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칼날을 주고받았다

추석, 남편 없이 친정에 다녀오면서

by 휴지기

추석 전날, 아이와 단둘이 친정에 다녀왔다. 내가 살고 있는 남쪽지방에서 충청도 친정까지는 364km, 혼자서 운전했고 2박 3일간 혼자서 아이를 돌봤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남편은 처가에, 그러니까 나의 친정에 잘 가지 않았고, 당연히 친정 가족 행사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다. 남편이 나의 친정에 잘 가지 않은 이유는, 처음에는 사업하느라 바빠서였고 지금은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쪽팔려서이다. 직접 말로 하지는 않지만 내가 가야 할 시댁이 없다는 것도 처가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줄이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남편의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셨다.


나는, 남들이 대부분 함께 해나가는 것을 혼자서 감당해야 할 때마다 끊임없이 서운함과 속상함을 드러냈다. 아이를 낳은 직후 나를 입원실에 혼자 내버려 뒀을 때에도, 산후조리원에서 자주 혼자 앉아 밥을 먹게 했을 때에도, 아이의 유치원 운동회에 혼자 가게 했을 때에도, 주말에 아이와 혼자 있게 했던 그 수많은 순간에 나는 거의 한 번도 빠짐없이 서운함과 원망, 후회의 단어들을 쏟아냈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지속적으로 혼자이거나 아들과 단 둘이 남겨졌었다. 1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왜 지금까지 이혼을 하지 않았을까. 찰나의 순간, 남편과 놀고 있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너무 청량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 원망이 크기는 하지만 아직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혼녀가 되는 게 무서워서인 것 같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혼을 상상하지만 아직은 이혼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렇다고 나와 살고 있는 남편이 아주 만족스러울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남편에게만큼은 말을 참지 못한다. 하지 않아야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하지 않아지지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살면서 이런 말도 못 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런 말, 이게 남편에게 상처 줄 거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알면서도 상처받으라고 하는 말이다. 네가 나에게 상처 줬으니, 너도 이 정도 상처쯤은 감수해야지,라는 심보로.


며칠 전 남편이 말했다.


'내가 말은 안 하지만 다 상처받고 쌓아두고 있어. 쌓았다가 터지는 게 더 무서운 거 알지?'


응. 알아. 우리는 서로 칼날을 주고받고 있어. 어떤 칼날은 남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상처를 내고 어떤 칼날은 옷 속 어딘가,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상처를 내지. 어떤 상처가 더 치명적인지는 모르겠어. 깊지 않은 상처는 흉터만 남기지만 깊은 상처에서는 고름이 나오고 살이 썩어갈 거야. 이러다가 언젠가, 둘이 함께 걸을 수 없는 날이 있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상처 입은 채로, 또다시 칼날을 주고받으며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도 있고. 너의 행동과 나의 말이 칼날이 되어 서로를 베고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그래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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