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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2)

전쟁의 서막 1

by 맥도강

끊임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산산이 부셔가며 용감한 천리마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오후 한 시에 울릉도를 출발한 독도페리호는 오직 동남방향 한 곳만을 향하여 한 시간 이십 분을 달려왔다.

이제 삼십 분 남짓이면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

저 멀리서 광활한 빈 바다를 여백 삼아 아름다운 동양화 한 폭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우뚝 솟아오른 좌측의 서도와 상대적으로 아담한 그 옆의 동도, 사백오십만 년 동안 이 황망한 바다를 외로이 지켜온 섬의 자태는 황홀하기가 그지없다.


“오! 아름다운 섬, 우리들의 꿈 다케시마!”

갑판 위에서 검정색 코트 차림의 중절모를 쓴 중년의 일본인 사내가 서서히 다가오는 독도를 바라보며 혼자 말처럼 읊조렸다.

좌우로 가죽 잠바를 입은 두 청년이 중절모 사내와 같은 방향을 응시하면서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서있다.

“자살특공대라는 아랍의 젊은이들이 몸속에 폭탄을 두른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가?”


두 청년은 굳은 표정으로 독도만 응시할 뿐 중절모 사내의 물음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비록 몸은 죽지만 영혼은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믿고 있지, 그 믿음은 백 퍼센트야!”

이 말과 함께 중절모 사내가 피식 웃자 그제야 두 청년도 공감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런데 말이야, 사실은 그 애들이 속은 거야,

육체가 죽으면 그 영혼마저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거든!

완전히 사라진 열반의 세계야말로 영원한 평화임을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중년의 사내가 자신의 두 팔을 청년들의 어깨에 올려놓으며 말한다.

“사또! 노무라! 두려운가?”

풍기는 외모에서 도시청년의 세련된 분위기가 자아나는 왼편에 선 노무라가 중년의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차라리 평안합니다,

죽은 육체와 따로 살아가는 영혼의 행복을 말씀하셨다면 위선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죽음이 차라리 평안합니다!”

오른편에 서있던 사또는 두려움에 입을 뗄 수가 없었지만 노무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편안하게 말했다.


“작전명이 왜 ‘다케시마의 눈물’인지 아는가?”

“… …”

“어린 섬이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수백만 년을 저 홀로 지냈으니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겠나!

1905년이 되어서야 따듯한 우리 일본의 품으로 입양되었지,

그때부터 다케시마의 꿈은 우리 일본인의 꿈이 되었고, 그 꿈은 아시아 태평양으로 끝없이 펼쳐나갔던 것이야,

그런데 종전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그 어수선했던 시기에 악랄한 한국인들이 어린 다케시마를 강탈해 갔던 것이야,

우리 일본인의 꿈을 말이야!”


이사무 회장이 들려주는 다케시마의 사연은 사또의 두려움을 녹여내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짧게 깎아 한눈에도 시골에서 갓 상경한 듯 촌티가 풀풀 나는 사또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일본과 강제로 헤어진 어린 다케시마가 본토를 그리워하면서 흘리는 눈물이군요!”

사또의 이 말은 다케시마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다짐의 말이었고, 자신의 검정색 가죽잠바 속에 숨겨진 무엇인가를 어루만지면서 결의를 다지는 말이었다.


목에 걸친 비디오카메라로 또다시 독도를 살펴본 이사무 회장이 자폭직전 아랍전사가 했을법한 마지막 눈빛으로 돌변했다.

“이제 잃어버린 우리의 꿈을 되찾을 때가 되었어! 온 열도에 사쿠라의 꽃잎이 휘날리기 전에 말이야!”


이들은 일명 '흑군파전사'라고 불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단체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에 소속된 회원들이다.

오늘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 이사무 회장이 직접 두 청년단원과 함께 독도페리호를 타고 있었다.


이때 페리호의 맨 뒤쪽에 자리 잡은 십여 명 남짓한 한 무리의 남녀대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땅 독도연구회’라는 연합동아리에 소속된 대학생들이다.

오늘 삼일운동 110주년을 맞아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독도 탐방에 나섰다.


연합 동아리가 운영하는 ‘우리 땅 독도’ 유튜브 방송은 고정 구독자만 십만이 넘을 정도로 대단히 인기가 높았다.

순전히 담당 피디인 정덕의 탁월한 기획과 편성능력 덕분이었다.

오늘의 삼일절 특집행사도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홍보하기 위한 정덕의 기획물이다.

지금도 정덕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동영상을 찍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연합동아리 회장인 규태가 일어나서 후배들을 상대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사학을 전공하고 있어 평소에도 꽤나 역사 관련 전문가 티를 내고 있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바람이 났다.

“독도가 공식적으로 울릉군으로 편입된 시기는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의해서야,

시마네 현이 불법적으로 편입시킨 1905년보다 5년이나 빨랐지!”


규태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경은이 불쑥 뛰어들었다.

“일본은 주인 없이 버려진 섬을 자신들이 먼저 주웠다는 독도무주지 선점론을 펴고 있는데요,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이 조선시대의 공도정책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저들 주장의 빌미가 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는 듯 경은을 바라보는 규태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그 당시의 공도정책은 명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있었는데 걸핏하면 쳐들어오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야 돼!

조정에서 매번 군사를 보내서 작은 섬을 지키는 게 어려웠으니 차라리 약탈거리를 없애는 방법, 즉 섬을 비워버린 것이지”


최근에 해병대를 전역하고 복학한 준현이 아직 군대물이 덜 빠진 말투로 평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안용복 장군이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실하게 인정받아 왔음에도 당시 조정의 태도가 도통 이해가 안 된단 말입니다!

안용복 장군에게 포상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공무원사칭죄와 무단월경죄로 귀향을 보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그렇지! 말이 안 되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당시 일본의 막부나 조선의 조정에서 독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얼마나 알았을까?

작은 돌섬일지라도 우리의 영토니까 꼭 지켜야지 하는 그런 의지들이 있었을까?

1900년이 다 되어서야 그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으니까 지금 한일 간에 벌어지고 있는 말의 성찬들은 그냥 하는 소리라고 봐야 돼,

핵심은 지금 현재 누가 실효적인 지배를 하고 있느냐는 거지!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분쟁도 그렇고, 러시아와 일본의 쿠릴분쟁도 그렇고, 과거에는 우리 땅이었으니 되돌려달라고 하면 점잖게 내어줄 나라가 있을까?

가령 독도영유권에 대한 한일 간의 주장이 서로 바뀌었다고 생각해 보잔 말이야,

그런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게 있을까?”


큰 덩치를 빗대서 준현이가 붙여준 별명이 마음에 안 든다며 늘 투덜대던 떡대가 이 재미난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렇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너거들 주장이 타당한 것 같네,

그냥 신사적으로 돌려줄 꾸마! 뭐 그런 나라는 한 나라도 없겠지요!

행님 말대로 현재 누가 실효적인 지배를 하고 있고 또 그것을 지킬 힘이 있느냐가 중요한 거겠지요,

그렇게 봤을 때 독도의용수비대가 정말로 결정적인 신의 한 수를 둣뿠다 아입니까? 내 말이 안 맞습니까?”


“그래 바로 그거야! 이들이 없었으면 실제로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행운을 얻지는 못했을 거야!

오늘날 일본이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

딱히 방법이 없으면서도 일본이 끈질기게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의미를 잘 알아야 돼!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빼앗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거든! 물론 그 방법은 무력을 통한 방법뿐이겠지만!”


때마침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페리호 선장의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오늘처럼 파도가 온순하여 입도가 허락되는 날은 흔치 않다는 선장의 기분 좋은 멘트가 사백여명 승객들을 들뜨게 했다.

선장의 익숙한 손놀림으로 페리호는 서도와 동도를 부드럽게 순회한 후 동도 선착장에서 닻을 내렸다.

선장이 허용한 관광시간은 딱 삼십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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