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개 Oct 30. 2023

아! 옛날이여.

늙은 소년 5



 흡추룩......
 식판에 있는 반찬은 언제나 작게 잘라져서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한다.
 밥인지 죽인지는 모르지만 입과의 거리를 잴 것도 없이 퍼 먹는다.
 젊은 여자는 장영감의 밥을 국에 말고 있다.
 장영감은 며칠째 침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끔 소리를 질러서 앞에 있는 김 씨에게 혼이 나는 것 빼고는 양손이 묶여 누워만 있다.
 이젠 힘이 없는지 젊은 여자가 가끔 자세를 바꿔도, 다시 바꿔줄 때까지 가만히 있다.
 젊은 여자가 내 식판을 보더니 씨익 웃으며 천천히, 조금씩 먹으라고 한다.
 나의 왼손은 잘 알아듣는다.
 물컵의 빨대와의 거리는  항상 말썽이다. 또 볼때기를 찌른다.
 숟가락은 입으로 잘 오는데 이놈의 빨대는 꼭 길을 잃는다.
 양칫물은 늘 오른쪽으로 새어 나가 옷을 덤벙 적신다.
 환자복을 갈아입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이 늘 좋다.
 TV 앞으로 갈 수 있으니까.

 햇빛이 먼저 퍼질러 누워있다.
 까탈부리기가 특기인 사할린 할매가 앞방에서 벽을 잡고 나오려고 한다.
 휠체어 바퀴를 힘껏 밀어 나는 내 지정석인 TV앞에 도착한다.
 젊은 여자는 식판을 들고 가다 말고 리모컨을 눌러준다.
 말 많이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화면이 바뀌고 전원일기의 일용이가 엄마에게 대든다.
 일용엄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연신 땅바닥을 치며 일용이에게 야단을 친다.

 울 엄마도 저랬는데.

 보기 싫다.
 다시 화면이 바뀌고 훌쩍 지나는 화면이 분명하게 야구경기였다.
 파란색 모자!
 삼성 라이언스다.
나는 얼른 젊은 여자에게 소리쳤다.
 " 알았어요. 야구 틀어 달라고?"
그새 뒤에 소파에 자리 잡고 앉은 사할린 할매가 자기 무릎을 소리 나게 두드린다.
 사할린 할매는 노래하는 방송을 틀어달라는 것이다.
 그건 내가 야구방송을 찾기 전에나 가능한 일이지.
 나와 젊은 여자는 못 들은 척한다.
 이승엽은 왜 안 나오는 거지?
 부상당했나?
 어? 나왔다.
 그런데 왜 상대편 더그아웃에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옷도 다르게 입었네.
 나의 파란색 영웅이었던 이승엽이가.
 
 

작가의 이전글 보고 싶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