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랑새의 밤 "을 읽으며 견뎌 낸 연휴.
명퇴인지 은퇴인지.
55세의 남자는 자신에게 묶여있던 사회의 모든 끈을 끊고, 무조건 떠난다.
무지무지 부러울 것이다. 누구든지.
고향에서 탈출한 지 30여 년 만에 다시 찾아드는 남자는 죽어가는 자신에게, 죽고 싶은 무기력한 자신을 맡긴다. 한 톨의 애정도 남아있지 않은 생가를 향하면서 정상적이지 못했던 가족들의 죽음조차 외면했지만, 더는 자신의 죽음을 위한 귀향을 막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았다.
산과 강과 자신이 막아 놓았던 베니아판의 녹슨 못조차도.
뭘 희생해도 아깝지 않은 젊은 날에 떠났던 고향에, 더는 희생할 것이 없는 상처로 가득하고 병든 몸뚱이만 가진 장남의 귀향.
숨어들 듯이 찾은 고향에서 놓아버리는 남은 삶의 시간.
남자는 곤죽이 된 영혼이 되어 스스로의 그림자에 겁을 먹는다.
정물화와 같은 숲에서 남자는 생존을 포기하는 자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 그만하면 되었다'는
위로로 홀가분해진다.
아무리 털어내려 해도 절대 털어지지 않는 부채감에 다시 찾아지는 자신의 의무를 행하면서 있었는지도 모르는 야성을 찾는다.
마루야마 겐지 작가는 영화에 잠시 몸 담은 적이 있어서이리라.
책장을 넘길 때마다 촬영에 쓰이는 여러 장치들이 양념처럼 맛이 난다
어쩌면 활극과도 같은 장면을 읽으면서 한 번도 반항하지 못했던 나는 가슴이 뻥 뚫리기도 했으니.
숲 속에서 만나는 모든 숨소리를 느끼게 하고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로 숨을 멎게도 하고, 너무 싫은 냄새를 콧구멍으로 밀어 넣고, 마냥 내버려 두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게으른의 극치로서 자신을 지우려는 점도.
그의 글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몹시 징그러워서 좋다.
너무 세밀해서 더 좋다.
나는.
명절 연휴가 길었고
추운 날도 길었고
바람도 아주 길게 불어 온 겨울의 한 복판에서
한 권의 책이지만 아주 길게 살아온 우리들의 또 다른 이야기.
권하고 싶은 마음이다. 친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