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 필사를 하다.
어제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어려웠던 가정 형편으로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그녀는, 비 오는 날 도를 아십니까 아주머니를 만나 대화를 하면서 갑자기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문예창작과에 다시 진학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녀는 책과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책을 읽지 않았고, 책 많이 읽은 사람들, 심지어 글도 잘 쓰는 사람들만 모인 문예창작과에 적응하기 아주 힘이 들었다고 했다. 문예창작과도 자신의 적성이 아닌 것 같아 포기하려던 찰나에 엄마와 통화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고, 글을 잘 쓰려면 필사노트가 자신의 키만큼 쌓이면 된다는 교수님의 말을 들은 후 바로 필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필사노트의 높이가 그녀의 키만큼은 아니고 무릎까지 올 무렵 작가는 등단을 하게 되었고, 그 뒤로 그녀는 쭉 작가로 살고 있다고 했다.
필사를 시작하며 작가를 꿈꿀 때 그녀는 스물하나, 혹은 스물둘쯤이었을 거다. 꿈꾸기 너무나 좋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무언가를 선택하기 딱 알맞은 나이이다. 나는 그때의 작가 나이의 두 배, 마흔셋이다. 인생을 리셋하기엔 너무 많은 것이 결정된 나이,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머물러 있기엔 살 날이 너무 많이 남은 나이. 우리 나이대의 평균 수명이 아흔 살쯤 된다 치면 난 아직도 47년을 더 살아야 한다.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서른 중반을 넘으면 자기 나이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언제나 내 나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 절망적일 때도 있다. 마흔셋, 새로운 것을 하고 싶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필사를 시작했다. 작가가 스물한 살, 혹은 스물두 살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먼저 책을 골라야 했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내가 꿈꾸는 새로운 삶은 글과 관련된 무언가를 하며 먹고사는 것이므로 소설을 필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소설은 너무 방대하여 한 땀 한 땀 손으로 써 내려가기 힘들 것 같았다. 끝마치는 성취감도 있어야 하니 단편 소설집으로, 적당한 유머와 깊이 있는 통찰이 있는, 전체적으로 가볍지만 한없이 무거운 순간도 존재하는, 무엇보다도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하나, 김애란의 <비행운>을 선택했다. 그 소설집의 여덟 개의 단편 소설 중 가장 제목이 마음에 드는 작품,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를 골라 쓰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필사를 할 노트를 골라야 했다. 사물함을 보니 비닐도 뜯지 않은 2024학년도 양지다이어리가 있었다. 올해 초 개수가 많이 남아서 버리겠다는 걸 내가 챙겨둔 것이었다. 추석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2024년도의 3분의 2가 이미 지나가버리고 있다. 하지만 괜찮았다. 2024년도의 1월부터 다시 채워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의 과거는 바꿀 수 없으나 과거라고 기록된 공간엔 다시 나의 글씨를 넣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뭔가, 희망적인 기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가 이 필사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원래 많은 것이 없지만 끈기, 꾸준함 이런 건 특별히 더 없다. 하지만 새롭고 싶다.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꿈이 꿈으로만 남아 덧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 이라는 것을 좀 해볼 생각이다. 왜냐하면 난 지금, 마흔셋의 나는 지금. 간절하게, 리셋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