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대고려연방 (5)

전쟁의 서막 4

by 맥도강

교토의 기온거리가 이제 막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삼월의 마지막 주에 이르자 절정에 이른 사쿠라의 물결로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보기가 부담스러운 지경이다.

거리의 불빛들과 어우러지면서 기온거리 특유의 황홀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야사키 회관은 눈빛들이 예사롭지 않은 건장한 청장년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전통복장인 검정색 기모노를 입었고 왼쪽가슴에는 통일된 마크인 흰색 사쿠라문양이 박혀있다.

여러 개의 방을 연결한 2층 특실에는 수십 명의 손님들이 한꺼번에 찻잔을 마주한 채 정면 중앙을 향해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들의 자세는 정중하게 무릎 꿇은 대단히 경직된 자세였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정면 중앙에는 거구의 체격에 눈썹이 짙은 칠십 대의 노인이 유일한 평자세로 앉아있다.

양팔을 가슴에 낀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만으로도 카리스마가 예사롭지 않은 그가 바로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의 최고 어른인 다카이 고문이다.

육상자위대의 대좌출신답게 풍모에서 자아내는 분위기가 주변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다케시마의 눈물을 최종 정산하고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해 왔던 마지막 작전을 결의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다!

지금 일본열도는 이사무 회장과 사또 노무라 군의 장렬한 희생이 있어 다케시마 수복에 대한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제 교토의 사쿠라가 다케시마를 건너 진해 부산 대구 광양 서울을 화려하게 뒤덮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내선일체의 붉은 피가 아직도 끈끈히 흐르고 있다는 뜻!

때가 이르러 사쿠라가 꽃을 피우듯 때가 되었으니 우리의 계획도 실행할 때가 되었다,

이사무 회장의 마지막 미소가 다케시마의 미소가 될 수 있도록 우린 사쿠라처럼 기쁜 마음으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모두들 각오는 되었나?”

“옛!”


사백 삼십여 년 전의 오사카성,

조선으로 출병하는 왜군의 장수들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했을법한 임진왜란 전야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결의에 찬 다카이 고문의 발언이 끝나자 정중히 무릎 꿇은 자세로 나란히 마주 앉은 수십 명의 결사대 간부들이 정중앙을 주시하면서 다음 행동을 준비했다.


다카이 고문을 기준으로 맨 앞자리 좌측의 아베 총무와 마주 앉은 고노 간사가 찻잔을 높이 들었다.

동시에 다른 참석자들도 찻잔을 높이 들며 고노 간사의 입을 주시했다.

“사나이 한 목숨 사쿠라처럼 흩날리는 뜻은 오직 하나!”

“다케시마의 미소를 위하여!”

큰 소리로 합창할 때의 이들 표정은 흡사 전쟁터에 나아가는 전사들의 모습처럼 비장한 결기가 느껴진다.


고노 간사는 아베 총무와 함께 이 단체의 실무를 관장하는 자로서 이사무 회장의 죽음으로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의 명실상부한 제2인자로 부상했다.

그의 표정에선 이사무 회장과 두 대원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다케시마 수복의 결의가 이글거렸다.

지난 5년 동안 이들은 오직 이 날만을 기다리며 생업마저 등한시 한 채 반복적인 합숙 훈련으로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이제 그때가 되었다는 다카이 고문의 선언은 한 달 전의 독도참사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실에 불과했을 뿐 결전의 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자정 무렵 시마네 현 에토모항에서 120톤급 대형어선 두 척이 은밀히 출항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정체불명의 배 두 척이 어둠을 뚫고 벌써 세 시간째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선실에는 모자부터 군화까지 온통 검정색 복장으로 통일한 오십 명의 청년들이 89식 자동소총으로 완전 무장한 채 타고 있었다.


이들이 쓰고 있는 모자와 왼쪽가슴에는 그들 조직을 상징하는 흰색의 사쿠라문양이 보란 듯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의 정예대원들로서 이 새벽에 독도를 기습 점령하기 위하여 대담한 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약 이십 년 전 육상자위대의 대좌로 예편한 다카이 고문이 전국의 자위대 예비역들을 하나둘 포섭하여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를 조직했다.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다케시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미소 짓게 하는 것,

그것은 불법적으로 한국이 점유하고 있는 다케시마를 무력으로 탈환하는 것이다.


다카이 고문은 전국적으로 오백여명에 이르는 대원들 중 몸놀림이 가장 날렵한 정예대원 오십 명을 선발하여 육상자위대의 예비군훈련을 빙자한 다케시마 탈환을 준비해 왔다.

지난 오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매년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육상자위대의 은밀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육상자위대에서는 이들을 ‘흑군파 전사’로 불렀는데 일체의 훈련복장이 검정색으로 치장한 덕분에 붙여진 별칭이었다.


일면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오늘의 이 대담한 거사는 고노 간사가 직접 지휘하고 있었고 한 팀당 십이삼 명씩 모두 네 개의 팀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독도가 가까워지자 얼굴에 검정색 위장 크림을 바르며 결전을 준비했다.

이들이 세 시간 삼십 분을 달려서 독도 근방까지 은밀히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순시선의 암묵적 방조도 있었지만 불빛 하나 없이 조심스럽게 접근해 온 치밀한 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방 삼천 미터 가까이에서 엔진은 모두 꺼졌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선택된 기일답게 목표지점에 다가갈수록 바다는 잔잔한 풍랑에 자욱한 안개천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기상청의 예보를 토대로 추천된 날짜 가운데 다카이 고문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점지 받은 날자가 바로 오늘이었다.

삼십여 명의 소대병력이 주둔하는 독도경비대를 신속하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경계근무병에게 들키지 않고 목표지점에 입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어선에서 두 대씩 모두 네 대의 고무보트가 조심스럽게 내려졌다.

세 대의 고무보트는 경비대의 초소와 막사가 있는 동도를 점령하기 위하여 각기 지정된 목표지점으로 조용히 노를 저어갔다.

마지막 한대는 서도로 향했는데 독도관리사무소와 민간인이 거주하는 주민숙소를 장악하기 위해서다.


새벽 네 시가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동도 정상에 설치된 세 개의 초소에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경계병들이 2인 1조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모든 방면의 바다를 둘러싼 짙은 안개로 인하여 긴장감보다는 차라리 오랜만에 느껴보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몰려왔다.

이 꼭두새벽에 동해를 건너온 흑군파가 은밀히 다가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언제나처럼 여섯 명의 경계병들은 별다른 경계심도 없이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한가로운 상념에 빠져들었다.


동도로 향한 세 대의 보트가 각기 지정된 목표지점에 다다르자 신속히 보트를 뭍으로 끌어올린 뒤 은신처에 위장하여 숨겼다.

각 팀의 본대가 은신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사이 2인 1조의 3개 팀 선발대가 먼저 출발했다.

오늘 작전의 성공여부는 대부분의 독도경비대원들이 잠들어있던 이 새벽시간대에 신속하게 초소를 장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K2소총으로 무장한 두 개의 초소와 K6중기관총으로 무장한 한 개의 초소를 제압하는 임무가 이들 선발대에 주어졌다.

애초부터 선발대의 중요성을 간파한 고노간사는 흑군파중에서도 체격조건은 물론이고 정신무장이 가장 잘되어있는 최고의 전사들로 선발대를 편성했다.

이들은 지난 5년 동안 반복된 지옥 훈련으로 오늘의 임무에 최적화된 상태였다.


흑군파선발대는 날렵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이동하여 각기 목표했던 초소를 향해서 사격거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선발대가 각기 한 명씩의 경계병을 겨냥하고 있는 89식 자동소총에는 자외선 망원경에 소음기까지 부착되어 있어 처음부터 저격 용도로 준비한 무기였다.


자신들을 향하여 알지 못하는 적의 총구가 겨냥되고 있음을 알턱이 없던 경계병들은 무료한 두 시간의 초소 교대 근무시간만을 기다리며 각자 나름의 상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드디어 흑군파 선발대장의 작전개시 명령이 선발대의 귓속에 부착된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달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대고려연방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