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평안에 이른다는 생각을 모두가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삶이 더욱 덧없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인생은 즐거운 순간들의 기록이지만 나에게 삶은 괴로운 투쟁이라는 사실이 시리게 아팠다.
어쩌면 나도 한때는 지하의 꿉꿉한 습기와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을 텐데. 어쩌다 이리도 지독스러런 철장 속에 갇혀버린 걸까 하며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임을 깨달았고, 나의 꿈이 꽤나 멋지고 커다랗기에 힘들다는 걸 알아챘다. 그렇다고 그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미친 듯 살아왔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그 대답은 어설펐다. 맞긴 하는데 그렇다고 완벽하진 못했다. 아, 나는 감정에 안주했구나. 과거의 영광에 취하며 가능성에 기댄 삶이었기에 거짓된 인생을 살아왔구나. 이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인가. '나는 ~한 사람이었어. 내가 한때는~'이라는 말로 술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나조차 그들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이뤄낸 자와 허덕이는 자의 차이는 감정을 감정 그 자체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서 갈리는 듯하다. 어린 나이에 재력과 사회적 성공을 다 이룬 사람이 부럽다면, 아 저 사람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대단하다. 혹은 부럽다 에서 그쳤어야 하는 감정이 나는 뭐 하는 거지, 혹은 난 아무리 해도 저렇겐 못되겠지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고 그 겁이 분노와 미움으로 방출되는 순간 되돌릴 수 없이 못난 사람이 되더라.
부럽고 대단하고 때로는 질투하고 딱 그 감정에서 우린 멈출 줄 알아야 한다. 그 이상의 가치판단으로 넘어가는 책장에서 우린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이라는 말이 너무도 치사하게 느껴지겠지만 듣기 싫겠지만 그게 당신을 정의하는 단어임을 인정해야 한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같잖은 말은 않겠다. 부정적인 감정 또한 감정의 일부임을 알아야 한다. 스펀지밥도 아니고 한낱 인간인 당신과 내가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너무 먼 미래를 그리다 보면 지금 현실을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수 밖에는 왕도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처한 이 현실이 참 뭣 같고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 지겹고 괴로워서, 하기 싫은 일을 해내는 자가 결국은 이뤄낸다는 사실이 명백해도, 이따금씩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날들이 찾아온다. 그런 의미로 평안을 죽음으로 취하려 했던 것이다. 참 아둔하고 안타까운 생각이지만, 만약 당신이 지금 이리도 괴롭다면 우리 서로 먼발치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 알기에 터질 듯이 안아주자.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는 사람은 생각보다 없지만, 죽을 만큼 힘들다는 사람은 천지다. 죽음과 삶을 같은 선상에 두고 범주가 아닌 상태로 정의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 하루만 더 다음 달까지만 어쩌면 내년 까지도 한번 살아내 보자고 내가 그대를 응원하겠다고 편지한다. 인생은 흑백논리로 all-or-nothing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니까. 우린 지금 특정한 상태가 아니라 스펙트럼인 거라고.
치사하기 그지없지만 감정은 그 어떤 물건들보다 소모성이 강하다. 잊히기 마련이고 나아가 미화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지는 중이라면 파도를 원망하진 말자. 모래성처럼 바스러지는 나 또한 미워하지 말자. 그저 구름이 모여 강풍이 불었고, 딱히 당신의 성을 무너뜨릴 의도는 아니었을 테니. 지나가는 바람에 휘청일 순 있으나 모든 걸 잃진 않았다. 당신이 죽지만 않는다면 존재한다면 모래는 언제든 다시 쌓으면 그만이다. 다음번엔 더 단단하게, 파도와는 조금 멀리 그렇게 멋진 성을 다시 한번 아니 수백 번 수천번 올려나가자. 가장 높은 곳에 깃발을 꽂으며 나 이번에도 이루었노라 외쳐보자.
거친 파도를 탓하기엔 우린 너무 아름답다. 뜨는 해와 지는 해에 빛나는 모래알은 다이아만큼 눈부시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