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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7)

전쟁의 서막 6

by 맥도강

“여기 상황실입니다, 경비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이 소리는 총소리가 아닙니까? 대장님! 대장님!”

장 대장의 휴대폰에서 다급하게 들려오는 소리였지만 이미 휴대폰은 땅바닥에 떨어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엎드려! 엎드려!”

고노 간사의 당황한 고함소리가 짙은 안갯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엄폐물 뒤에 숨어서 일방적으로 노출된 적을 대적하는 상황은 고노 간사가 가장 원했던 상황이다.

그런데 작은 승리에 도취된 잠깐의 방심으로 적에게 노출되는 정반대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다소 싱거울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흑군파의 진격이 한순간의 방심으로 독도 경비대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고 말았다.

제2팀과 제3팀의 절반이상이 허무하게 쓰러졌지만 그렇다고 전세가 뒤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또다시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을 때 장 대장은 액정이 깨진 채 땅바닥에 패대기 쳐진 휴대폰을 수습하여 절규에 가까운 상황실 당직자의 외침에 답하기 시작했다.

“적의 기습을 받았다! 적의 실체를 알 수는 없으나 일본말을 쓰고 있다,

적의 규모는 소대급이상으로 추정되지만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 대원의 피해는 아니 생존대원이 고작 열 명도 안 된다,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상!”


이미 아군의 위치는 노출되었고 적은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조여 오고 있다.

장 대장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았다.

숫적인 중과부적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투항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면 용감한 람보처럼 화끈하게 싸우다가 최후를 맞이하되 적에게도 최대한의 타격을 주는 방법, 그 방법 외에는 달리 묘책이 없었다.

죽기로 싸우다 보면 혹시 악몽에서 깨어나는 기적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으로선 차선책 따윈 생각할 겨를도 없다.

마음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돌격!”

이 한마디에 좌우 방어막 뒤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던 한 개 분대 급의 잔여 독도경비대원들이 모두 따라나섰다.


이 지구상에 생존해 있는 모든 독도경비대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람보처럼 총질을 하면서 앞으로 치고 나갔다.

마치 교활한 뱀처럼 땅바닥을 기어 오다시피 다가오던 흑군파를 향해서 발사되는 총알은 신기하게도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독도경비대원들의 엄청난 에너지에 압도된 탓이었을까,

후방에 있던 고노 간사를 비롯한 서너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전멸상태에 이르렀다.


아직도 온전한 전력을 유지하던 흑군파 제1팀이 경비대 숙소 창문을 방어막삼아 끈질기게 저항하던 경비대원을 후문으로 치고 들어가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경비대의 잔여 병력이 후방에서 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끈질기게 엄호사격을 잘 해준 최 순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몇 곱절로 다해낸 최 순경은 온몸에 수십 발의 총탄이 박힌 채 두 눈을 부릅뜬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최 순경의 장렬한 죽음은 비록 적일지라도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흑군파 제1팀장이 터벅터벅 다가오더니 오른발을 꿇은 상태에서 최 순경의 두 눈을 감겨 주었다.


경비대의 숙소건물을 완전히 장악한 제1팀이 현관 앞에서 진을 치게 되자 겨우 죽음을 모면한 고노 간사 일행이 합류했다.

고노 간사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치가 떨린다, 고작 열 명도 안돼 보이는 경비대 놈들한테 당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게 되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해가 뜨기 전까지 잔당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중단 없는 진격뿐이다!”


한편 장 대장은 일방적으로 불리하던 그동안의 전세를 되돌릴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김 경위 팀에게 중기관총 초소를 장악하라고 명령한 후 자신을 따르는 네 명의 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우리가 운이 좋아서 살아남던, 운이 나빠서 죽게 되던 우린 모두 함께 할 것이다!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끝까지 우리의 영토를 사수하자!”

장 대장이 먼저 오른손을 내밀자 나머지 대원들도 그 위에 자신들의 오른손을 포개었다.

모두의 눈가에는 기쁨과 슬픔을 초월한 작은 이슬방울이 맺혔다.

멋진 정복차림은 아니었지만 장열 하게 독도를 지키다 산화해갈 독도경비대원으로서의 자부심이 서려있었다.


장 대장이 앞장섰다.

잠옷으로 입고 있던 흙이 잔뜩 묻은 체육복차림 그대로 머리를 낮게 숙인 채 무작정 헬기장 방향으로 뛰었다.

경비대 숙소건물을 방패막이 삼아서 진을 치고 있던 흑군파를 유인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때 중기관총 초소를 이미 장악하고 있던 흑군파 선발대가 헬기장으로 뛰어가는 경비대를 향해서 사격자세를 취했다.

바로 그때였다.

“탕 탕 탕 탕”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생과 사가 뒤바뀌었다.

김 경위가 인솔해 온 경비대원들이 중기관총 초소를 향해서 집중사격을 가하자 중기관총을 발사하려던 두 명의 흑군파선발대가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


고노 간사는 십오 명 남짓한 흑군파 잔당을 인솔하고 헬기장 쪽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동해바다의 지평선 근처에서 태양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안개에 갇혔던 시야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중기관총의 방아쇠를 잡고 있던 김 경위의 오른손에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지금이다!”

김 경위의 짧은 한마디를 신호로 손마디만 한 총알들이 가지런히 잘 들어가도록 부사수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서도에서도 들릴만한 지축을 가르는 중기관총소리가 쉴 새 없이 난사되었다.

“타 타 타 타 타 …”

다가오던 대여섯 명의 흑군파가 동시에 쓰러졌지만 아쉽게도 김 경위 팀의 전과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양쪽의 초소에서 저격자세의 흑군파선발대가 쏜 소음 총에 김 경위 팀의 대원들이 차례대로 쓰러졌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던 김 경위의 왼손을 잡기 위해서 이 순경이 안간힘을 다했다.

끝내 이 순경의 오른손가락이 김 경위의 손끝에 간신히 닿았을 때 김 경위가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곧 이 순경마저도 자신들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회한을 남긴 채 독도의 품속으로 녹아들고 말았다.


최소한의 방어막도 없는 탁 트인 헬기장에서 아군과 적군은 그렇게 십여분 동안을 모두가 람보처럼 싸웠다.

희미하게 퍼져있던 안개마저 사라졌을 때 참혹한 전쟁터에는 오직 한 명만이 생존해 있었다.

고노 간사가 주변을 돌아봤을 때는 잡풀을 제외한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죽어 있었다.


잠시 후 서도를 점령한 흑군파 4팀이 민간인 부부와 관리사무소 공무원 두 명을 결박한 채 동도로 건너왔다.

건너오기 전 이들은 주민숙소 옥상에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라는 검정색 글귀가 써진 대형 욱일기를 설치했다.

헬기장의 중앙에도 대형 욱일기가 설치되었고 무릎 꿇은 고노 간사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흐느꼈다.

“이사무 회장님! 사또 노무라 군! 우리가 해냈습니다!

드디어 다케시마가 일본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억 신민이 그토록 소원하던 다케시마의 미소작전이 성공했습니다!

두 번 다시는 다케시마가 눈물 흘리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내겠습니다! 으흐흐흑”


이 장면을 시작으로 실시간 동영상이 본격적으로 촬영되었다.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가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방송이 생중계되기 시작했지만 일본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워낙 극비에 진행된 작전이라 소수의 관계자들 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몇몇 흑군파들은 경비대숙소 앞 암벽을 타고 내려가 한자로 새겨진 ‘한국령’ 글씨를 시멘트를 발라서 지워버렸다.

그 위를 흰색페인트로 바탕칠을 한 후 다시 붉은색 페인트로 ‘일본령’이라고 새겼다.

독도의용수비대가 1954년 암벽에 새긴 ‘한국령’ 대신 ‘일본령’으로 다시 씌어졌다.

이것은 독도의 주인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뒤바뀌었다는 상징적인 조치가 되기에 충분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일본 어민들은 여전히 독도를 자유롭게 들락거렸다.

심지어는 동도 선착장에 태연히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라고 새겨진 나무 표시판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에 격분한 참전군인 출신 울릉도 청년 삼십삼 명이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여 자비를 들여가며 1953년부터 1956년까지 독도를 지켜냈다.

그 당시 그들은 바다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암벽에 ‘한국령’이라는 글씨를 크게 새겼던 것인데 지금은 흑군파에 의해서 일본령으로 다시 새겨지는 치욕을 당했다.


헬기장위에 설치된 대형 욱일기 옆에는 약 사십구에 이르는 흑군파대원의 죽음이 나란히 누워있었고 경비대 숙소 앞에는 삼십삼 명 독도경비대 전원의 죽음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생포한 두 명의 독도관리사무소 공무원과 거주민 가족 두 명이 포승줄에 묶인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한국공군의 공중폭격에 대비한 방패막이 인질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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