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5
“슝 슝 슝 슝”
초소의 경계병들이 동시에 쓰러졌다.
정확히 이마와 가슴으로 총탄이 날아든 다섯 명의 경계병들은 총탄에 맞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복부에 총탄을 맞은 중기관총 사수 박 경장만이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오른쪽 복부를 움켜쥐고 힘겹게 일어서려고 했다.
박 경장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황당한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적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지하게 되었다.
이 위급한 사실을 이 시각 경비대숙소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동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하나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보류시키며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쓰러진 경계병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흑군파선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겨우 무릎 꿇은 자세를 취한 박 경장이 육중한 중기관총의 개머리판을 떨리는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허공을 향하여 중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타 타 타 타 타 타 타 타”
마지막 죽음의 순간, 사력을 다해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했던 박 경장은 짙은 안갯속에 잠들어 있던 고요한 바다를 일시에 깨운 후 쓰러졌다.
중기관총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당직을 서고 있던 송 경사였다.
야심한 꼭두새벽에 난데없이 들려온 중기관총 소리에 깜짝 놀란 송 경사가 급한 대로 비상벨부터 누른 뒤 경비대의 숙소 당직실에서 뛰쳐나왔다.
필시 사고가 났다고 생각한 송 경사는 짙은 안개 때문에 바로 앞의 시야조차 확보되지 않았지만 중기관총 초소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초소의 사수인 박 경장을 큰 소리로 불러봤지만 온 천지가 묵묵부답이다.
“박 경장! 박 경장! 대체 무슨 일이야?”
예상치 못한 중기관총 소리에 흑군파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예정보다도 빠르게 고노 간사가 본대를 이끌고 경비대숙소 방면으로 올라왔다.
두 개의 소총 초소를 점령한 흑군파선발대가 경비대숙소를 향해서 매복 자세에 들어감과 동시에 흑군파 선발대장이 허급지급 중기관총 초소를 들이닥쳤다.
엎드린 채 쓰러져있던 박 경장을 발견한 선발대장이 직접 박 경장의 머리를 향해서 소음 총을 겨누었다.
“슝”
다급한 목소리로 박 경장을 부르며 중기관총 초소 쪽으로 다가가던 송 경사를 향해서도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송 경사의 가슴을 향해서 정확히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다.
“슝”
알지 못하는 적이 발사한 총탄을 가슴에 맞고 속절없이 앞으로 꼬꾸라진 송 경사는 도무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가닥의 마지막 기운마저 빠져나가고 있었을 때 지난주에 갓 돌이 지난 막내아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아기를 품에 안은 아이엄마의 절규하는 모습이 그의 상념이 되어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숨을 멈추었다.
한편 경비대숙소에서 곤히 잠자던 이 새벽녘에 중기관총 발사 소리와 비상벨까지 울려대자 경비대원들이 비몽사몽간에 화들짝 놀라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의식적으로 공동숙소로 달려온 경비대장이 매뉴얼대로 반응했다.
“김 경위! 김 경위 어디 있어!”
슬리퍼조차 신을 겨를도 없이 맨발로 김 경위가 달려왔다.
“네 여기 있습니다!”
“대원들 전원 무장시키고 지금 즉시 밖으로 집합시켜!”
이 말에 대원들이 정복으로 갈아입으려 하자 장 대장의 입이 거칠어졌다.
“야 인마! 무장만 하고 곧장 튀어나가란 말이야!”
장 대장의 닦달에 대원들은 체육복 차림의 잠자던 모습 그대로 K2소총만 휴대한 채 현관문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경비대숙소 건물 앞마당으로 몰려나온 경비대원들이 영문을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이 모습을 흑군파는 모두 세 방향에서 매복하여 지켜보면서 총부리를 겨냥했다.
고노간사의 입가에 미소가 퍼지면서 짜릿한 전율이 머리까지 전해지는 순간이다.
그가 가장 원했던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드디어 고노 간사의 사격신호가 떨어지자 무지막지한 자동소총들이 숙소의 현관문을 향해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사되었다.
이 자리에서만 경비대원의 절반 이상이 저항다운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흑군파의 총탄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후퇴! 후퇴! 모두 숙소 안으로 후퇴하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상대를 알지 못하는 적의 기습으로 경비대원들이 맥없이 쓰러지자 장 대장이 후퇴 명령을 내렸다.
숙소 현관의 안쪽 벽에 바짝 붙어 있던 김 경위가 소리쳤다.
“대장님! 적들이 모두 세 방향에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적의 총탄이 날아드는 세 곳의 진지를 파악한 장 대장의 판단은 빨랐다.
“김 경위! 창문마다 대원들을 배치시켜서 엄호사격을 하게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뒷문으로 빠져나간다!”
“예 대장님!”
네 명의 대원들만 남기고 모두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새벽 다섯 시를 십여분 남긴 시각, 다행히 아직도 지독한 안개로 인하여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적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격을 받을 때의 짙은 안개는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제 적의 위치를 파악한 상황에서 공격을 하고자 할 때는 지독한 안개가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적으로부터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총소리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아군의 총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네 개의 창문을 방어막 삼아 엄호사격을 잘해주던 대원들 가운데 어느새 한 개의 창문에서만 총소리가 나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자동소총의 위력 앞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최후의 순간들을 맞이하고 말았다.
장 대장은 김 경위에게 네 명의 대원들을 인솔케 하여 반대편 부채꼴 모양의 좌측 절벽뒤 암석위에 매복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머지 네 명의 대원들과 함께 삼십여 미터 떨어진 절벽의 우측 끝지점 쌍바위뒤에서 진을 쳤다.
평소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곤 했던 쌍바위뒤에서 알지 못하는 적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적은 분명 경비대숙소 뒤를 포위하면서 달려들 것이다.
그들은 수가 많고 숙소건물이라는 방어 진지까지 구축했으니 절벽에 둘러싸인 우리를 독 안에든 쥐 신세라 판단할 것이다.
자만한 자들은 틀림없이 서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분명 달려들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장 대장은 적들의 정체에 대하여 일말의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해적들인지 조폭집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들이 보유한 총기와 사격솜씨,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로 보아서는 제대로 훈련받은 집단임은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설마 일본 육상자위대의 정규예비군들로 구성된 흑군파라는 사실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공방전을 펼치던 쌍방이 서로 상대방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합의되지 않은 잠깐의 고요가 찾아왔다.
이 틈을 기회삼아 장 대장은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폰의 단축번호 5번을 꾹 눌렀다.
이 엄중한 사태를 아직 직속청인 경북경찰청에 보고도 하지 못했다.
경찰청상황실에 연결을 시도하던 바로 그때였다.
“타 타 타 타”
한 무리의 흑군파들이 숙소를 향하여 자동소총을 난사하면서 달려들었다.
동시에 좌우로 나뉜 두 무리의 흑군파가 김 경위와 장 대장이 매복하고 있던 방향으로 거침없이 달려왔다.
저들은 지금 숙소를 벗어난 잔당들을 일거에 소탕할 요량이었던지 자동소총 소리가 잠시도 멈추질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옅어지지 않은 안개의 천지는 적의 동태를 파악하면서 다가오는 적을 기다리는 진영에게는 언제나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이다.
부채꼴 모양의 절벽방향으로 달려오는 두 무리의 적들을 향해서 처음으로 반격다운 반격을 시작했다.
장 대장의 발사명령이 떨어지자 절벽의 양끝지점에서부터 빗발치듯 총알세례를 퍼부었다.
“타 타 타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