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개 Oct 31. 2023

3000만 원을 들고 튀다.

늙은 소년 6

 

언제나 휠체어의 자리와 TV 쪽으로 앉은 자세는 변함이 없다. 아예 화면 속에 들어앉아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햇살은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하다. 아래층보다 완만하게 드러누운 햇살을 헤집으며 이여사는 문을 열어주면서 웃어 보인다.
 "주말이라 일찍 오셨나 보네."
 " 별일 없지요."
 아래층에서 실장님과 안부를 했지만 인사치레로 한번 더 묻는다.
 그날이 그날인 날들.
 추우니 추운 줄을 아나.
 더우니 더운 줄을 아나.
 면도를 해서인지 오늘은 유난히 말끔하다.
 옆에 가서 내려다보는데도 TV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역시 야구경기를 보는 중이다.
 두산과 삼성의 게임이다.
  올해부터 이승엽 감독이 지휘하는 두산팀과 친정팀인 삼성의 경기다.
 삼성의, 정확히는 이승엽선수의 광팬이다.
 아마도 경기가 끝나기 전에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항상 볼 수 있는 곳에 있어 너를 잃어버리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안심이다.
 보이지 않으면 늘 숙제와 같은 사건, 사고.
 스스로 뭔가를 이뤄보려고 애쓰는 것은 알겠는데 항상 별책부록처럼 따라붙은 뒤처리가 내 몫이었다.

 25여 년 전
 큰 가방 두 개에 담아 온 야구선수들의 사인볼과 사진이 전부였던 그때.
 처음으로 자기 의지의 가출이었으며 스스로 찾은 자유에 행복을 만끽한 단 한 번의 탈출.
 그랬다.
 분명한 탈출이었다.
 두 번의 심장수술 이후로 스스로도 더는 힘들지 않게 숨을 쉬고 마음대로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테니.
 제이름의 보험을 해약했고, 다 붓지 않은 적금 통장도 없어진 그날 이후.
 다시 연락이 왔을 때 대구에 있는 야구장 매점에서 일하며 지낸다고 들었다.
 찾아 간 엄마를 보는 네 눈은 어찌나 겁을 먹었던지 엄마의 표현으로 저승사자 만난 것 같았다고 했다.
 
 얼마나 달려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을까.
 혼자 설 수  있다는 것은.

 누구와 섞여서 마음 맞추는 일이 없던, 늘 환자복에 숨어 있던 자신에게서 얼마나 탈피하고 싶었을까.
 엄마는 잡았던 네 손을 놓아주고 오셨지.
 그해 이승엽선수의 홈런이 54개였다.
모든 분야에서 1위를 싹쓸이했다고, 거기에 자기가 같이 있었다고 한동안 자랑삼아 같이 찍은 사진을 네 방 가득 걸어 놓았다.
 이제는 두산팀의 감독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이미 네 기억은 이승엽 선수를 알기도 전으로 가버렸는데......
 아직도 내가 옆에 있는 줄 모르는........ 


늙은 소년.
 
 





 

 

작가의 이전글 아! 옛날이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