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2
사백여명의 입도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자 조용하던 섬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이 소란 속에서도 입도객들을 환영하는 특별한 행사는 규태일행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일렬로 도열한 독도경비대원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준현이 떡대를 불러 세웠다.
자신이 들고 가던 앰프까지 하나 더 얹어주며 난감해하는 떡대의 엉덩이를 철썩 때리며 웃었다.
“떡대야! 요만한 일로 오만가지 인상을 다 쓰면 나중에 군대는 우째 갔다 올락꼬 그러냐?”
준현이 제대군인 특유의 군기 빠진 폼새로 독도경비대원들의 거수경례를 일일이 받아주면서 건들건들 걸어갔다.
하지만 현재 이 섬의 점유권자를 굳이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이 같은 퍼포먼스가 불쾌한 자들도 있었다.
저만치서 규태 일행을 뒤따르던 이사무 회장 일행의 적대감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동도에 입도하자마자 자율적인 관광구역인 부두 주변을 서성이면서 그들이 준비한 특별한 의식을 치를만한 적당한 무대를 찾았다.
사실 이들의 당초 디데이는 오늘이 아닌 다케시마의 날이었던 지난 2월 22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땅 독도’ 유튜브 방송이 대대적으로 삼일절 110주년 특집방송을 예고하자 일정을 급히 변경했다.
어차피 그들이 원했던 것은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스스로를 다케시마 수복의 재단에 바치는 것이다.
오직 그 장면의 연출을 위하여 오늘이 선택되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이사무 회장이 드디어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는 표정으로 사또와 노무라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다.
이사무 회장이 지목한 장소는 ‘대한민국 동쪽 땅 끝’이라고 새겨진 기념비 앞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규태 일행이 먼저 선점한 채 진을 치고 있었다.
규태의 진두지휘로 준비한 의상을 갈아입을 가림막이 설치되었다.
오늘 연합동아리가 준비한 행사를 주어진 삼십 분 안에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속전속결이 중요했다.
‘3·1 운동 110주년 기념 독도와 함께하는 특별공연’이라고 새겨진 현수막이 펼쳐졌다.
음향담당인 준현이 섬전체가 잘 들릴 수 있는 위치에 대형앰프를 설치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후배 떡대를 상대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며 세밀하게 음량의 조율을 마친 준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의 버튼을 힘껏 누르자 입도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크기의 음악소리가 섬전체에 울려 퍼졌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음악소리에 고요하던 동도와 서도가 화들짝 놀랐다.
구슬픈 곡조의 정선아리랑이 앰프를 타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을 때 근방에 흩어져있던 백여 명의 입도객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무대가 만들어지고 관객들이 모여들자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촬영준비를 마친 정덕이 큐 싸인을 보냈다.
유관순으로 분장한 여대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달려 나오자 일본헌병으로 분장한 남학생들이 목총으로 사격자세를 취했다.
잠시 뒤 앰프에서는 요란한 총소리가 나면서 만세를 부르던 여학생들이 애처로운 동작으로 쓰러졌다.
이 장면은 정선아리랑의 곡조와도 잘 어울려 더욱 애틋하게 연출되었다.
쓰러지면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절규하는 장면에선 모여든 입도객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곡조는 다시 진도아리랑으로 바뀌었다.
농민으로 분장한 세 명의 남학생들이 막대에 매달린 대형 태극기를 흔들면서 등장하여 일본헌병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 통쾌한 장면에서는 모여 있던 입도객들이 함성을 질러대면서 분위기가 크게 고조되었다.
이때 쓰러졌던 여학생들이 천천히 일어나자 곡조는 다시 신나는 밀양 아리랑으로 바뀌었고 무대는 남녀대학생들이 흔들어대는 대형 태극기의 펄럭임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이것으로 우리 땅 독도연구회의 연출 의도는 목적을 달성하는 듯했다.
하지만 저만치서 입술을 깨어 물면서 이 못마땅한 상황을 쏘아보던 이사무 회장과 두 청년의 생각은 달랐다.
쓴 미소를 지어 보이던 이사무 회장이 두 청년에게 눈짓으로 신호하자 사또와 노무라가 무대의 반대방향으로 달려가 기습적으로 현수막을 펼쳤다.
‘일본령 다케시마’라고 쓰인 현수막이었다.
화난 표정의 두 일본청년들이 반복해서 큰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다!”
“한국의 불법점유를 규탄한다!”
이 긴장된 상황 속에서도 이사무 회장은 천연덕스럽게 막대사탕을 입에 문채 비디오카메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기습적으로 벌어진 이 별난 상황은 동도 선착장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다른 입도객들까지 몰려들게 만들었다.
아직 공연을 마무리 짓지 못한 규태 일행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외치는 정반대의 퍼포먼스에 경악했고, 이것을 그대로 방치한 채 하던 행사를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삼일운동 110주년을 기념하던 날이다.
우리 땅 독도에서 벌어진 이 경악스러운 퍼포먼스를 저지하기 위해서 동아리 회원들이 일제히 달려갔다.
여전히 앰프에서는 밀양아리랑의 경쾌한 곡조가 독도전역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동아리 학생들이 앞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뒤에서부터 인파를 헤집고 삐죽삐죽 앞으로 끼어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대형 태극기가 매달린 국내산 왕대나무로 만든 막대가 쥐어져 있었다.
한 손으로는 현수막을 또 다른 손으로는 구호를 외치던 사또와 노무라의 표정은 마치 출격을 앞둔 가미가제 특공대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대형태극기를 펄럭이면서 맨 앞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국토를 기습적으로 침공당한 백성들이 느꼈을 법한 심한 모멸감과 분노의 감정이 뒤범벅이 되어 온몸을 떨게 했다.
낯선 일본청년들에 의해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외치는 이 황당한 상황을 지켜보던 사백여명의 입도객들도 다 함께 흥분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정제되지 않은 고함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이 미친 쪽발이 새끼들아! 미친 짓 할라 거든 너거들 나라에나 가서 해라!”
“여기가 어디라고 지랄발광들이야! 저 쪽발이새끼들 현수막을 뺏어라!”
흥분한 입도객들의 외침 속에서 준현이 먼저 앞으로 나섰고 곧바로 규태가 합세하여 앞으로 나섰다.
떡대를 비롯한 나머지 학생들도 그 뒤를 따랐지만 선발대와는 한 발짝 가량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선발대로 나선 두 청년은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 막대를 부여잡은 채 조심스럽게 적진을 향해서 전진해 나아갔다.
준현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떡대까지 이들의 복장은 태극문양의 머리띠를 맨 농민의 분장을 하고 있었다.
좀 전의 상황극에서 실제로 일본헌병을 무찌른 세 명의 농민이 바로 이들이었다.
대범하게도 아군의 진영 깊숙이 침범하여 적군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던 적들을 쳐부수기 위하여 한발 또 한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한국대학생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다가오자 두 일본청년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현수막을 반듯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는가 싶더니 그들의 검정색 가죽잠바 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팔십 센티미터 가량의 시퍼렇게 날이 선 일본도였다.
순간적으로 주변에 몰려있던 여자관광객들이 단체로 비명소리를 내어질렀다.
아래 선착장에서부터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즉각 사고가 발생했음을 알아차린 독도경비대원들이 긴급하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도 이사무 회장은 마치 두 일본청년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 태연하게 비디오카메라를 촬영하고 있다.
두 일본청년들이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던 준현과 규태를 겁주려던지 칼끝을 앞으로 내어찌르는 동작을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위협적인 동작이 시작됐다.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제법 절도가 있고 날렵한 것으로 봐서는 분명 아마추어 수준은 아닌 듯했다.
이제부터는 실전에 돌입하겠다는 듯 두 일본청년이 사무라이처럼 양손으로 다시 한번 더 일본도를 부여잡는다.
이때 사또가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듯 무슨 주문을 외듯이 자신들의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쳤다.
그런데 일본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떡대가 볼 때는 꼭 너희들 누구냐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행님! 촌놈처럼 생긴 점마가 우리 보고 뭐라 뭐라 하는데요?
너거들 뭐 하는 놈이냐고 하는 것 같은데요?”
정면에서 사또의 두 눈과 마주하고 있던 준현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누구냐고? 우리가 바로 삼일특공대 아이가!”
떡대가 준현의 말을 받아서 사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인마 우리는 삼일특공대다!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너 거 같은 쪽빠리 새끼들을 혼내주는 삼일특공대다!”
실제로 오늘 상황극의 대본에서 이 세 사람은 삼일특공대로 나오기 때문에 이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