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온도
36.5도가 가장 이상적인 신체의 온도이듯이, 삶에도 적당한 온도 유지가 필수적이다. 한때 나는 시릴 듯이 차가운 온도의 삶을 살았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면 긍정적이고 유쾌한 사람처럼 보이려 노력했으나 퇴근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온도는 내려갔다. 매사에 냉소적이고 비관적이었다. 1년 전까지의 내 삶은 입김을 불면 새하얀 날숨이 눈앞에 보일만큼 추운 겨울이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추위에서 벗어나고자 이를 악물고 발버둥 쳤다. 깊어가는 우울감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매일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았다. 내일의 해를 보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치열하게도 살아보고, 다 내려놓고 술을 진탕 마시는 날도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마음으로 포기에 이르렀던 날 한 마리 고양이를 만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불면증에 괴로워하던 새벽이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찰나이지만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산책이라도 하고 오자.’라는 생각에 대충 겉옷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가 보기 싫어 눈을 감고 1층에 도착했다. 이어폰을 끼고 터덜터덜 걸었다. 먹은 게 없어서 속이 쓰렸다. 시원한 공기가 얼굴에 닿을 때 크게 숨을 들이켰다. 삶의 이유, 목적을 찾으려 머릿속을 헤집어봤지만 역시나 오리무중이었다. 벤치에 앉아서 괜히 돌만 툭툭 건들고 있었다. 세차게 차며 심술도 부렸다. 그때 떼굴떼굴 굴러간 돌이 멈춘 곳에 작고 두 눈이 별만큼 빛나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얌전히 앉아있는 걸 봤다. 아스팔트와 돌의 투박한 마찰음에 놀라지도 않고 가로등 밑에서 평온히 앉아있었다. 조심스레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갔다. 흠칫 놀라는 기색도 없이 코 앞까지 다가온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동안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던 것 같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 검은 고양이 앞에서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몇 분이나 오열을 했을까, 머리가 띵 하고 어지러웠다. 눈물을 멈추고 호흡을 고를 때까지 고양이는 내 곁에 있었다. 한 여름 뙤약볕 밑처럼 몸의 모든 감각기관에서 타는 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와 몇 년 만에 괴롭지 않게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출근길에 가로등 밑으로 갔지만 고양이는 없었다.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퇴근길에 굳이 돌아서 다시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벤치 밑에서 걸어 나오는 고양이를 보고 나도 모르게 반가움의 소리를 질렀다. 벤치에 앉아서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얘기하고 혹시 몰라 챙겨 온 간식도 줬다. 오랜만에 느껴본 벅찬 행복이었다. 별 것 아닌 어쩌면 다른 이들에겐 평범한 일상의 한 조각이겠지만, 나에겐 끓어오르는 감격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을 매일같이 포터와 내 하루를 공유했다.(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해리포터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우울의 틈에서 빛이 흘러들어왔다. 모든 계절이 겨울이었던 내가, 봄 내음을 맡을 수 있게 되었고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에 땀을 흘리기도 했다. 가을의 상쾌한 바람에 콧노래를 흥얼거릴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무섭고 고독했던 겨울을 낭만적으로 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구해준 포터는 내가 사계절의 모든 온도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줬다. 먹고 싶은 음식이, 보고 싶은 영화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예고 없이 찾아왔던 포터는 작별인사 없이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덕분에 참 단단하고 씩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너를 만난 날의 바람은 코가 아리게 차가웠지만 내 마음에는 알 수 없는 온기가 휘몰아쳤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