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으신가요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본 영화 <세계의 주인>

by 유연


윤가은 감독의 영화들, <우리들> <우리집> <세계의 주인>은 오프닝과 클로징이 모두 같은 장소다. <우리들>과 <세계의 주인>은 학교에서 시작해 학교에서 끝나고, <우리집>은 식탁에서 시작해 식탁에서 끝난다. 다만 그 사이 아이들은 한뼘 성장해 처음과는 조금 다른 아이가 되어 있다. 촬영장에서 배포되는 어린이배우를 대하는 지침을 보면 감독이 얼마나 아이들의 세계를 존중하는지가 잘 드러나, 영화에 배인 사려깊은 정서가 쉬이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 윤가은 월드가 이 작품에서 한층 확장되고 깊어졌다.


이 작품은 전작에 비해 등장인물이 많아 처음에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졌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모든 인물들이 한 명도 허투루 쓰이지 않고 섬세하게 다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친족 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사건 자체를 자극적으로 전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일을 겪어내는 주인이(서수빈)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이 사건의 무게를 체감하고, 미도(고민시) 언니의 재판 장면을 통해 피해자다움을 강요받는 괴로움을 느끼게 한다. 혹여 밝게 지내는 주인이를 보고,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명랑할 수 있지?' 라고 생각했다면 영화가 끝날 때쯤 조금 부끄러워질 것이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었어도 어떤 날은 사소한 일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을 것이고, 그러다 별 것 아닌 일에 화가 솟구치기도 하는 것. 관객은 고통을 겪은 사람의 곁에 어떻게 함께 해야 할 것인지, 타인의 아픔을 대하는 방법을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고민하게 된다.


주인공은 물론 다른 등장인물을 집중해서 보아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데, 그 중 가장 마음이 쓰이는 건 주인이의 엄마(장혜진)였다. 주인이가 자신의 말처럼 나름 잘 살게 되기까지 엄마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스크린 밖으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종종 꽃을 사오지만 돌볼 여력조차 없고, 친구를 만날 여유도 없이 지내는 사이 그들에게서 늙었다는 말을 듣는다. 재판 과정은 지난했을 것이고, 주인이는 물론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아는) 어린 해인이(이재희)도 신경써야 했을 것이다. 심지어 회피하고 도망가버린 가해자의 형, 남편(김석훈)까지 살펴야 한다. 아마도 주인이는 힘든 마음이 올라올 때, 욕실, 세차장, 태권도장으로 숨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었을 엄마는, 고작 술과 함께 텀블러 속에 숨어들다 병을 얻고 말았다.


개봉 후 관객과 평단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세차장 장면, 주인이는 학교에서 사실을 말해버린 걸 엄마에게 사과하지만 점점 원망으로 바뀐다.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 보다 나를 돌봐주지. 원장되는 거 나중에 하고 나를 봤어야지. 엄마잖아. 내 얼굴만 보고 알았어야지. 내 말 믿어줬어야지" 하며 울부짖는다. 늘 웃고 있지만 마음 속에 응어리를 품고 있었을 주인이도 안쓰러웠지만, 교무실에서도 딸 앞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엄마도 너무 아팠다. 아이는 엄마를 원망할 수 밖에 없고, 아이를 잘 살피고 돌보는 것은 당연히 엄마의 일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엄마는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을 누구보다 자책했을 것이고, 여전히 자책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자신의 돌봄에 경고등이 켜졌을 때 변명하지 않는다. 아니 해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엄마의 몫은 전체이자 마지노선이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p.98) 이 문장은 주인이 엄마에게도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그러니 친정엄마에게조차 속을 내보이지 못한 그녀의 버티는 삶이 또 다른 주인공처럼 여겨졌다. 어린 동생을 지키고 싶어 애쓰는 수호(김정식)를 보는 것도 얼마나 복잡한 심경이었을까. 과거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을 것이고, 또 다시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고 벌주는 괴로운 과정을 겪고 싶지도 않았을 것 같다. 주인이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누리에게 알려주려 했음을 알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는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여러 번 나온다. 물론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주인이다.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쪽지에서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너 진짜 괜찮니?"라고 묻는다. 주인이는 (사과를 제대로 못 받은 게 아닐까 싶다) 사과를 먹지도 못하면서 "진짜 괜찮다"고 한다. 동생이 나쁜 일을 겪을까 불안한 수호는 "어디까지가 괜찮은지 모르겠어서" 울음이 터진다. 주인이 엄마 역시 응급수술 직전까지 괜찮다고 한다. 우리는 '괜찮다'는 말을 의례적으로 하고 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상태가 정말 괜찮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산다는 건 조금이라도 더 괜찮아지기 위해 애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주인이가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인정과 감사의 편지를 받는 결말에 다다르면 한숨 돌리며 모두의 안녕을 응원하게 된다. 주인, ‘사랑’이 넘치는 세계에서 괜찮은 날이 더 많은 어른이 되기를. 미도, 부디 스스로를 용서하는 날이 오기를. 해인, 엄마도 누나도 아닌 자신의 근심걱정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배우게 되기를. 수호, 세상을 보는 더 밝고 깊은 눈을 갖게 되기를.

그리고, 오늘도 아이의 표정을 살피며 애면글면하고 있을 모든 주인 엄마들의 안부를 묻는다. 괜찮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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