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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4)

전쟁의 서막 3

by 맥도강

대나무 막대를 손에 쥐고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세 녀석 가운데 한 녀석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자 사또의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졌다.

바짝 신경이 곤두선 사또가 다가오는 준현을 향해서 한차례 칼을 휘둘러서 위협하는 살벌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였다. 잠시 어수선한 틈을 이용하여 준현이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태극기가 매달린 국내산 왕 대나무로 사또의 칼을 강력하게 내리쳤을 때 당황한 사또가 그만 칼을 놓치고 말았다.


뒤이어서 규태도 노무라의 칼을 내리치려 하자 노무라가 사선으로 휘두른 단 한 번의 칼질에 규태의 태극기 막대가 두 동강이 났다.

당황한 규태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뒤로 물러서고 있었을 때 두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이 중요한 상황에서 칼을 떨어뜨려 자존심이 상해버린 사또가 떨어뜨린 칼을 다시 부여잡으면서 진땀을 흘렸다.

평소 노무라에 비해서 자존감이 떨어져 있던 사또였기에 이 순간마저도 부족한 사람으로서의 낙인이 찍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울분이 되어서 사또의 온몸에서는 광기의 에너지가 솟구쳤다.

순간적으로 그를 짓누르던 두려움들이 사라지면서 신기하게도 잔뜩 힘이 들어갔던 손목이 편안해졌다.


바로 그 순간, 태극기 막대로 다시 공격해 오던 준현을 향해서 사또가 부여잡은 일본도가 태극기막대를 힘껏 내리쳤다.

강력하게 내리치는 일본도의 위력 앞에서 태극기 막대를 떨어뜨린 준현이 주섬주섬 뒷걸음질을 치고 있을 때였다.

또다시 사또가 달려들면서 무차별적으로 일본도를 휘둘렀다.

이것은 분명 광기에 사로잡힌 미친 짓이었다.

결국 준현은 사또가 휘두른 일본도에 가슴이 심하게 베었고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주변은 삽시간에 비명소리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쓰러진 준현선배를 부둥켜안고 광분하던 떡대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사또를 노려보면서 막대태극기를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노려보던 사또가 또다시 일본도를 높이 쳐들고 곧장 덤벼들던 바로 그때였다.


총을 겨누면서 한발 한발 다가오던 독도경비대원중 한 명이 공중을 향해서 실탄 한 발을 발사했다.

총소리에 떡대는 멈칫하며 멈추어 섰지만 사태를 직감한 사또와 노무라는 그들이 준비한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기 위하여 서로를 다시 바라봤다.

노무라가 먼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사또 또한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여전히 동영상 촬영에 여념이 없던 이사무 회장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노무라가 먼저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다!”

노무라의 외침이 끝나자 사또가 떨리는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일본도를 바라보며 고함을 질렀다.

“비열한 한국인들은 다케시마에서 물러나라!”

두려움을 물리치려는 사또와 노무라와 마지막 의식도 끝이 났다.

둘은 동시에 ‘얍!’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일본도를 높이 쳐들고 대담하게도 독도경비대원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탕! 탕!”

단 두발의 총소리와 함께 두 일본청년은 외마디 비명 소리도 없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 순간까지도 이사무 회장은 마치 영화를 찍는 듯 동영상촬영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의 한 극우 유튜브방송을 통해서 전 세계로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사무 회장이 찍고 있던 이 비디오카메라는 스마트폰 기능을 겸비한 고성능 비디오카메라였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이사무 회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두 일본청년이 독도경비대원들에게 달려드는 사실상의 자해행위를 하기 전 이 자에게 목례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독도경비대원들도 이 자를 두 일본청년과 같은 편이라 의심하고 총을 겨누면서 두 손을 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사무 회장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오히려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여유까지 부렸다.

그리고 동영상이 촬영되고 있던 비디오카메라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카메라가 자기를 향하도록 돌려놓았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방금 총에 맞아서 즉사한 사또와 노무라를 향해서 경건한 표정으로 목례를 하는가 싶었다.


순간적으로 사또의 손에 쥐어진 일본도를 집어 들고 일어선 이사무 회장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의 회원들이다,

오늘 우리는 불법적으로 빼앗긴 다케시마를 수복하러 왔다,

이제 우리 전사들의 값진 죽음으로 다케시마 수복의 재단이 만들어질 것이다,

사나이 한 목숨 사쿠라처럼 휘날리게 되었으니 무슨 아쉬움이 남겠는가!”

마치 마음속으로 준비한 듯한 유언의 말을 끝낸 이사무 회장이 일본도를 위아래로 한 바퀴 돌리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칼을 다루는 폼새가 방금 즉사한 두 일본청년들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동도선착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경비대의 보고를 받자마자 쉼 없이 뛰어내려온 장 대장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소리쳤다.

“경고한다 칼을 내려놓아라!

칼을 내려놓지 않으면 발사하겠다!”

단호한 어조로 외치는 장 대장을 이사무 회장은 오히려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이사무 회장이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뜨고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던 경비대원들을 향해서 날렵한 동작으로 달려들었다.


“탕! 탕!”

가슴과 배에 총탄을 맞은 이사무 회장이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지만 그냥 쓰러지지는 않았다.

안간힘을 다해서 동영상이 촬영되고 있던 비디오카메라를 힘든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제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세상을 떠난다는 표정으로 마지막 미소를 띠는가 싶더니 이내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는 지금 유튜브 방송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일본인들에게 반드시 다케시마를 수복해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한 편의 감동적인 실황극으로 인해서 일본열도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충격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편 사또의 칼에 맞아 중상을 입은 준현은 헬기로 긴급 호송되어 경북대학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열 시간의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하필 칼끝의 방향이 준현의 심장을 관통했던 것인데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에 의해서 희생된 첫 한국인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 한 명과 세 명의 일본인이 사망한 이 날의 독도 대참사가 몰고 올 이후의 파장을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일 간은 물론이고 북한과 미국 중국까지 개입하는 동북아시아의 판도를 뒤흔들게 될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오게 될 것을 누구라서 알 수 있었겠는가.


일본열도는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익세력들과 정계 언론계가 합심하여 선량한 일본 관광객을 살해한 한국을 타도하자는 극단적인 혐한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부추겨나갔다.

한국을 성토하는 거리집회는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다.

심지어는 신변에 위협을 느낀 재일교포들은 거리를 나다닐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독도참사 이후 일본이 보여준 대응은 남북한의 팔천만 국민들에게는 일제강점기의 악몽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독도참사의 원인은 전 세계인들이 유튜브를 통하여 지켜봤기 때문에 달리 왜곡하여 주장할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독도참사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의 원인 따윈 불문곡직하고 억지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선량한 일본인 관광객에게 총을 발사한 책임을 물어 독도경비대장과 네 명의 대원들을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기고 즉각적인 독도경비대의 철수를 주장했다.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은 이런저런 말의 성찬대신 단호한 행동으로 대신했다.

전격적으로 해병대의 독도 상륙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독도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강력한 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2029년 3월 1일, 이 날은 일제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이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을 일으킨 지 꼭 1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특별한 방식으로 기념하고자 했던 한 무리의 한국 대학생들이 있었고, 하필이면 이 날을 콕 집어서 자신들의 이벤트를 연출하고자 했던 일본의 극우단체가 있었다.

이 두 단체가 극적으로 충돌한 이 날의 사건으로 독도는 그야말로 국제분쟁의 중심무대로 빠르게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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