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으로 그려 본 목탄화.
세상이 온통 목탄화로 변해있었다.
더는 일정을 이어 나갈 수 없다는 판단에 1시간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느닷없이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퍼부어대는 눈 폭풍을 뚫고 오느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답은 없었다.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하라고.
하긴 추위에 민감하니 나가기 싫기도 하겠지. 그럼 무슨 반찬으로 상을 차릴까?
떡국? 전 찌게? 에라....... 개구리 반찬이다.'
부루퉁한 내입이 들켰나?
" 가자. 짜장면 먹으러....."
히히 좋다. 이런 날은 짬뽕도 좋아. 곁들이는 반주는 최상이지.
미끄러질까 봐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 좋겠다. 우리 마누라는."
" 왜?"
" 아직도 먹고 싶은 것이 많고, 먹고 싶다면 얼른 사주는 남편이 있어서."
" 긍가?"
눈을 털며 들어선 실내는 먹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과 얼른 사 주는 사람들로 그득 했다.
" 내가 고맙지.
어디 가서 할 소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자기한테만 꽥꽥거려도 다 받아줬으니.......
참 고맙지."
외투를 벗다 말고 나는 내 입에서 나온 말인 줄 알았다.
큰 뒤통수만 보이는 늙은 남자에게 가려진 늙은 아내인 듯한 작지만 또렷한 여자의 말소리에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우리는 맑은술 한잔을 꼴깍 비웠다.
식전에 마시는 술이 전하는 짜릿함을 나누었지만, 조금 전에 들려온 뒷자리의 늙은 아내의 말이 자꾸만 내가 한 듯해서였다.
보이지 않았던 밑그림이 여기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