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가 어디 갔지?
전기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다.
간밤에 내린 눈이 가로등에 반사되어서 17층까지 슬금슬금 올라오는 중이다.
미온수 한 모금의 단 맛에 이은 옅은 커피의 향이 읽고 있는 책에 밑줄을 친다.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있다.
지난번에 빨뚜를 마시며 남겨 놓은 이야기를 마저 하고픈 친구의 초대이지만, 나는 약속장소 근처에 있는 오래된 서점을 마음에 두고 있다.
지난주에 꼭 사고 싶은 책이 있어서 오래간만에 시내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았다가 황당한, 아주 슬픈 장면을 마주했었다.
온라인 주문으로 책을 주문했던 나도 서점의 증발에 한몫을 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서점이 치과로 바뀐 것이다.
도시가 늙어 가고 있다.
온통 노인들의 병원으로 채워져 간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서점까지 점령당할 줄이야.
건물들의 상층은 요양원이, 내려오면서 재활병원과 치과, 통증의학과, 아래층은 작은 약국으로, 하긴 근처의 큰 건물들도 많게는 요양시설이 서너 개씩 있고 적어도 한 개씩은 있으니.
온누리, 푸른, 소망, 봄.
간판에 붙은 단어들이 주는 희망사항이 더 절망적이다.
옆 도시에 있는 서점 역시 예전 같지는 않다.
서점의 입구부터 4분의 일 정도가 문구류로 채워져 있었고, 분류된 책장마다 구색만 맞춰 놓은 듯한.
다행히도 사고 싶은 책은 모두 있었다.
약속시간이 남아있어 서점 위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앞에 놓고 책을 촉감으로 읽는다.
참▪︎ 좋 ▪︎다 ▪.
이 서점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줄 알았었을까?
같이 시 쓸 친구를 초대하고 싶다던 쪽지를 붙여 놓은 것을 내가 보게 되었고, 그렇게 동인이 되어 진짜 동인으로 40년을 같이 하게 될 줄이야.
코끝은 쨍하게 추운데 햇살은 고운 시간.
우리는 가방에 담긴 책 보다 길었던 우리의 이야기를 잔설 위에 사각사각 적어 내려가며 빨뚜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