곤 했다. 아이에게는 아빠가 있었으나 아빠의 존재를 잘 느끼지 못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이면서 가끔은 아빠 역할도 해야 했다.
오랜 외롭고 버거운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터널일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터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어쩌면 이건 동굴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 지금은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다. 다시 빠져나가고 싶은데 길을 잃은 듯싶다.
일상을 고민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너무 눈 부셔 보인다. 많은 걸 포기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오래 버텼지만 좋은 날은 오지 않았다. 이제는 누군가를 향해 기도를 할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다. 무너지고 싶다. 부서지고 싶다. 산산이 부서져 없어져버리고 싶다.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가 되고 싶다. 나는 이제, 힘이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