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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15)

독도전쟁 8

by 맥도강

십일 년 전, 북한과 미국은 싱가포르에서 세기의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핵전쟁의 위기에서 지구를 구했다.

다시 한번 강산이 바뀌어 2029년 3월 말의 어느 봄날 사십 대 중반의 원숙미 넘치는 북한 지도자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 하나를 태평양 상공으로 쏘아 올렸다.

그것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의심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았던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 위력의 수소폭탄이었다.

무려 1000Km 밖에서도 폭발로 인한 버섯구름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그 지진파는 지구를 세 바퀴나 돌았지만 다행히 수소폭탄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운 좋게도 지나가는 선박과 항공기가 없었던 것인데 다만 낙진피해와 방사능 오염의 우려로 한동안 인근 해역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독도전쟁으로 한국인들의 북한 핵에 대한 거부반응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는 불사신과 같은 존재로 바뀌었다.

반면 일본에게 있어 북한 핵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84년 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핵폭탄의 위력을 직접 경험한 집단 트라우마는 보란 듯이 일본 상공을 날아간 NK차르봄바로 인하여 더욱 커졌다.


한편 이번 사건의 당사자격인 미국은 백악관 대변인의 발표를 통하여 그들 내부의 격앙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2년 전 미북 간에 체결된 한반도비핵화를 위한 제1단계의 합의안은 과거 현재 미래의 ICBM급 장거리 미사일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정밀 추적한 결과 그들이 제출한 신고목록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ICBM급 탄도미사일 화성 21형으로 밝혀졌다.

저들은 처음부터 기만적이고 비신사적인 방식으로 우리와 대화하였음이 자명해졌다,

우리는 저들이 보여준 수소폭탄의 파괴력만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세계를 속인 저들의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였는지 크게 후회하도록 정당한 청구서를 내어 밀 것이다”


뉴프레지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 가지는 분노는 일반인들의 상상 이상이었는데 그 밑바탕에는 일종의 배신감이 짙게 깔려있었다.

미북 간의 스몰딜로 자신들의 숨통을 틔워준 은인에 대한 배은망덕으로 이해했다.

2년 전 여름, 서너 차 레의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핵합의에 따른 진전이 없자 뉴프레지는 큰 도박을 감행했다.

재선을 앞둔 초조함이 결단의 원인이 되었지만 사실 대북 봉쇄정책의 효과가 미미하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미국으로서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바랐지만 현실적으로는 전략적인 인내로서 북한 경제의 숨통을 조으는 정책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런데 북한은 자력갱생형 정면 돌파전으로 북미협상의 장기화에 생각이상으로 잘 버텨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사실상 북핵의 숫자만 늘려주었을 뿐 그다지 실효적이지 않은 지루한 정책이었다.

바로 이것이 뉴프레지로 하여금 정책을 수정하게 만든 직접적인 이유였다.

당시 뉴프레지 대통령은 기존 핵무기의 신고나 핵폐기의 일정표 제시 같은 북한이 강하게 거부하는 협상의제들을 다음 단계로 이월시키는 유연성을 발휘했다.


이것이 2027년 7월에 있었던 21세기 지구촌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으로 평가받는 하노이 선언이다.

물론 당시의 스몰딜 합의안 어디에서도 미국과 UN차원의 제재완화에 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었다.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미국의회와 UN대북제재위원회의 결의가 있어야 했는데 북핵 동결만으로는 해제가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몰딜 이후 북미 간에는 상호 연락사무소가 설치되어 외교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같은 남북경협사업들이 재개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북한경제는 충분히 훈풍이 불었던 터라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북핵의 동결조치로 비공식적으로는 일백여 기에 이르는 핵무기를 비축해두고 있어 무시 못 할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처음부터 핵을 포기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북한으로서는 단지 미국이 우려하는 장거리운반 수단과 미래의 핵을 양보하는 선에서 협상을 일괄 타결 지을 생각이었다.

이것은 과거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하던 당시부터 일관되게 유지해 오던 전략이었다.

현 상태의 북핵동결이라는 스몰딜은 사실 따지고 보면 북한입장에서는 현상유지의 공고화와 같은 것이다.

다만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하면서 여전히 볼멘소리를 했다.

영변 핵시설과 평양외곽의 강성 우라늄농축시설까지 폐기함으로써 미래의 핵을 포기하였음에도 아직도 미국과 UN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고 말이다.


물론 제1차 핵합의로 북한이 보유 중이거나 개발 중인 일체의 ICBM급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신고하고 폐기하는 절차를 거치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북한이 자진하여 제출한 리스트에 한정된 것이어서 형식적인 폐기절차에 불과했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로 인하여 제출된 리스트 이외의 장소에서는 실질적인 검증작업을 진행하지도 못했다.

당시 미국조야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재선에 목말랐던 뉴프레지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간이행 단계로서의 스몰딜은 불가피하다고 역설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그런데 재선에 성공한 뉴프레지의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비핵화를 위한 다음 단계의 협상진행에 진척이 없자 내심으로는 조급하게 성과를 내고자 했던 자신의 성급함이 자초한 실수라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져버린 뉴프레지는 다수의 ICBM급 장거리미사일을 산악지역 어딘가에 은닉하고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던 차였다.

예정에 없던 독도전쟁으로 그의 의심이 여실히 증명되고 말았다.


뉴프레지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스몰딜을 밀어붙였던 자신의 과오까지도 한꺼번에 씻어버리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작년 11월의 대선에서도 어렵지 않게 연임에 성공한 뉴프레지는 이제 다시 4년의 임기를 시작하는 입장이라 저돌적인 그의 스타일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파워는 이미 충분히 충전된 상태였다.

그런 탓에 한반도의 상황은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내어 몰렸다.

트럼프시대 이후 강산이 바뀌는 동안 미국과 북한은 수도 없이 많은 회담을 전개하면서 위장된 평화의 시간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의 시간이 도래하고야 말았다.


현재의 북미관계는 미국의 북한 코피 터주기 작전, 일명 코피작전으로 잘 알려진 평창올림픽 이전의 초긴장상태로 되돌아가버렸다.

오늘 저녁이라도 당장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평양상공을 날아들 수도 있는 전쟁 일보직전의 상황으로 전환된 것이다.

무력시위를 주도하고 있던 미국의 전략폭격기는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B­1B였다.

핵탄두를 장착한 죽음의 백조 편대가 북한 인근의 동해상을 날아다니며 무시무시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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